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광장] 199. 사전투표제 폐지
민주광장은 하나의 소재에 관한 두 가지 시선을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사전투표제 폐지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며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전투표제가 투표율을 높이고 유권자의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중요한 제도라고 평가하는 한편 신뢰성 문제를 이유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전투표제 존폐를 둘러싼 찬반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고려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10년간 시행되며 허점이 드러난 사전투표 - 정진찬(디자인조형20)
사전투표는 본인 지역구가 아니더라도 투표가 가능하고 본투표 5일 전 이틀간 진행해 유권자의 시공간적 제한사항을 해소하고 결과적으로 전체 투표율을 올리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다만 이런 좋은 제도를 폐지하자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제도 자체의 허점인 시간차 문제가 있다. 선거에선 이따금 본투표가 임박해 대형 이슈가 생겨나는데,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 5일간 일어나는 변화와 이슈는 사전투표 표심에 반영될 수 없다. 가장 최근 사례로 20년도 대선에서의 윤석열 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도 이 정보 공백 기간에 이뤄졌고, 그 탓에 사전투표의 표심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집계됐다. 이는 선거 결과의 정당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제도적 허점이다.
두 번째로 부정 의혹이다. 이는 지금 정계에서 의견이 충돌하는 주원인이기도 하다. 의혹 조사가 이번 계엄령의 주된 목적임을 윤 대통령이 밝혔기 때문이다. 그럼, 왜 사전투표만 문제 삼는 것일까? 답은 시행 과정에 있다. 본인 주소지 밖에서 사전투표를 하면, 투표지를 주민등록상 주소지 개표소로 우편을 통해 배송하게 된다. 이는 보안을 유지하기엔 어려운 환경이다. 이 과정에서 보안이 이미 여러 번 뚫렸다는 심증과 물증이 여러 차례 제기돼 왔고, 최근 드러난 선관위 조직 전체에 깔린 채용 비리 및 예산, 휴가 등의 부적절 사용은 이런 의심이 합리적임을 시사한다.
2023년 11월 12일, 미국에서 사전 부재자 투표 중 의도적인 부정투표지 투입이 발견돼 법원이 재선거를 명령한 일이 있다. 사전 투표가 부정에 취약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 외에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제도적 구멍이 있는 사전투표를 유지하고 본투표 기간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계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움직임에 가깝다. 지금 사전투표를 폐지한다면 부정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투표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사전투표 대신 본투표 기간을 늘리는 대안 앞에서 힘을 잃는다. 단지 투표율을 늘리기 위해 보안과 정당성을 포기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과정에서의 흠은 결과의 정당성을 침해하게 된다.
사전투표제 폐지, 공정성을 높이는 길이 될 수 없는 이유 -황수현(디자인조형22)
2014년 도입된 사전투표제는 유권자의 투표 접근성을 높여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 왔지만 공정성과 투명성을 이유로 사전투표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사전투표제를 폐지하는 것이 공정성 논란을 해결하는 방법일까? 신뢰성 문제를 이유로 투표 기회를 줄이는 것은 오히려 특정 계층의 정치적 참여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더욱 공정하지 않은 방향으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
사전투표가 폐지된다면 일정상 본투표일에 투표가 어려운 유권자들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잃게 된다. 특히, 직장인과 자영업자, 출장이 잦은 직업군,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고령층 등은 투표소를 방문하는 데 물리적·시간적 제약이 크다. 이들에게 사전투표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필수적인 장치다. 본투표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투표소 운영 인력과 예산 문제 등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투표율이 낮아질수록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기회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사전투표함 보관 및 개표 과정에서의 신뢰 문제가 제기되며 이를 근거로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전투표제를 폐지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선거 제도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사전투표제 자체가 아니라 사전투표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이유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국민의 선거 참여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더욱 불공정한 선거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사전투표제가 완벽한 제도는 아닐 수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는 만큼 제도를 보완하고 감시를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국민의 권리를 축소하는 방향이어서는 안 된다. 사전투표제 폐지는 공정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거 참여 기회를 줄이고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하며 이러한 논란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