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 지원으로 고려대 양자 경쟁력 키워야
양자 기술 국내 4위 수준
통합기구 없이 개별 과제 수주만
“학교 자체 연구 필요해”
정부의 대규모 투자 속 고려대 연구진도 양자 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흩어져 있는 연구진들을 통합·관리하는 학교 차원의 조직이 없어 연구진 간 협업보다는 개별 정부 과제 수주에만 집중하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학교의 지원 부족으로 한계를 맞았다. 이에 고려대 양자 연구자들은 양자 기술 분야 연구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융합연구·산학연 협력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드웨어’에 집중된 연구
양자 기술은 △초고속 컴퓨터 △해킹이 어려운 통신 △극도로 민감한 센서 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다. 정부는 올해 2000억 원을 양자 기술 연구에 투자하는 등 대학의 연구를 독려하고 있다. 고려대도 최근 5년간 양자 기술 신임 교수 3명을 선임해 양자의 4대 기술인 양자컴퓨터·양자센싱·양자통신·양자기초를 전공하는 교수진을 구축했으며 대학원생 인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노광석(전기전자공학부 초신뢰양자인터넷센터) 연구교수는 “양자대학원을 졸업하려면 국내외 연구 기관·기업에서 6개월 이상 인턴십을 이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학생들이 현장에서 배울 기회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커지는 지원 규모에 반해 지표상 성과는 미비하다.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고려대의 양자 기술 관련 논문 수는 약 20편으로 국내 대학 중 4위다. 연세대 등 타 대학은 양자컴퓨터를 도입하고 활용하는 소프트웨어 연구가 주를 이루지만 고려대는 양자컴퓨터를 직접 만들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하드웨어 분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혁(이과대 물리학과) 교수는 “물리학과 내 양자를 연구하는 6명의 교수 중 5명이 하드웨어 분야 전공이고 실험 중심의 연구가 많아 논문 작성 속도가 느린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논문 인용 횟수도 577회로 서울대와 카이스트의 절반, 1위인 성균관대의 3분의 1 수준이다. 특정 세부 전공 분야에 연구가 편중돼 있어 타 대학에 비해 분야 내 상대인용지수(FCR) 대비 전 분야 상대인용지수(RCA)도 낮다.
지원 부족에 과제 수주 타격
연구자들은 학교가 고려대 교수들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윤태현(이과대 물리학과) 교수는 “현재 고려대 양자 연구는 대부분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정부 과제를 수주하는 것”이라며 “100억 원씩 10년간 지원하는 IRC 사업 과제에 선정되지 못한 이유도 점수의 절반을 차지한 ‘학교 지원 의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절대적인 연구 인력도 타대학에 비해 훨씬 적다.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고려대 소속 전문가 수는 34명으로, 서울대(52명), 카이스트(48명), 성균관대(50명)에 비해 적다. 해외 대학들의 경우 연구 인력이 기본 세 자릿수를 넘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양자 기술을 연구하려면 물리학·전기전자공학·컴퓨터학과의 교류가 필요한데 연구 인력을 한데 모을 조직이나 기관도 없다. 고려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사업으로 지난 2022년 경희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 8개 대학과 함께하는 고려대 주관 양자대학원을 구성했지만 이는 교내 연구를 위한 기관이 아니다. 윤태현 교수는 “고려대 주관 양자대학원은 교내 연구인프라가 아닌 여러 대학이 연합해 운영하는 기관이고 연구보다는 교육을 담당한다”며 “각 분야의 고려대 교수가 모두 참여하는 학교 연구 조직은 없다”고 토로했다.
돌파구는 융합연구·네트워킹
고려대의 양자 연구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정부연구기관과 함께 설립하는 공동연구소가 제시된다. 윤태현 교수는 “교수들은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기에 연구에 오로지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국립연구소와의 공동연구소를 설립하면 보다 깊은 연구가 가능할 뿐 아니라 대학에서 연구한 학생이 졸업 후 국립연구소로 향하는 선순환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국립표준과학연구소와 공동연구소를 설립한 콜로라도 대학(JILA 연구소)과 메릴렌드 대학(JQI 연구소)은 노벨상 수상 등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정부연구기관뿐 아니라 민간과의 협력으로도 양자 하드웨어에 집중된 연구를 보완할 수 있다. 김민혁 교수는 “국내에는 양자 알고리즘 관련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많으니 하드웨어 중심의 연구에서 생기는 공백을 이들과의 협업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종수 연구진흥팀 주임은 “양자 분야의 글로벌 R&D 네트워크 기반 구축을 위해 SKERIC 등 다양한 국제연구협력 프로그램에서 양자 분야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유관 학과 간 융합연구를 돕는 통합연구단이 구성되면 교수들이 직접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자체 연구도 가능하다. 김민혁 교수는 “고려대의 양자 연구는 대부분 물리학과 교수가 맡고 있어 컴퓨터학과나 신소재공학부 등 타 학문 연구진과의 학문 교류가 필요하다”며 “연구단을 구성해 학문 교류를 활성화한다면 더욱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글 | 백하빈·서윤주 기자 press@
사진 | 임세용 기자 sy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