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졸띠] 다섯 정거장 너머의 우주
139. 보문 ‘스페이스 아텔’
잠시 세상과 단절되고 싶지만 멀리 떠날 만큼의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을 때, 나는 안암역 2번 출구 앞에서 여름빛을 머금은 초록색 마을버스에 몸을 싣는다. 시시각각 바뀌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다섯 정거장을 지나 성북구청 앞에 다다른다. 감사 인사를 건네며 버스에서 내린 후 햇살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성북천을 지나 걸어가면 조용한 주택가를 볼 수 있다. 그곳의 안쪽에,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 언뜻 보면 지하 주차장 같기도 한 곳에 다락방 같은 작은 공간이 숨어 있다. 스페이스 아텔이다.
이곳엔 서점과 전시 공간이 함께 있다. 서점은 한눈에 담길 만큼 아늑하고 책 종이의 냄새가 가득하다. 작은 공간 속에 정성스레 골라진 책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벽면 한쪽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들이 놓여 있다. 연결된 헤드셋을 귀에 대고 ‘II’ 버튼을 누르니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으로 시작하는 익숙한 노래가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서점을 나오면 바로 옆의 전시관으로 들어설 수 있다. 전시는 방문할 때마다 바뀌어 있다. 같은 공간인데도 매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걸 보면 공간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어두운 전시장 속 유일하게 조명을 받아 빛나는 하얀 외벽에 떠 있는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이 세계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 그 기분이 좋아 자꾸만 이 작은 공간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전시 정보는 스페이스 아텔 공식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spaceartel)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항상 전시가 열리는 것은 아니니 방문 전에는 전시 정보를 꼭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필자처럼 헛걸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TMI를 하나 남기자면 스페이스 아텔 근처에는 주문 즉시 꽈배기를 튀겨주는 황제꽈배기라는 가게가 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난 후 갓 튀겨진 따끈한 꽈배기를 한입 베어 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완벽하다.
서연우(경영대 경영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