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쌀롱] 뮤지컬 <라이카> - 기억과 변화, 공존의 출발점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평론가들의 비평과 감상을 전합니다.
2025년 봄, 뮤지컬 창작진들의 신선한 시도들이 진행 중이다. 뮤지컬 <라이카>(한정석 작, 이선영 곡, 박소영 연출, 3월 14일~5월 18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는 2021년 창작산실 대본 공모 사업에 당선된 후 완성한 작품이다. 무대 위에는 강아지, 식물, 우주인과 같은 ‘존재’ 혹은 비인간 생명체들이 가득하다. 이 작품은 SF적 상상력에 동물의 권리, 미래 위기까지 담아내 뮤지컬이 가볍다는 통념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야기는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선에 태워진 우주 탐사견 라이카와 소행성 B612의 왕자가 만난다는 설정 아래, 라이카와 <어린 왕자>의 다음을 그려낸다. 라이카(나하나, 김환희, 박진주 분)는 교감을 나누던 훈련사 캐롤라인(백은혜, 한보라 분)을 그리워하지만, 왕자(조형균, 윤나무, 김성식 분)는 귀환 장치가 없었던 실험의 진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장미(진태화, 서동진 분), 바오밥, 캐롤라인을 닮은 로봇 로케보트와 함께 지구를 파괴하자 요청한다. 라이카는 세계의 진실과 폭력적 제안으로 혼란을 겪지만,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부탁하고 누구도 아프지 않을 방법을 찾고자 한다.
<라이카>는 어른과 순수한 아이라는 <어린 왕자>의 테마를 이기적 인간과 희생된 비인간으로 변주하였다. 라이카와 왕자는 인간에 대한 신뢰 상실이란 키워드로 연결된다. 우주를 지키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겠다는 왕자의 주장은 인간을 위한 동물실험과 닮아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겠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포스트 휴먼 관점에서 위 방식은 ‘함께’를 고민하지 않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은 앞으로 동물, 식물 혹은 로봇과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이 작품은 라이카와 왕자를 통해, 이분법적 구도의 위험성과 공존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덧붙여 자신의 아픔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장미의 ‘나를 사랑하라’는 외침도 꽤 설득력이 있다.
작품 속 시간대는 1957년과 2008년이다. 특히 2008년은 과오를 기억하게 된 시점이다. 라이카 이후로 원숭이, 고양이, 거북이 등이 우주 실험에 동원되었다. 우주 실험 데이터는 그들의 실패로 축적될 수 있었지만, 동물들은 기억되지 않았다. 이 폭력적인 방식은 50년이 지난 뒤에야 라이카를 추모하는 동상,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움직임처럼 조금씩 변화되는 중이다. 문제가 벌어진 뒤 이를 인식하고 극복한 뒤 새롭게 나아가는 과정에는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뮤지컬은 사과받지 못한 라이카를 통해, 인간 외 존재들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을 슬며시 보여준다.
<라이카>는 초연임에도 무대, 영상, 조명, 넘버 완성도가 높다. 사실에서 출발한 SF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설득력을 높였다. 실험 기록 및 사진, 어린 왕자 이미지, 뱀구멍(블랙홀), 행성의 3D 맵핑 영상과 함께, 세 겹의 구조물로 공간 이동의 역동적인 순간을 구현하는 등 작품 내 볼거리가 가득하다. 또한 15인조의 풍성한 라이브를 바탕으로 한 26개의 넘버는 캐릭터의 입장과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변주하여 극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 낸다.
인간을 위한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라이카>는 국가 체제와 지배 권력이 도구적 합리성을 주장하여 비인간을 무시한 이후를 차근히 그려낸다. 작품은 진실이 밝혀지는 시간, 당사자의 고통, 공존의 가치, 휴머니즘 등의 주제 의식을 뮤지컬로도 충분히 고민할 수 있음을 증빙한다. 다양성이 존중받을수록 기울어진 가치의 문제점은 더 주목받게 된다. 공존 역시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이다. 그럼에도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시선을 통해 조금씩 시간이 걸려도 방법을 찾아보자는 라이카의 고민은 귀 기울일 만하다.
정명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강사·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