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랭이특파원] 당연하게 여겨 왔던 편의가 사라진 순간
호랭이특파원은 외국에 체류하는 고대생이 현지의 시사·문화를 일상과 연관지어 쓰는 코너입니다.
일본의 청춘 영화를 보고 환상을 가진 채 도착한 일본은 대개 낭만적이었다. 도시 위를 달리는 열차는 내가 도쿄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했고, 노을 아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노면 전차를 볼 땐 일본의 한적한 동네에 사는 시골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쭉 걷다 보면, 잊고 지나칠 뻔한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낭만이라는 건 당연함과 편의를 포기하는 순간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편의의 실종이 곧 낭만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 3월 27일, 신주쿠역에서 인신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 심지어 자주 이용하는 역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다. 이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일본은 지하철 인신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스크린도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한국의 지하철역에 늘 존재하던 스크린도어 덕분에 지하철 인신사고에 대해 평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고, 그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도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일본의 지하철역은 스크린도어가 없는 곳이 대부분임에도, 누군가 여기에 뛰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인신사고는 발생률이 너무 높아 뉴스에 나오지도 못할 정도라는 말을 듣고 난 후, 스크린도어 하나 없이 발밑에 보이는 선로가 얼마나 위험해 보였는지. 당연하게 누려오던 편의가 나의 평안을 보장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하루빨리 편의와 안전이 보장되기를 희망하며, 사고로 목숨을 잃은 모든 이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시속 90km에 달하는 열차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싶을 만큼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지나칠 뻔한 사소한 낭만들이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최승민(문과대 국문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