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든 의사, 의료와 사회를 잇다
김철중(의학과 82학번) 의학전문기자 인터뷰
틈날 때마다 신문 펼쳐
의료인 시선으로 사회 문제 비판
“가짜 건강 뉴스에 속지 않길”
김철중(의학과 82학번)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출신으로 27년째 건강·의료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인이다. 김 기자는 의과대 입학부터 영상의학과 임상 강사까지 18년간 의료계에 몸담았지만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자 기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당시의 선택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안정적인 의사가 되는 걸 포기하고 기자가 되는 걸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기자가 된 걸 후회하진 않습니다. 가짜 뉴스가 특히 많은 의학 분야의 새롭고 유익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할 때마다 큰 보람을 느껴요.”
활자를 사랑한 책벌레 의대생
김철중 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다양한 책을 접했다. “다독을 강조하시는 아버지 덕에 초등학생 때부터 읽을거리를 많이 접했어요. 하교하면 아버지께서 주신 미술 전집을 즐겨 읽곤 했죠.” 중학생이 된 뒤엔 자연스레 신문을 접하기도 했다. “어릴 땐 휴대폰도 없으니 책을 다 읽은 뒤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구독하던 신문에 관심이 생겼죠. 동생과 아침 신문을 보면서 그날 교통사고가 난 지역이나 날씨를 외워 퀴즈를 냈어요. 친구들은 저를 '신문 중독자'라고 불렀습니다.”
글의 매력에 빠진 김철중 기자는 문과 계열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고려대 의과대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제 꿈은 외교관이었지만 어머니께서 제가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바라셨죠. 마침 수학도 곧잘 하는 터라 어머니의 뜻을 따라 의대에 진학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정해진 규율 속에서 생활해 온 그에게 대학의 자유로운 환경은 새로웠다. “고등학생 땐 매일 야간자율학습에 매여 있어 답답한 날의 연속이었어요. 대학에 가고 나서는 수업도 빠지고 친구들과 자주 놀러 다녔죠.”
공부보다는 자유를 즐기던 김철중 기자는 방대한 양의 의대 공부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 차례 유급을 당하기도 했다. “공부엔 집중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놀다가 결국 한 과목에서 F 학점을 받아 유급을 당했어요. 당시엔 한 과목만 F 학점을 받아도 바로 유급이었거든요. 두 번씩이나 유급을 받았단 게 자존심 상하고 힘들었죠.” 유급생이라는 암울한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건 신문과 소설이었다. “진급하지 못하고 F 학점을 받은 과목만 재수강을 해야 하니 다른 의대생 친구들보다 남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 시간을 중앙도서관에서 신문과 소설을 읽는 데 썼죠.” 그는 당시의 독서 경험이 기자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신문을 오랜 시간 많이 읽으니 기자가 돼 글을 쓸 때 정말 편했어요. 당시에는 도피처로 도서관을 찾았지만 결국 기자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도운 보물이 됐죠.”
영상의학과 전문의에서 기자로
두 차례 유급 후 김철중 기자는 동기들보다 뒤처진 학습량을 무리해서 따라잡는 대신 자신의 오랜 취미인 신문 읽기를 특화해 의학 칼럼니스트 겸 의사가 되고자 다짐했다. “남들에 비해 느린 2년을 저만의 방법으로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다 신문에 대한 애정을 살려 의학 칼럼니스트가 되는 걸 떠올렸죠. 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건강을 주제로 기사를 쓰는 일이 뿌듯할 것 같았어요.” 김 기자는 기사 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제대 후 고려 언론대학원에 지원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면접에서 의사는 본업에 집중하기도 벅찰 거라며 거절당했죠. 그 말을 듣곤 의료인 생활과 언론인 생활을 병행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글쓰기를 깊이 배우고 싶다는 결심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바로 다음 학기에 다시 지원한 김 기자는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고 언론대학원에 수석 입학했다. “낮에는 의국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밤에는 기자나 PD 등 언론인들과 어울리며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일 안암병원에 있으면서도 언론대학원이 있는 정경대 쪽으로 넘어갈 생각만 했어요.”
언론대학원 생활을 즐기면서도 김철중 기자는 자신이 전업 언론인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바람으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인턴 시절을 보내며 생긴 영상의학과 교수라는 꿈 또한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의료 검사 결과지를 분석해 어떤 질병인지 진단하는 영상의학과가 매력적이었어요. 방사선에 대한 논문도 많이 써 보며 교수가 돼 더 깊은 연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김 기자는 레지던트와 펠로우, 임상 강사를 거친 후에도 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다. IMF 외환 위기로 신규 교수 자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임상 강사를 2년 정도 하면 교수로 임용되는데 그러지 못해 답답했어요. 임용이 되지 않으면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생에 대한 선택권을 내가 쥐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의대 교수라는 꿈을 다시 고민하게 됐죠.” 한 가지 분야만 공부하는 의대 교수의 삶이 정말 즐거울까 하는 의문에도 사로잡혔다. “교수는 한 분야만 깊게 파고드는 직업이에요. 한때 논문도 즐겁게 쓰며 연구하는 게 괴롭지는 않았지만 평생 연구만 하기엔 지루하고 답답해 보였죠. 언론대학원에서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언론인들을 보면서 저도 여러 주제를 고민하는 삶이 더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안정적인 직업을 뒤로하고 기자의 길을 선택하려는 그를 말렸다. “제가 의사가 되길 바라셨던 어머니께 언론인이 되겠다고 말씀드리자 큰 충격을 받으셨어요. 첫 진로 선택에 큰 영향을 주셨던 어머니가 만류하니 저 스스로도 의사가 아닌 기자로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교수 임용을 포기하고 언론인이 되기로 결심한 건 사회가 의학전문기자를 필요로 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만성 질환자가 늘고 있는 만큼 정확한 의학 정보를 전달하는 의학전문기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메스를 잡고 환자를 살리는 것도 좋겠지만 일상 속에서 올바른 건강 상식을 전달해 대중의 건강을 책임지는 기자가 되는 일이 더욱 의미 있을 거라 확신했죠.”
메디컬 저널리즘의 초석을 닦다
1999년, 김철중 기자는 조선일보에 입사하며 의학 전문 기자로서의 새 걸음을 내디뎠다. “전문의 출신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의료계 관계자를 쉽게 만나 신속하고 올바른 정보를 얻는 데 유리했어요. 전문 지식을 가진 제가 직접 사실 검증도 할 수 있었죠. 건강 정보에 대한 갈증이 커지던 시기라 의사 출신인 제가 보도한 기사들을 신뢰하는 독자가 많았습니다.” 당시 유일무이한 의사 출신 의학전문기자를 둔 조선일보는 '건강' 코너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김철중 기자는 20년 넘게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의료 문제들을 공론화하며 변화를 이끌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심폐소생술 교육 확대와 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자동체외식제세동기)의 상용화를 다룬 기획을 꼽는다. “2007년 10월 인천공항에서 갑작스레 쓰러진 터키인에게 누구도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아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만 진행했어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당시만 해도 심폐소생술에 대한 인식이 저조할 때라 아무도 실시할 수 없었던 상황이 안타까웠죠.” 그는 시민과 구급대원의 낮은 심폐소생술 시행률과 인천공항 전체 건물에 AED가 고작 한 대뿐이었다는 점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제 기사가 보도된 이후로 AED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어요. 2019년 기준 길거리에서 일반인들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비율이 11배나 늘었고 다중 이용 시설에 AED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도 마련됐습니다. '의사였으면 100명을 살렸겠지만 기자로서 대중에게 심폐소생술과 AED에 대해 널리 알린 덕에 1000명은 족히 살린 것 같다'라는 친구의 칭찬을 듣곤 엄청난 보람을 느꼈어요.”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속 메디컬 저널리즘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고 생각한 김철중 기자는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다. “가짜 정보가 판치는 팬데믹 속에서 언론이 의료 이슈를 더욱 신중히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부와 의료계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아 코로나 백신에 관한 보도 방향을 다루는 심포지엄도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의학 정보를 제공하는 의학 전문 기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잘못된 의학 정보가 쉽게 퍼지면 잘못된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죠. 의학전문기자를 양성해 정확한 의료 정보를 안내할 수 있는 언론을 이끌어야 합니다.”
김 기자는 유튜브 채널 '김철중의 이러면 낫는다'를 통해 당뇨병, ADHD, 골다공증 등 다양한 질병의 예방법을 전문가와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제가 기자가 된 20세기 말과 비교하면 지금은 언론과 종이 신문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어요. 하지만 콘텐츠의 힘은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지면뿐만 아니라 유튜브 같은 온라인 창구를 통해 다가가야 하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가 만든 콘텐츠가 대중들이 가짜 뉴스에 속지 않도록 도왔으면 해요.”
김철중 기자는 의료와 건강 분야의 '내비게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건강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사람들이 제 기사를 보고 자신의 몸을 더욱 잘 챙길 수 있길 바라요. 인생의 길목마다 도움되는 정보를 알려줬던 친근한 기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글 | 박병성 기자 bspark@
사진 | 김준희 기자 hee@
사진제공 | 김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