도시에 새겨지는 1%의 예술
도시에서 마주하는 조형물은 ‘쓸모없는 것’ 혹은 ‘노후한 것’이라 치부되곤 한다. 공공조형물들이 도시에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인 ‘1% 법’이 있다. 일정 규모 이상 건축물을 세울 때 건축비의 1% 이내를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한 1% 법은 도시 미관을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해 예술가를 후원하고자 제정된 법이다.
건축물 미술작품, 방치된 예술이 되다
1995년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의무화로 건축 조형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도시 곳곳에 방치되고 있다. 김찬동 종합예술평론가는 “조형물 관리 권한이 구청장에게 위임돼 있지만, 실질적인 감독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 설명했다.
건축주의 불만, 대행사 비리 등 여타 문제도 생겼다. 이에 2011년,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설치비용의 70%를 문예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 있는 ‘선택적 기금제’가 도입됐다. 서울시에서도 2017년 심의 통과 기준과 미술작품심의위원회 구성을 개편해 미술작품 설치 승인을 엄격하게 심의하고자 했다.
기금제 운용과 심의위원회를 둘러싼 갑론을박
그러나 선택적 시행은 조형물 시장을 지원할 기금을 모으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김찬동 평론가는 “건축주는 기금을 내기보단 재산이 되는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대형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기금 활용이라는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심의위원 중 조각 전문가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도 지적된다. 서울시 미술작품심의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건축물 미술작품의 약 90%는 조각작품이고, 10%는 회화작품이지만 현재 서울시 심의위원회 30인 중 조각가와 조소과 교수는 7명 정도다. 경기도 미술작품심의위원회 전직 위원인 이송준 작가는 “비전공자 심의위원은 심의 내내 한마디도 안 하거나 엉뚱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미술작품심의위원회 공공미술진흥팀 관계자는 “위원회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만 구성된다면 담합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상업 아닌 예술적 가치로 바라봐야
제도에 가려진 공공조형물의 본질은 예술이다. 김찬동 평론가는 “공공조형물은 삭막한 도시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예술 갈래”라고 말했다.
김동희(가천대 조소23) 씨는 “조각은 감상자들의 걸음에 따라 다양한 면을 접할 수 있다”며 “공공조형물은 입체 예술로서 공간에 어우러져 시민들에게 위안을 준다”고 말했다.
설치 당시에는 약 18억 원을 들인 흉물로 지적받았던 포스코센터 앞 ‘아마벨’은 포스코의 대표 조형물로 자리 잡았다. ‘아마벨’은 작가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지인의 딸을 기리며 비행기 잔해의 철로 제작했다.
‘해머링맨’은 키네틱 조형물로, 망치질은 노동을 상징한다. 작동 시간을 노동자의 근무 시간과 동일한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설정해 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찬동 평론가는 “건축물 미술작품을 강제로 부여된 의무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긍정적 사례를 늘리기 위해 작가들이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구조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공공조형물의 예술성 제고를 위해선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왜곡된 제도에서 벗어나 건축물 미술작품에 확실한 투자로 예술 시장을 활성화하거나, 기금을 통해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유치하는 등의 노력이 절실하다. 지금이 바로 도시 속에 피어날 진정한 예술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서리나·안효빈·임세용·최주혜 기자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