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리그 살려야 한국 축구가 산다

2025-03-24     김재현 기자

대졸 선수 1.8%만 프로 입단

대학 선수 데뷔 막는 U22 제도

제도 정비하고 역량 강화해야

 

 

지난 20일 본교 축구부 선수들이 녹지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본교에서 K리그1에 진출한 선수는 단 두 명이다.

 

  한때 홍명보, 안정환, 황선홍 등 스타 축구 선수를 배출하던 대학축구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지난해 기준 대학 선수들 중 단 1.8%만 K리그 프로팀에 입단했으며, 명문 대학 구단으로 알려진 고려대에서조차 지난해 해외는 고사하고 K리그1에 2명만을 진출시킨 수준에 머물렀다. 대학축구가 축구 인재의 불모지가 된 이유는 프로 구단 주도의 육성 체계와 K리그의 U22 의무출전제도가 고교 축구 선수들이 대학 대신 프로 리그로 직행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축구는 선수들이 프로 입단 전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고 다양한 전략을 가진 축구 선수를 육성해 부진한 한국 축구의 활로가 될 수 있다. 박한동 한국대학축구연맹 회장은 “대학 리그가 활성화되면 어린 선수들을 보호하고 늦은 나이의 선수들에게 프로 진출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 못 가고 전력 약화된 대학축구

  현재 대학축구 리그에서는 81개 팀과 2563명의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대졸 선수 대부분이 프로로 진출하던 전성기와 규모 차이는 없으나 이제는 전체 대학 선수 중 한해 평균 47명만 프로에 진출할 정도로 대학축구는 외면받고 있다. 박한동 회장은 “80~90년대 당시 대학은 선수들이 프로 리그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다”며 “대학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국가대표에 뽑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명보(체육교육과 87학번) 교우는 대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수비수로 발탁됐고, 안정환과 황선홍도 각각 아주대와 건국대 재학 중 국가대표 공격수로 자리 잡았다. 대학축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이기도 했다. 신우근 고려대 여자축구부 감독은 “당시 대학축구 경기가 열렸다 하면 운동장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2008년 대한축구협회가 유스팀 창단을 의무화하고 프로팀이 자체적으로 선수를 발굴하고 키우는 육성 체계가 발전하면서 대학축구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다. 박 회장은 “초-중-고-대-프로의 엘리트 체계에서 초-중-고-프로 체계로 전환되며 대학이 담당하던 선수 육성의 역할이 빠르게 파괴됐다”고 지적했다. 최태호 연세대 축구부 감독은 “프로 구단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어린 유망주를 선호하지만 대학에서 4년을 보내면 나이가 많아져 프로 진출의 기회가 더욱 제한적이게 됐다”고 말했다.

  촉망받던 선수들이 곧바로 프로로 직행하니 대학축구의 평균 실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대학 선수들로 한국 대표팀이 구성되는 축구 경기인 AFC U20 아시안컵에서는 최다 우승 국가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2014년부터 2025년까지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으며, 2025년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 정기전에서도 한국 대학 선발팀이 일본 대학 선발팀에 0-1로 패배했다. 박 회장은 “옛날엔 대학 구단과 프로 구단이 맞붙어도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경기 성립이 어려울 정도로 전력 차가 크다”고 말했다.

 

  대학 선수 기회 뺏는 U22 제도

  어린 선수 위주로만 출전 기회를 보장하는 U22 의무출전제도도 대학 리그 약화의 이유로 꼽힌다. 2013년 도입된 U22 의무출전제도로 인해 K리그에선 만 22세 이하 선수들을 의무적으로 기용해야 하지만 선수들이 대학을 졸업한다면 기준 나이를 넘겨 U22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권용승 고려대 축구부 주장은 “과거보다 더 많은 선수가 어린 나이에 기회를 얻는 건 사실이지만 U22 제도 때문에 외면받는 대학 선수들도 많다”고 말했다. 신우근 감독은 “U22 제도 때문에 재능이 있어도 프로에 빨리 진출하지 못한 3, 4학년들이 쉽게 좌절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태호 감독도 “대학을 마치고 진출하는 선수들이 젊은 유망주나 입지가 탄탄한 원로 선수들에 밀려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U22 제도로 인해 실력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찍 프로에 진입한 선수들이 기용되는 것도 문제다. 신우근 감독은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은 이른 진출이 약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에게는 무작정 빨리 프로에 진출하는 게 좋지는 않다”며 “당장 프로 선수들과 경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경기에 많이 못 나가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저하돼 낙심하고 축구를 그만두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염기훈 전 수원삼성블루윙즈 감독은 2023년 SPOTV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5분 만에 교체돼 나오는 U22 선수들의 멘탈을 잡아주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최태호 감독은 “좋은 선수라도 22세가 지나게 되면 외면받고 또 다른 22세 이하 선수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한국 축구 발전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수가 프로 입단 전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단계로서 대학 리그를 활성화하기 위해 U22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한동 회장은 “축구 선수의 전성기는 대개 20대 중반 이후”라며 “대학 리그에서 뛰고 졸업한 선수들이 프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U22 제도가 대학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호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대학 리그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 프로에 진출해도 늦지 않은 환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지역 연계·마케팅으로 관심 모아야

  대학 리그가 강해지면 국내 전체 축구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한동 회장은 “프로 구단별로 획일적인 방식으로 어린 시절부터 선수를 육성하니 경기 스타일이 비슷하다”며 “대학축구의 활성화로 다양한 스타일의 선수를 발굴함으로써 더 풍성하고 경쟁력 있는 리그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우근 감독은 “대학 리그가 활성화된다면 잠재력 있고 창의적인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해서도 재능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축구에 대한 부족한 관심이 리그 활성화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박 회장은 “대학 리그의 상품성이 없으니 외부의 재정 지원이 한정적이다”며 “스폰서가 부족하니 선수 훈련, 시설 개선 등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경기당 평균 관중 수가 기본 1000명을 능가하는 미국 대학축구에서는 티켓 판매, 스폰서십, 중계권 등 다양한 수익원을 통해 연간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지만 국내 대학 축구는 평균 관중 수가 100여명 정도에 불과하며 연간 시장 가치도 1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대학축구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미국 대학 리그처럼 대학 간 경쟁을 촉진하고 정기적인 토너먼트와 지역 대회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SNS 및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브랜딩을 강화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한 이벤트를 통해 관중 참여도를 높이는 것도 필수적이다. 최태호 감독은 “대학 리그가 활성화돼 프로 구단의 관심도가 높아진다면 당장이라도 프로에 진출해 경쟁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다”고 전했다.

  대학축구 리그와 프로 리그 간 연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한동 회장은 “연맹에서는 대학 선수들에게 한정된 프로 진출 기회를 늘리기 위해 아시아, 동유럽 등 해외 리그와의 교류를 확대하고 각 대회에 스카우터 존을 둬 프로 구단의 관심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글|김재현 기자 remake@

사진|김준희 기자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