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깊어지는 서울 지하상가, 손님 잡을 매력 갖추려면

서울 지하상가 부흥 방안 분석

2025-05-05     이태희 취재1부장

유동 인구 있지만 장사 안 돼

불황 이어져 임대료도 부담

새로운 경험 제공해야 활성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고투몰에서 한 상인이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600개가 넘는 고투몰 상가의 80%는 불법 전대 중이다.

 

  지하철의 등장과 함께 탄생한 서울 지하상가가 위기를 맞았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13.3%였던 서울시 지하상가 계약 해지율은 2023년 15.6%, 2024년 15.9%를 기록하며 상승하고 있다. 반대로 상가 수는 2020년 1617개에서 2022년 1564개, 2024년 1525개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위기를 타개하려면 공간 자체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인균(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코로나가 끝난 뒤 소비자들은 상품뿐만 아니라 경험도 중요시한다”며 “지하상가만의 스토리텔링과 오감 자극 요소들이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하상가, 위기의 일상화

  한산한 을지로 지하에 위치한 시티커피.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찻잔이 진동하는 카페다. “30년 넘게 장사하면서 IMF나 코로나 때보다 지금이 제일 힘들어.” 카운터에 선 손경택(남·73) 씨가 푸념한다. 낡은 카운터 벽 메뉴판에는 ‘비엔나커피 2500원’ ‘둥글레차 2000원’ ‘헤이즐럿 3000원’이 적혀 있다. 저렴한 가격이 영업 철칙이냐는 물음에 손 사장은 단호하게 말한다. “내가 (가격을) 안 올려. 올리면 손님이 안 와. 그럼 망해.”

  강남역 지하도상가는 늘 많은 유동 인구로 붐비지만 프랜차이즈 카페를 제외한 가게들엔 손님 발길이 뜸하다. 점주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가게 앞을 서성이다가도 이내 매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 앉는다. 옷가게 가인의 사장 김경랑(여·63) 씨도 9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불황이 끝나지 않자 폐업을 고민하는 중이다. “오래 장사하다 보니 생긴 단골들이 전에는 계절마다 두 번씩 와서 10벌, 12벌씩 사 갔어. 그런데 요즘엔 많아야 한 번씩만 오고 옷을 많이 사지도 않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고투몰은 서울 최대 규모의 지하도상가로 강남역 지하도상가보다 세 배 많은 상가가 모여 있다. 이곳에선 행인이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인사를 건네며 손님맞이를 하는 상인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고투몰의 상황도 강남역 지하도상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 품목 세일’ ‘정리 세일’을 큰 글씨로 붙여놓은 상가가 많다. 오후 7시가 넘어가자 매장 철제문이 하나둘씩 닫혔지만 몇몇 상인들은 삼각대에 휴대폰을 거치하고 옷가지를 들었다가 놓기 시작한다.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온라인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하기 위해서다. “예전처럼 중국인, 일본인도 안 오니 별 수 있나. 휴대폰에 찾아오는 한 명, 한 명에게라도 친절히 대하고 발품 팔아서 버텨야지.”

 

  물가 상승·트렌드 변화에 속수무책 

  지하상가가 불황을 겪는 원인으로 원자재 물가 상승이 꼽힌다. 그간 지하상가는 지상상가보다 낮은 임대료를 무기로 마진율을 낮추고 판매량을 높이는 박리다매 전략을 취했기에 물가 상승 영향에 더 취약하다. 지난해 지하철 상가를 중심으로 확산한 1000원 빵은 저렴한 가격으로 호응을 얻었다. *깔세를 내며 기존 매장 인테리어에 임시 가판대만 놓고 영업하는 등 운영 비용을 낮췄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원자재 물가 상승 후엔 가격 유지가 힘들어졌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에서 1000원 빵을 판매하는 최명자(여·62) 씨는 “싸게 파는 만큼 많이 팔아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기에 주말에도 쉬지 않고 출근한다”며 “1000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가격을 올리지 못하지만 최근 몇몇 빵은 50원씩 납품 단가가 올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지하공간 특유의 열악한 환경도 지하상가의 부진과 관련이 있다. 서울 지하상가는 크게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역 상가와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지하도상가로 나뉜다. 관리 주체와 법적 지위는 다르지만 모두 노후화 문제가 심각하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1~4호선과 함께 지어진 서울 지하상가 대부분은 온도 조절과 환기 기능 위주의 공조 시설만 갖추고 있다. 정현우(문과대 중문21) 씨는 “지하철에 있는 상가는 공기가 쾌적하지 않아 별로 방문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굳어진 비대면 쇼핑 문화도 손님들이 지하상가를 이용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다. 영등포 지하상가는 영등포역 지하도상가, 영등포시장 지하쇼핑센터, 영등포로터리 지하쇼핑센터, 영등포뉴타운지하상업시설의 옷가게들이 한데 밀집해 있지만 젊은 층들은 이곳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영등포뉴타운지하상업시설 임대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많은 소매점이 온라인 쇼핑몰로 바뀌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겼다”며 “영등포 지하상가를 찾는 사람들은 인터넷 쇼핑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고터몰에서 21년 동안 장사한 한옥주(여·57) 씨는 “원래 맞은편 가게처럼 커튼과 블라인드를 판매했는데 코로나를 거치며 온라인 주문이 보편화됐다”며 “2년 전 기존 업종보다 오프라인 경쟁력이 남은 의류업으로 업종을 바꿨다”고 밝혔다.

 

  임대료·불법 전대에 고통받기도

  2023년부터는 상가 임대료까지 높아지며 상인들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한옥주 씨는 “2023년 재계약 이후 서울시에 내야 하는 임대료가 46% 올랐다”며 “노동 시간을 늘려가며 높은 임대료를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지하상가는 서울시가 관리하는 공공 상가인 만큼 경기에 따라 임대료를 유연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인대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 이사장은 “이미 장기 불황으로 직원을 두지 않는 나 홀로 점포가 다수”라며 “경기가 좋지 않다면 다른 지자체처럼 서울시도 임대료 감면 등의 방식으로 상인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투몰의 경우 불법 전대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서울시설공단은 상가의 불법 전대를 금지하고 있지만 600개가 넘는 고투몰 상가 80%는 불법 전대 중이다. 유산화 고투몰실제영업하는상인비상대책위원회 대외협력국장은 “실제 영업하는 전차인들은 전대인이 서울시에 내야 할 임대료를 대부료라는 이름으로 부담할 뿐만 아니라 전대인에게 거액의 임대료까지 지불하고 있다”며 “서울시는 형식적 단속만 할 뿐 전대 문제의 실질 해결은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인들의 부담을 덜고 건전한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선 불법 전대를 막고 직영 체제를 구축하는 실질적 노력이 절실하다. 유산화 대외협력국장은 “전차인에게 노예 계약 같은 전대는 명백한 불법일 뿐 아니라 건전한 상가 발전도 저해한다”며 “서울시는 문서로만 불법 전대를 단속하지 말고 실질 운영자가 영업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유진 서울시의원은 “조만간 서울시와 상인들이 함께 모여 논의할 예정”이라며 “조례안 제정 노력은 물론 실무 차원의 합의를 위해 지속적으로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회현 지하도상가 내 LP가게에서 한 손님이 LP판을 고르고 있다.

 

  개별 상가의 매력을 키워야

  지하상가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상가 특성을 살려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LP판 등 음반 상가가 집약된 회현 지하도상가는 아날로그 문화를 선호하는 젊은 고객이 찾는다. 30년가량 회현 지하도상가에서 LP판을 취급한 김지윤(남·61) 씨는 “최신 대중음악 음반 유통은 예스24 등 출판사가 담당하기 때문에 영세 상가는 대중성이 아닌 개성으로 경쟁해야 한다”며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과 음악 얘기도 나누고 취향이나 시각을 공유해야 단골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오인균 교수는 “단순히 상품만 파는 공간은 매력을 갖출 수 없다”며 “서사와 감성을 전달해야 소비자에게 몰입과 추억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상가의 위치 특성에 어울리는 업종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강남역 지하도상가 약국에서 근무하는 강호준(남·28) 씨는 “지하에 있다 보니 병원 처방전은 잘 받지 못하지만 유동 인구 덕에 상비약을 찾는 수요는 꾸준하다”고 말했다. 인근 애완동물 용품 가게에서 근무하는 김유림(여·31) 씨는 “퇴근 시간인 오후 6시부터 7시에 손님이 많이 찾는다”며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있는 만큼 통로에 다양한 물건을 진열하려 한다”고 밝혔다. 상가 위치에 따른 행인의 구매 성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성훈(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강남역과 고투몰처럼 하루 유동 인구가 20만 명인 곳은 일시적 중소도시와 같다”며 “목적구매와 충동구매 요소 모두를 겨냥할 수 있는 전략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하상가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선 업종 전환을 유연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에 서울교통공사는 이달부터 상가 업종 전환 방식을 기존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변경했다. 지난해 총 83건의 업종 변경이 신청됐지만 승인이 신속하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조치다. 최명자 씨는 “원래 일하던 옷가게가 장사가 잘되지 않아 올 초부터 가게를 인수해 빵을 판매하고 있다”며 “박리다매의 단점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이전 업종의 가게에 비해 출퇴근 시간대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공간에 문화 입히는 전략 필요

  지하상가 공간 전체를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서울시는 2024년 지하철 초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26년까지 3000억 원을 투입한다며 지하철 공기질 개선에 나섰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분진이 발생하는 자갈 철로를 콘크리트 도상으로 교체하고 승강장에도 강제 배기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공기 순환 설비 필터를 초미세먼지 여과에 효과적인 세라믹·금속필터로 교체하고 공기 통로의 청소 주기를 단축한다.

  지하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지하상가의 공실을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전략도 제시된다. 서울시는 2009년 신당중앙시장 지하에 조성된 신당지하쇼핑센터를 예술 창작 공간으로 바꿔 신당창작아케이드를 조성했다. 현재는 이곳에서 50여 명이 넘는 작가가 활동 중이다. 올해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한 신제영(여·26) 씨는 “관리비도 저렴한데 도자 작업을 위한 가마 이용비가 들지 않아 시중 공예 작업실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의 지출”이라며 “시장 근처에 있다 보니 행인들이 명함을 가져가기도 하는 등 홍보 효과도 좋다”고 밝혔다. 금속 공예를 하는 이명희(여·29) 씨는 “지하라서 화기를 사용할 수 없고 환기가 잘 안되는 점은 아쉽다”면서도 “서울시에서 전시 행사를 개최하는 등 예술 홍보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구석진 지하공간에 특정한 테마를 조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일본 후쿠오카 텐진 지하상가의 경우 바닥은 돌길로, 천장은 서양식 패턴으로 꾸며 모든 시각적 요소를 채웠다. 오인균 교수는 “텐진 지하상가처럼 시각적 요소를 중심으로 촉각과 미각을 자극하면 방문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팝업 행사를 통한 단기적인 테마 조성도 의미 있다. 2021년 9월 넷플릭스는 녹사평역에 드라마 <오징어게임> 홍보 공간인 ‘오겜월드’를 열었다가 인파가 몰려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조기 종료했다. 지난해 5월에서 6월 자양역에선 동서식품이 주관한 ‘카누 휴식역’ 팝업스토어가 운영되기도 했다. 유휴공간을 활용한 이 행사에는 한 달간 2만5000명이 방문했다. 오인균 교수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온라인 소비가 활성화된 만큼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공간을 재구조화해야 한다”며 “팝업스토어도 좋지만 결국 지하공간 자체의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깔세: 보증금이나 권리금 없이 사용료를 한꺼번에 내고 단기 임대차 계약을 맺는 것. 주로 빈 상가에 잠시 영업하기 위해 사용한다.

 

글 | 이태희 취재1부장 notkim@

사진 | 임세용·최주혜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