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광장] 200. 유산취득세 방식의 상속세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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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각 상속인이 상속받은 재산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취득세’로 상속세 과세 체계를 전환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불합리한 과세 방식 개선을 환영하는 의견이 있는 한편 기업 성장을 위해 상속세 폐지가 마땅하다는 의견도 있다. 상속세 개편을 둘러싼 여러 의견이 공존하는 가운데 고려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상속세 개편, 유산취득세 방식이 더 합리적이다 - 김연재(문과대 영문22)
정부가 12일 발표한 상속세 개편안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존 방식은 피상속인의 전체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해 상속인이 실제 얼마를 받았든 관계없이 높은 세율이 적용됐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은 개별 상속인이 취득한 재산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조세 형평성을 강화하고 불합리한 과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선, 유산취득세 방식은 국제적 흐름에 부합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이 방식을 채택했고 국제기구에서도 상속인들 간 형평성을 높이고 기부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산취득세 방식의 도입은 이중과세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현재 방식에서는 피상속인에게 기부를 받은 사람들이 10년 내 사망하면 해당 재산을 사전증여재산으로 간주해 다시 상속세의 대상이 된다. 결과적으로 상속인들은 해당 재산에 대해 30~50%의 상속세를 추가로 부담했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이러한 중복 과세 문제를 해결해 기부 문화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다자녀 가정에 보다 친화적인 구조가 마련됐다. 기존 제도에서는 일괄공제 5억 원 또는 기초공제 2억 원과 자녀 1인당 5000만 원의 공제가 적용됐기에 대부분의 상속 가정에서 일괄공제만 받아왔다. 이번 개편안에서는 자녀의 인적 공제를 대폭 확대해 1인당 5000만 원에서 1인당 5억 원의 공제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이를 통해 두 자녀 가정까지는 기존 공제 혜택을 유지하고 세 자녀 이상 가정은 추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형제간 상속 재산 배분이 불균등할 경우 공제액을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형제가 10억 원의 상속 재산을 8대 2의 비율로 분배한 경우, 동생은 5억 원까지만 자녀 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형이 공제받지 않은 3억 원의 여유분을 동생에게 적용해 8억 원까지 세액 공제를 적용한다. 즉, 한 명이 공제를 다 사용하지 않으면 나머지 상속인이 이를 활용할 수 있어 전체 세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공제 최저 금액이라는 안전장치 마련을 통해 실질적인 조세 형평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유산취득세 방식은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기부와 다자녀 가정 지원 등 사회적 목적에도 부합한다. 따라서 이번 개편안은 보다 합리적이며, 상속세 제도의 긍정적 개선 방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효 없는 상속세 개편보다는 폐지가 필요 - 윤효두(문스대 문화유산20)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상속세 개편안은 단순한 과세 방식의 변경으로 조세의 형평성과 경제적 형평성을 모두 충족하기 어렵다. 허울뿐인 상속세 개편보다는 점차 상속세를 폐지해 부작용을 없애야 한다.
상속세의 완화와 폐지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OECD 회원국 중 노르웨이와 뉴질랜드 등 15개국은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인지세 등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다. 또 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4개국은 상속세를 유지하지만 배우자와 자녀 등 직계가족에 대한 상속세를 면제한다. 한국과 같이 유산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걷는 나라는 미국, 영국, 덴마크 3곳뿐이지만 한국과는 달리 배우자 상속분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상속세가 경제 성장과 개인 재산권 보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 결과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물가의 변동을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해 투자와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GDP 대비 상속세수 비중은 OECD 평균(0.2%)의 2.5배에 달한다. 한국 상속세의 최고세율은 50%이지만 최대 주주 할증 과세를 고려하면 실제 세율은 일본이나 프랑스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이미 소득세가 부과된 재산에 높은 상속세로 이중과세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의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으며 상속세 재원 마련이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한 투자를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故 김정주 넥슨 회장의 유족이 약 6조 원의 상속세를 NXC 지분으로 내며 정부가 2대 주주로 등극한 상황이 그 예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15년 故 김덕성 유니더스 회장의 사망 후 유가족에게 상속세 50억 원이 발생했으나 중국발 사드 보복 여파로 경영난에 직면하면서 결국 기업을 사모펀드에 매각하게 됐다. 한샘과 락앤락 등도 상속세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기업 매각을 선택한 사례들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이 가업 승계를 원활히 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복잡한 공제 요건과 여전히 높은 세율로 인해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에는 실질적인 혜택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상속세 폐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 방향이다.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상속세 개편을 반복하기보다는 상속세 폐지를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재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