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문을 읽고] ‘이름 짓기’의 정치학
산업부에서 각종 유통 기업들을 출입하며 매일 체감하는 게 있다. 별 내용 없는 보도자료라도 제목의 ‘야마’가 선명하게 잡히는 순간 메일함 클릭을 망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루에 쏟아지는 보도자료만 대략 100여 건. 그 안에서 클릭을 유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업 입장에서는 반쯤 성공한 셈이다.
좋은 이름 짓기는 크고 작게 사람을 움직인다. 이를테면 기사의 헤드라인, 선거 슬로건, 기념품, 도시와 공동체의 정체성은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오래 존속되거나 순식간에 잊힌다. 2018호는 이러한 이름의 힘을 예리하게 짚었다.
문화면 기획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시 브랜드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뤘다. ‘Hi Seoul’에서 ‘I·SEOUL·U’를 거쳐 ‘Seoul My Soul’까지, 창의성이 빛나는 이름들이 쏟아졌지만 그 안에 쌓여야 할 시간과 기억은 매번 초기화됐다. 그런 점에서 문화면은 이름을 바꾸는 일이 단순한 리브랜딩이 아니라 결국 권력의 흔적을 공간에 덧칠하는 작업이었음을 기민하게 포착했다.
부산광역시 브랜드 교체, 대구시 슬로건 변경, 고양시 마스코트 폐지 등 지역 사례를 촘촘히 짚어낸 대목은 특히 설득력 있었다. ‘누가 만들었느냐’에 집착한 결과로 나타나는 지속 가능성 없는 이름짓기는 사회적 비용 낭비, 정체성 혼란, 시민 소외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지역 특색 없이 대량 복제되는 기념품 문제를 다룬 기사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세종시 복숭아빵 업체의 그리스·중국산 복숭아 사용 문제를 단순한 팩트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지역성과 브랜드의 본질을 묻는 시선으로 기획을 확장해 낸 점이 인상 깊었다. 같은 아이템을 참고해 써보고 싶을 만큼 훌륭한 접근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한편 학내 보도면에서는 또 다른 층위의 ‘이름 짓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캠퍼스는 새 총학생회 집행부를 출범시켰고, 세종캠퍼스에서도 총학을 제외한 모든 단과대가 보궐선거를 통해 정식 학생회를 구성했다. 대리자에 불과했던 비대위 체제를 끝내고 학생회를 다시 꾸렸다는 것은 이 공동체가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정권에 따라,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꾸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름을 얻은 즉시 그 이름을 지켜야 할 책임도 함께 짊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갓 도착한 봄의 캠퍼스 풍경은 지금 한국 정치가 겪고 있는 조기대선 국면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인권 사업을 둘러싼 우려 속에 출범한 서울의 새 총학생회가 그 우려를 기우로 바꿔내길 기대한다.
이다연 국민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