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졸띠] 공간이 주는 치유, 책보냥

138. 성북 ‘책보냥’

2025-05-05     유서연(경영대 경영22)

 

  4학년이 되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진로와 취업 준비의 고민 속에서 매 순간을 알차게 써야 하고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렇게 채찍질을 거듭하다 보면 가끔은 잠시 인생에서 로그아웃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런 슬럼프를 극복할 때 필요한 것은 감성의 수혈이다. 

  나는 평소 숨겨진 공간을 찾아다니는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학교 오는 날엔 가끔 성북구 곳곳을 놀러 다니곤 한다. 안암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쯤 가면 한성대입구역 인근의 고즈넉한 동네가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멋진 한옥이 나오는데 나무 대문 옆의 초인종을 누르면 두 마리 고양이가 맞이하는 ‘책보냥’에 들어갈 수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책보냥은 고양이 관련 서적을 주로 다루는 독립 서점이다. 김대영 작가가 하로와 하동이라는 두 고양이와 함께 이 서점을 운영한다. 나는 작은 마당에선 고양이들의 성장 서사가 담긴 사진을 살펴본 뒤 슬리퍼로 갈아신고 내부 공간을 본격적으로 둘러봤다. 운이 좋게도 하로와 하동이 모두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따금 고양이들이 내게 다가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 고양이의 일상적인 순간들을 담은 사진집부터 고양이 관련 일본 서적, 그리고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같은 익숙한 책까지. 작가님이 직접 엄선한 책들로 채워진 서가를 보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삶에 막연한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방문객들이 남긴 방명록을 읽어볼 때는 나와 타인과 고양이의 삶이 이 공간에서 잠시 교차하고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소품 몇 가지를 구매하고 한옥을 나섰다. 나무 대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간의 체험은 종료됐고 나는 현실로 복귀해야 했다. 그 단절이 선명히 느껴질 때 오히려 책보냥의 특별함은 더 깊이 다가온다. 난 다시 현실에 로그인해야 하지만 고양이들과 함께한 경험의 잔상은 앞으로 나아갈 힘이 돼줄 것이다.

 

유서연(경영대 경영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