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횡단] 내 집에서 나이든다는 것

2025-03-16     김준희 기자
김준희 기자

 

  명절이면 할머니를 뵈러 간다. 어릴 적에는 내가 넘어질까봐 할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반대가 됐다. 이제는 내가 할머니께서 넘어지지 않으시도록 손을 꼭 붙잡는다.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다 보면 문득 생각에 잠긴다. 이 손을 계속 잡아드릴 수는 없다. 그리고 손을 잡아드리지 않아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익숙한 집과 동네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안식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가득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할머니께서는 얼마 전 집안 화장실에서 넘어지셨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화장실 안에 장애인용 손잡이가 새로 설치되었다. 예전과 다를 바 없던 평범한 가정집이 점차 노인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러한 변화조차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자식들이 곁에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홀로 생활하는,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Aging in Place’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노인이 요양병원이나 시설로 가지 않고, 익숙한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국토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자의 85.5%가 현재 거주하는 집이나 동네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단순히 ‘살던 곳에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며 일상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Aging in Place’가 실현되려면 단순히 노인들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주거 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Home Modification’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신체 능력이 저하되더라도 공간이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있어야 노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일본에서는 기초자치단체가 앞장서서 노인 가정의 주거 환경을 개조하는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는 개인이나 가족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응급 호출 시스템, 지역 사회의 돌봄 체계 등 사회의 다각적인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나는 언제까지나 할머니의 손을 잡아드릴 수 없다. 그리고 할머니께서도 역시 그것을 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의 손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할머니를 지탱해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할머니의 독립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손녀딸의 따뜻한 손길보다도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준희 기자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