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광장] 204. 대선 공약 - 주 4.5일제 도입
민주광장은 하나의 소재에 관한 두 가지 시선을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오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주 4.5일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정 근로시간을 축소하는 법 개정으로, 국민의힘은 노사 합의에 따른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이를 실현하고자 한다. 같은 목적을 두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두 공약 중 어떤 공약이 더 적합하다고 보는지 고려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유연하게 일할 자유보다 확실히 쉴 권리를 - 정현우(문과대 중문21)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험한 유연근무의 확산은 근로 시간의 변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낮은 행복지수와 높은 자살률이 보여주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 또한 삶의 질을 고려치 않은 성장 담론에 대한 설득력을 잃게 만들었다.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경제 성장과 성공의 조건이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창의성, 지속가능성, 행복 등의 가치가 강조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 4.5일제가 양당 대선 후보의 공약으로 등장했다.
현재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 모두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지만 이재명 후보는 법정근로시간 단축, 김문수 후보는 유연근무제를 통한 주 4.5일제를 주장한다. 이재명 후보의 근로 시간 단축 법제화 공약은 ‘쉼’을 실질적 권리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당 방안은 휴식을 전 국민에게 제도적으로 균등히 제공함으로써 근로자 간 휴식 기회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단순한 휴식의 확대가 아닌 시간의 재설계라 볼 수 있다. 더 짧은 시간에 집중하고 더 많은 시간을 자기 계발, 돌봄, 회복에 분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현대인의 진정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인 셈이다.
그러나 김문수 후보의 유연근무제는 자율이란 이름 아래 불평등을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유연근무제는 노사 합의가 가능한 대기업이나 고소득 전문직 직장을 위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노동조합이 없거나 교섭력이 약한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에겐 이뤄질 수 없는 이상과도 같은 제도가 될 우려가 있다. 법이 아닌 자율에 맡길 경우 취약계층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근로 시간의 단순 재배치는 실제적인 쉼이 보장되지 않고 단순한 노동 형식 변화에 그칠 뿐이다. 몰아서 야근하고 다음 날 일찍 마친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쉼은 사치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긴 노동시간과 낮은 행복지수, 그리고 최악의 자살률이라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재명 후보의 근로 시간 단축을 전제로 한 주 4.5일제는 여가 확대란 차원을 넘어 정신건강 회복, 저출생, 공동체 활성화 등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 없는 유연함이 아닌 모두에게 주어지는 휴식의 보장이다. 쉼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그 침묵 속에서 불평등은 자라난다.
4.5일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 문연우(공정대 정부행정25)
유연근무제는 높은 효율의 노동 정책이다. 전부터 회자해 온 유연근무제는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 여러 형태로 성과를 보였으며 현재 4.5일제란 정책으로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서 거론하고 있다.
현재 이재명 후보가 시사하는 4.5일제는 금요일의 4시간을 임금 삭감 없이 줄이며 차후 4일제로 연계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물론 임금 감소 우려 없이 4시간을 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임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이는 근로자 수준에서만 고려된 제안이고 그 공백의 4시간에 대한 기업의 손해는 오리무중이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에 대해 기업이 손실을 지는 책임 전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위 공약과 비슷하게 과거 근로 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주 5일제가 도입된 적이 있다. 그 당시 반발이 거셌으며 여러 대기업 회장도 잘 대처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들겠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성공하며 안착하게 됐다. 혹자는 이런 선례를 근거로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이는 일반화의 오류다.
2000년대 초반엔 외환위기 이후 빠른 경제 성장을 보였으며 단순한 노동시간 증가보다 효율과 생산성에 중점을 뒀다. 게다가 비록 4시간이지만 주말이 온전히 제 것이 되며 레저, 관광 산업이 발전해 경제 성장을 자연스레 장려했다.
하지만 현재를 관망해 보자. 현재는 경제성장률이 전보다 많이 낮아졌으며 정태적 상태가 지속하고 있다. 또 현재 시민들이 여러 복지와 편의에 익숙해져 4시간의 여유에 대해 큰 업무 의욕과 생산성 향상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변수들을 임금 삭감 없이 타개하는 건 공상에 가깝다. 실익은 없고 그저 포퓰리즘을 위한 수단으로 보이는 이 공약은 시기상조란 느낌이 있다.
반면 김문수 후보가 내세운 주 4.5일제 공약은 금요일의 4시간을 할애하고 다른 평일에 1시간씩 분배해 일찍 퇴근하는 제도로, 이 성격의 유연근무제는 전부터 많이 채택해 왔으며 근태관리 부분에 있어서만 번거로운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전보다 더 엄격히 감독하면 되는 부분으로 위처럼 복잡한 개편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연근무제는 세계적으로 많은 인정과 호평을 받았고 현재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적극 시행 중이다. 한국의 미래를 위한 도약 중 근로 시간을 줄이는 근무 제도는 불가피하겠지만, 현재는 환경과 시기가 맞지 않아 탄력적 운영이 해결책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