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횡단] 어제를 딛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
3월답지 않게 눈이 내렸다. 바야흐로 신학기가 시작되는 때,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캠퍼스엔 적적함만이 있었다. 강의를 많이 듣고 졸업이 다가올수록 개강하는 첫 주는 외려 근심과 걱정이 앞서는 듯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얼마 전 CPA 1차 시험을 봤다. 직접 묻진 않았지만,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는 않은 것 같다. 부족한 점을 찾고 개선하면 될 것이라는 다소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남겼다. 얼마 전 또 다른 친구와 오랜만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주위 친구들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야, 걔는 뭐 하고 지내냐?”는 물음에 친구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지금이 우리 나이 애들이 잠적할 때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졸업까지 세 학기나 남은 내게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각자 길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혹자는 여덟 학기를 내리 듣고 바로 졸업했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친구도 있었고, 대학원 진학을 하거나 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개중에 잘 풀리지 않은 친구들은 어느샌가 인스타그램 게시물 업로드가 뜸해졌고 더러는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소문엔 같은 시험을 두세 번 되풀이해 보는 친구도 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도 걱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이다. 내가 갈팡질팡하며 고학번이 된 새에 그들은 어떻게든 스펙을 쌓고 갈 길을 찾아서 가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학기부터는 늦었지만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다. 방학엔 매일 신문사에 출근해 기사를 썼고 학부 연구생 생활도 했다. 지난 학기 생활을 돌이켜 보면 뭔가 바쁘게 지낸 것 같으면서 내실은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족함을 깨닫고 능력을 의심하고 공연히 자책만 했다. 무엇보다 나는 아직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고 지금 하는 것마저 그야말로 시원찮은 결과만 내는 듯했다.
그러던 중 메모를 정리하면서 3년 전에 쓴 내용을 우연히 발견했다. 신도가 채 100명도 안 되는 시골 성당에서 신부님이 강론 때 하신 말씀이었다. “어제를 딛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 그때는 그 말이 뇌리에 스쳐 미사 중에 실례를 무릅쓰고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 놓았다. 그런데 그 말뜻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 것 같다. 인생의 또 다른 갈림길이 찾아오는 시점에선 고뇌가 찾아와 번민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 것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이끈 원동력이 됐다. 그것이 이를테면 내가 깨달은 삶의 철리다. 이번 학기도 여느 때보다 힘든 길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도 지난 학기처럼, 늘 그랬듯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내일을 향해 다시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김선우 기자 the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