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횡단] 남겨진 이들에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어떤 사람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참극이다. 2019년 10월 다섯 살 동희는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이라던 의사의 말과 달리 동희는 수술 후 회복하지 못했다. 각혈까지 하며 상태가 악화됐고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뇌 대부분이 손상된 아이는 5개월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소중한 자식을 떠나보내고도 부모는 병원으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동희 부모가 병원을 상대로 민사와 형사 소송을 제기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의료진이 사망 원인을 설명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의료진의 과실을 감추기 위해서였을수도, 아니면 불필요한 법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병원의 침묵이 유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겼다는 점이다. 설명 한마디 없이, 사과 한마디 없이 아이를 잃은 부모는 법정에서 진실을 찾아 헤매야 한다.
정부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의 설명을 의무화하려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환자 측이 의료진으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사고의 원인을 이해할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유감 표명이나 사과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할 계획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의료진이 방어진료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설명 의무가 의료 행위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허나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사고의 원인을 알고 싶고, 누군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비정하다. 병원이 법대로 하라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하면 환자들은 끝없는 법정 싸움에 내몰린다. 의료진이 사과와 설명을 거부하는 한 피해자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각기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부모에게는 가족이 전부다. 동희의 아버지 김강률 씨는 백혈병을 앓으면서도 아들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긴 소송과 투병 끝에 결국 동희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가족은 동희의 어머니와 동희의 동생뿐이다. 남겨진 이들은 강해져야만 한다. 어머니는 첫째 아이의 억울함을 밝혀내고, 둘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버텨낼 것이라고 남편과 약속했다.
가족을 잃고 지옥에 있는 남겨진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직 끝맺지 못한 일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단단한 출발선 위에서 사건의 소실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어머니의 미소를 그려본다.
김재현 기자 rem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