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는 문화유산, 민간 지원이 보탬 될까

2025-03-23     이다연 기자

폐가처럼 방치된 독립운동가 생가

464개 유산, 관리상태 등급 하락

“관리 인력·예산 확대 필요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대한민국 사적 제32호 독립문. 10년 넘게 세척 작업을 받지 못해 녹물과 찌든 때로 얼룩져 있다.

 

  지난 2월 3·1절을 앞두고 사적 제32호 독립문이 10년 넘게 세척 작업을 받지 못하고 찌든 때와 녹물 자국이 가득한 채로 방치됐음이 알려졌다. 문화유산은 한번 훼손되면 본래의 모습을 찾는 건 불가능하기에 체계적인 보존 및 관리가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엔 독립문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문화유산이 많다. 비지정 문화유산 상당수가 관련 법안과 관리 체계의 부재로 훼손된 채 방치되는 건 물론 지정 문화유산도 적은 예산과 전문 인력 부족으로 관리·보수가 소홀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조윤재(문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현장 관리자의 보고와 적절한 예산 지원이 이뤄질 때 실질적인 문화유산 보호가 가능해진다”고 조언했다.

 

  관리 소홀하고 도난 위험 커

  비지정 문화유산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지만 법적으로 지정·등록되지는 않은 문화유산을 말한다. 최종택(문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비지정 문화유산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저평가된 문화유산을 찾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된 국가유산기본법 제14조에서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지정 문화유산의 지속적 관리·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지만 비지정 문화유산과 지정 문화유산은 관리 수준의 격차는 상당하다. 국가 지정 문화유산의 경우 담당 지방자치단체가 국가유산청에 보수 정비 예산을 신청하면 ‘국가유산 보수 정비 사업’에 따라 국비와 지방비를 5:5 비율로 지원받을 수 있다. 문화유산의 상태를 A~E 등급으로 분류하는 정기조사 결과에 맞춰 적절한 후속 조치가 이뤄지기도 한다. 반면 비지정 문화유산 관리를 위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인 노력은 법으로 규정되지 않아 이를 강제할 수 없다. 최종택 교수는 “비지정 문화유산은 법적 보호·관리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며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방병선(문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사실상 관리나 보호가 의무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독립운동가 생가는 무형 문화유산 관리 부실의 대표적 사례다. 독립운동가 생가 144곳 중 47곳은 국가보훈부에서, 3곳은 국가유산청에서 관리하지만 나머지 94곳은  비지정 문화유산으로 방치돼 있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독립운동가 차병혁 선생의 생가는 진입이 어려울 정도로 잡초가 무성하고 내부도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 지난해 광복절 이곳을 방문한 이수인(여·22) 씨는 “건물이 거의 폐허와 다름없었다”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의 생가가 이렇게 방치돼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덕선정비를 포함한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의 상당수 비지정 문화유산 역시 관리가 미흡하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두류문화연구원의 현황 조사 결과, 산양읍 내 비지정 문화유산 77개 중 안내판이 설치된 유산은 10개, 석축 담장 등 보호시설이 갖춰진 유산은 19개에 불과했다. 어업 시설과 잡목 사이에 방치된 최씨 청덕선정비는 이미 표면이 심하게 마모돼 비문을 해석할 수 없으며 김녕 김씨 효열기실비는 비석 없이 비대만 남아 있었다. 두류문화연구원의 관계자는 “마을 주민에게 비석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효열기실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비지정 문화유산은 부실한 관리로 도난 위험에도 취약하다. 국가유산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국가유산 도난·도굴 회수 현황'에 따르면 2023년 국가유산 도난 사례 중 지정 문화유산은 179건, 비지정 문화유산은 583건으로 비지정 문화유산 도난 건수가 3배 이상 많았다. 회수율에서도 큰 격차를 보였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도난당한 지정 문화유산은 40% 이상 회수됐지만 비지정 문화유산의 회수율은 20%대에 그쳤다. 류호철 충청북도역사문화연구원 유물관리팀장은 “문서나 공예품 등 비지정 동산 문화유산은 개인 소유인 경우가 많아 관리 당국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개인 주택이나 창고, 사당 등 외부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보관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소유자의 미숙한 관리 능력이 유산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류호철 팀장은 “고문서를 보관할 땐 온·습도 조절이 중요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환경에 보관되는 경우가 많다”며 “유물이 손상된 후에도 소유자가 보수를 주저하거나 비전문가가 잘못 보수해 상태가 더 나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의 최씨 청덕선정비. 어업 시설과 잡목 사이에 파묻혀 있다.
마찬가지로 산양읍에 위치한 오광훈·김광인 청덕선정비. 별도의 보호시설 없이 노상에 방치돼 있다.

 

  지정돼도 관리 수준 천차만별

  지정 문화유산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3년 국가유산청이 실시한 국가 지정 문화유산 정기조사 결과, 유산의 관리상태 등급이 하락한 사례는 총 464건에 달했다. 보물 제7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은 2018년 정기조사에서 A등급을 받았으나 전·측면이 흑색으로 변색하는 등의 훼손으로 5년 만에 E등급으로 하락했다. 보물 제811호 경복궁 아미산 굴뚝도 일부 벽돌이 떨어지고 지붕에 균열이 생겼음에도 보수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2018년 A등급에서 2023년 D등급으로 하락했다. 최종택 교수는 “지자체의 관리를 받는 문화유산은 지자체의 예산 상황에 따라서 관리 수준과 보존 상태가 천차만별”이라고 지적했다. 

  지정 문화유산 관리 미흡 원인으로는 크게 인력 부족과 소극적인 예산지원이 꼽힌다. 국가 지정 문화유산을 보수할 때는 단순 물 세척을 하더라도 전문업체를 선정하고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전문적인 현장 관리 인력이 부족해 대처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지자체 문화재 관리 인력은 광역단체 374명, 기초단체 1570명으로 그 총합이 200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자체 문화유산 관리 인력 중 행정직은 총 1034명인데 반해, 기술직과 학예직은 각각 466명과 373명에 불과하기도 했다. 최종택 교수는 “국가와 지자체 문화유산 담당 직원들은 대부분 일반 행정직”이라며 “행정직으로만 이뤄진 문화유산팀이 있을 정도로 전문 관리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정 문화유산에 보수·정비가 필요할 때 지방자치단체가 국비를 지원받기 위해선 국가유산청 심사와 국회 예산안 심의 등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실제로 지방자치단체가 보수·정비를 진행하기까지 평균 1년 반에서 2년의 시차가 발생한다. 조윤재 교수는 “시차 문제는 국가 예산지원 절차상 구조적인 한계”라며 “예산을 신청한다고 해서 전부 지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유산 보수·정비 예산을 신청한 사례는 총 3566건, 신청 총액은 1조2138억 원에 달했으나 실제로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2293건, 실제 지원 총액은 신청 지원액의 42.6%에 그친 5173억 원이었다. 이마저도 전년도 지원 총액 대비 539억 원이 증액된 값이다. 최종택 교수는 “자칫 예산 규모가 커 보일 수 있지만 지정 문화유산 정비에는 건당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이 소요되기도 한다”며 “문화유산 보수·정비 신청 건수를 감안하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지역 대학에 정기 조사 위임해야”

  결국 효과적인 문화유산 관리를 위해서는 관리 인력을 확대하고 예산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 최종택 교수는 “각 지역의 전문 학과와 연구원에게 지속적인 문화유산 실태조사를 맡겨 부족한 전문 인력을 보충해야 한다”며 “대학교나 연구소에서 분기별로 문화유산을 점검한 데이터를 국가유산청이나 해당 지자체에 보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존 인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05년부터 기본교육을 이수하고 특정 문화유산의 소유자나 관리자의 승인을 받은 일반 시민을 해당 문화유산의 지킴이로 위촉해 활동시키는 국가유산지킴이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국가유산지킴이는 관리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도서·산간 지역의 지정·비지정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 점검하고 관리한다. 그러나 지킴이들이 청소 도구나 보수 장비, 홍보 자료 등을 자비로 마련해야 하거나 현장에서 문화유산 출입이 제한되는 등 행정적 지원이 충분히 뒷받침되진 못하고 있다. 

  정부 예산뿐 아니라 민간 기금을 활용하는 것도 방안이다. 2002년부터 국가유산청이 운영 중인 '일반 문화유산 조사 및 보존 관리 지원 사업'은 사업비 전액을 복권 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비지정 문화유산의 보존 및 관리를 위해 101억6400만 원에 달하는 복권 기금이 투입됐다. 조윤재 교수는 “국가유산청 예산 자체가 늘어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국가 예산에만 기대기보다 공익법인의 후원이나 크라우드 펀딩 등 민간 지원을 함께 받는 방안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비지정 문화유산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2023년 9월 시행된 역사 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특정 지역을 역사 문화권으로 지정해 권역별로 문화유산을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최종택 교수는 “*역사 문화권으로 지정되면 당 권역에 있는 비지정 문화유산도 예산 범위 안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개별 유산 중심보단 권역별 문화유산 관리가 더 효율적인 방안”이라 설명했다. 방병선 교수는 “국가유산기본법의 구체적인 하위 법령을 마련해 비지정 문화유산의 보호망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국가와 지자체가 함께 노력해 비지정 문화유산의 가치는 발굴하고 지정 문화유산의 가치는 더 키워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역사 문화권: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무형유산의 생산 및 축적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발전시켜 온 권역.

 

글 | 이다연 기자 dadada@

사진 | 임세용 기자 syl@

사진제공 | 두류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