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광장] 203. 대통령 재판 정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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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피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임기 만료까지 진행 중인 재판을 중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조항이 국정 안정을 위한 장치라는 의견과 사법 정의를 해치는 특혜라는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고려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재판은 멈춰도 국정은 멈출 수 없다 - 조용주(디자인조형19)
형사 피고인 신분의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임기 종료 시점까지 재판을 중단하도록 한 ‘대통령 재판 정지법’은 단순히 대통령 개인에게 부여되는 특혜로 보기 어렵다. 이는 국정 운영의 안정성과 국민의 민주적 선택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은 헌법상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의 대표자다. 만약 대통령이 재판에 반복적으로 출석해야 하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피고인’으로 불리는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국정 판단의 독립성과 집중력이 저해될 수 있다. 특히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형사 절차가 겹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다. 재판 중지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사법적 특혜가 아니라 국가적인 리스크를 조정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 권력이다. 유권자의 선택은 임기 동안 국가 운영을 책임질 수 있도록 신뢰를 부여하는 정치적 행위다. 당선인이 피고인이라는 이유로 직무 수행에 제한이 가해진다면 이는 국민 주권을 간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며, 나아가 선거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부여된 정당한 권위가 ‘재판 중’이라는 사유만으로 불완전하게 간주된다면 이는 정치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재판정지법은 사법 정의를 부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임기 후 재판을 재개하도록 명시돼 있으며 공소시효의 정지 조항 또한 함께 논의되고 있어 형사 절차의 본질은 유지된다. 국정 운영의 연속성과 사법 정의의 실현을 동시에 고려한 시점 조정에 가깝다.
일각에선 형사 피고인 신분의 대통령이 임기를 악용해 형벌 회피를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하지만 이는 대통령제의 본질과 이를 감시·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들의 실효성을 간과한 판단이다. 국회의 탄핵, 특별검사제, 언론 보도, 여론의 압력 등 민주국가의 다층적 감시 시스템은 여전히 강력히 작동하고 있다. 결국 형사 재판의 일시적 정지는 대통령에게 무제한적 면책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민주적 제도 안에서 국정 기능의 중단을 방지하기 위한 조정 장치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형식적 평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가치만큼 중요한 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치 시스템의 실효성이다. 형사 피고인도, 대통령도 사법 정의의 대상임은 분명하지만 국정 운영의 공백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국정 불안보다 중요한 건 법 앞의 평등 - 송운비(디자인조형22)
최근 발의된 ‘대통령 재판 정지법’은 대통령에게만 허용되는 예외적 사법 처우라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대통령이란 자리는 외교, 안보, 경제를 포함한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자리로서 그 업무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동시에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면 행정 기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 역시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단지 직위의 무게만으로 형사적 책임을 유예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헌법이 보장하는 ‘법 앞의 평등’ 원칙은 공직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더욱이 이 법안은 이미 재판을 받고 있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국민은 해당 인물이 기소된 사실을 알고도 선택을 한 것이며, 그런 경우라면 오히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사법 절차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 재판에 응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은 타당하지만 책임을 유예하는 방식이 국민의 신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절대 가볍지 않다.
정치적 책임에 대한 시민들의 감각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법적 형평성과 책임 의식에 있어서 매우 민감한 기준을 가진다. 법이 특정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만 느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인식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형사 책임을 일정 기간 유예할 수 있는 구조가 제도화된다면 이에 따라 정치적 출마 자체가 사법적 방패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도 존재한다. 그렇게 되면 공직의 공공성은 훼손되고 선출직의 본질마저 흔들리게 된다.
법치주의가 성립하려면 법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작용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형사재판이 미뤄질 수 있다면 그것은 결국 법적 평등 원칙이 깨지는 것이고 시민들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정치적 부담이 있단 이유로 책임을 미루는 방식은 오히려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정치는 책임을 지는 행위며 공직자는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로 신뢰를 만들어 간다. 대통령이란 상징적인 자리일수록 법적 책임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습이 오히려 국민적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원칙은 단지 선언에 그쳐선 안 되며, 고위 공직자에게조차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핑계로 책임을 유예하는 방식이 용인된다면, 민주주의의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