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FLIX] 꿈이 일상을 집어삼킬 때

高FLIX는 고대인이 애정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2025-03-30     구자현(문과대 서문23)

 

<위플래쉬>

별점: ★★★★★

한 줄 평: 무너지는 일상과 광기의 물아일체


  미친 듯이 드럼을 치는 주인공에게 조명이 번쩍이며 카메라가 다가가는 영화의 마지막 쇼트는 <위플래쉬>를 본 사람들의 기억에 아마도 가장 강렬하게 남는 순간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카메라의 구도를 이야기와 엮어 파헤쳐보면 영화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위플래쉬>는 2014년 개봉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음악 영화다. ‘채찍질’을 뜻하는 제목답게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숨이 멎을 듯 휘몰아친다. 음악에 딱딱 맞춰 쾌감을 주는 컷 편집이나 주연 배우들의 기막힌 연기력 그리고 셔젤 감독 특유의 화려한 카메라 기법 등 두말할 것 없이 장점이 넘치는 영화지만 모두 제쳐두고 작품 내 인물들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비평해 보려 한다. 이야기는 크게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드러머의 꿈을 가진 학생 앤드류 네이먼, 셰이퍼 음악학교 교수인 플레쳐 교수, 마지막으로 앤드류의 아버지인 짐이다.

  작중에서 플래쳐 교수는 앤드류의 또 다른 아버지로도 보인다. 둘의 직업은 교수와 교사로 유사하고, 플래쳐는 나이로도 앤드류의 아버지뻘이다. 하지만 아버지인 짐의 태도는 정확히 플래쳐의 대척점에 서 있다. 그리고 영화 안에서 두 인물이 만나는 순간은 없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플래쳐 교수의 등장 이후 바로 다음 시퀀스에 짐이 등장하는 등 두 인물이 병렬적으로 배치되긴 하지만, 둘은 마지막을 제외하면 한 번도 같은 공간에서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같은 공간에 있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절대 두 인물을 같은 프레임에 잡지 않는다는 것이 특이하다.

  짐은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교사로 활동한다. 앤드류가 음악을 하는 것이 탐탁치 않지만 한편으로는 응원하기도 하고 음악이 아니어도 길은 많다는 조언도 해주는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다. 반면 플래쳐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앤드류를 극한으로 내모는 지도자이며, 그 과정에서 앤드류의 아버지를 실패자라 공격하기도 한다. 이때 플래쳐가 앤드류에게 끼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짐의 영향력은 점점 작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플래쳐를 ‘(극단적) 꿈’ 등의 상징으로, 짐을 ‘일상’의 상징으로 대입해 해석할 수 있다. 앤드류가 플래쳐와 가까워지기 전이나 멀어진 후에는 짐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신이 나온다. 그러나 플래쳐와의 관계가 격렬해지면 가족 식사 자리에서는 짐과 크게 싸우는 등 예술에 극단적으로 집착할 때마다 일상과는 소원해진다.

  다시 돌아가 영화의 마지막에 주목해 보자. 첫 무대를 완전히 망친 앤드류는 짐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다시 무대로 올라간다. 그 후 앤드류는 광기의 연주를 시작하고, 짐은 놀람과 슬픔 사이의 어떤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이 시퀀스는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독립해 예술가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 쇼트에 주목해야 한다. 플래쳐의 등 뒤에서 그의 시선을 따라 앤드류에게로 향하는 카메라. 이는 정확히 영화의 첫 구도와 일치한다. 드럼을 연습하는 앤드류에게 다가가던 카메라는 플래쳐 교수를 비추며 그 구도가 플래쳐의 시점 쇼트였음을 보여주며, 마지막에도 같은 구도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표면적으로는 앤드류가 두 신의 중심에 있기에 그가 프레임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플래쳐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구자현(문과대 서문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