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열기 점점 뜨거워지는데 ··· 오를 무대는 어디에

2025-06-01     이다연 기자

수지타산 안 맞아 코리아패싱

공연 후 잔디 훼손으로 갈등도

“정부·체육계·문화계 TF 필요”

 

 

  대중음악 시장과 공연 문화가 성장함에 따라 대형 공연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서울엔 대형 공연을 열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해 공연 대부분은 스포츠 경기장을 대관해 열리고 있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공연을 열 경우 대관할 수 있는 일정이 제한적이고 음향이나 시야가 좋지 않은 등 공연 품질이 낮다. 공연 후 잔디가 심하게 훼손돼 체육계와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이하 ‘음공협’) 부회장은 “좋은 공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문화계와 체육계가 함께 대관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대형 전문 공연장을 추가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가는 문화, 공연장은 뒷걸음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4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시장은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중음악 공연 관람권 총판매액은 7569억 원으로 전년 대비 31.3% 늘었으며 공연 건수와 예매 수도 각각 9.8%, 22.2%씩 증가했다. 그러나 치솟는 공연 수요에 비해 서울엔 대형 공연을 열 수 있는 시설이 충분하지 않다. 5만 석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서울올림픽주경기장뿐이고 1만~5만 석 규모의 공연장도 올림픽체조경기장과 고척스카이돔밖에 없다. 심지어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은 지난해 8월 리모델링을 시작했기에 완공 예정 달인 내년 12월까진 사용할 수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서울의 대형 공연장 부족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은 도쿄 권역만 따져도 5만 석 이상 공연장은 4개, 1만 석 이상 공연장은 14개나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1만 석 규모의 공연장은 40여 개에 달한다. 국내 공연 기획사 대표 A씨는 “서울 공연장 인프라는 일본이나 유럽엔 비교할 수준조차 되지 못하고 한국에 비해 공연 수요가 낮은 동남아 국가보다도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에 대형 공연장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부지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은성 공연 기획사 비이피씨탄젠트 대표는 “도심 땅값이 급등하면 사람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공연장은 아파트처럼 높은 부가가치를 내지 못하는 데다 서울엔 아파트가 많아 소음 민원도 잦기 때문에 부지 확보가 힘들다”고 말했다. 공연 문화에 대한 국가의 이해 부족도 한몫한다.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가는 오랜 기간 순수 예술과 체육 분야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지만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는 부족해 지원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천인우 공연기획사 브라소닛 대표도 “공연장 부족 문제는 수년 전부터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었으나 정치권,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부 모두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가들의 단기 성과 중심 행태도 문제다. 채지영 연구위원은 “인프라 사업은 보통 5년 이상 걸리는 장기 과제지만 정치인들은 임기 내에 성과를 낼 수 없는 사업은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박정배(청운대 공연기획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10년간 대형 공연장 건립이 공약으로 제시된 사례는 20건 이상이지만 이 중 완공된 사례는 5건 미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내 2만 석 규모로 지난해 완공 예정이던 대형 전문 공연장 CJ라이브시티는 인허가 절차가 지체돼 착공이 6년가량 미뤄졌다. 경기도와 고양시가 관할권을 나누며 인허가가 지연됐고 그 사이에 금리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며 지난해 4월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박정배 교수는 “부지 확보 이후에는 복잡한 행정 절차와 관할 문제가 공연장 건설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공연 인프라가 열악한 탓에 실제로 국내에선 대규모 공연을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이규탁(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공연장이 부족해 유명 공연들이 티켓파워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관객들도 표를 구하기 어렵다”며 “음악업계의 주요 수익원에 제약이 걸린 꼴”이라고 말했다. 박준흠 음악 공연 마케팅 플랫폼 사운드네트워크 대표는 “객석 수가 제한된 조건에서 공연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공연 회차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연장이 확보되지 않아 해외 유명 가수들이 월드투어 일정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코리아패싱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엔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조엘 등 해외 가수가 아시아 투어에서 한국을 제외해 논란이 됐다. 박정배 교수는 “팝스타 공연을 유치하려면 관중이 최소 5만 명은 넘어야 수지타산이 맞다”며 “5만 석이 넘는 공연장을 대관하기 매우 어렵기에 팝스타 입장에선 한국을 공연지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은 지난해 8월 리모델링에 들어가 다음 해 12월까지 대관이 불가능하다.

 

  스포츠 경기장에 내몰린 공연들

  수도권에서 1만 석이 넘는 대형 전문 공연장은 인천 영종도의 인스파이어 아레나와 올림픽체조경기장이 전부이기에 국내 공연 대부분은 스포츠 경기장을 대관해 열린다. 하지만 경기장은 본 목적이 스포츠 경기 개최이므로 경기가 있는 날엔 대관할 수 없다. 최대 6만5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프로축구 시즌인 2월 초부터 11월 말까진 대관이 어려운 날이 많고, 고척스카이돔도 프로야구 시즌인 3월 말부터 10월 초까진 대관이 제한된다. 돔구장이 아닌 실외 경기장의 경우 겨울 시즌엔 추위로 공연 개최가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다. 김은성 대표는 “추위와 안전상의 이유로 10월 말부터 3월까지는 야외 공연을 거의 열지 못한다”며 “관람객들은 추운 날씨에 최소 5~6시간을 대기해야 하며 특히 앉아서 관람하면 움직임이 적어 체온이 쉽게 떨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관·공연 제약이 적은 일부 시설에선 대관 경쟁이 과열된다. 올림픽체조경기장은 돔 지붕이 있고 평소 스포츠 경기가 열리지도 않기에 선호도가 높다. 박정배 교수는 “약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올림픽체조경기장은 연 가동률이 거의 100%에 달해 공연 기획사들이 대관을 위해 대기하거나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과 고척스카이돔 등도 한정된 일정을 두고 치열한 대관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김은성 대표는 “특히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리모델링을 시작한 후 주요 경기장들의 대관 경쟁률은 10 대 1을 훌쩍 넘어섰다”며 “대관을 위해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관에 성공하더라도 스포츠 경기장에 공연에 맞는 음향 환경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경기장은 전문 공연장과 달리 벽과 지붕에 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박준흠 대표는 “경기장에선 소리가 벽에 부딪히고 사방으로 튕기는 경우가 많아 음악이 울리거나 목소리가 뭉개지는 문제가 심각하다”며 “올림픽체조경기장도 애초부터 체육시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음악 공연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2년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다비치 콘서트를 본 차준영(남·21) 씨는 “가수 목소리가 뭉그러져 잘 들리지 않았고 관객 소리에 음악이 묻히는 느낌이었다”며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음향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소음 민원 때문에 스피커 소리를 약하게 틀어야 한다는 점도 공연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김은성 대표는 “좋은 음향 장비를 써도 소리 볼륨을 자유롭게 높일 수 없다”며 “페스티벌 후 소음 민원이 정말 많이 들어와 최대한의 출력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경기장은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닌 만큼 일부 좌석에선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시야 제한 문제도 있다. 홍석경(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올림픽체조경기장은 무대가 아예 보이지 않는 좌석도 많다”며 “그럼에도 시야제한석까지 전부 매진되는 콘서트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데이식스 콘서트를 관람한 윤현경(여·22) 씨는 “공연이 너무 보고 싶어 시야제한석이라도 예매했는데 조명 기둥에 무대가 가려져 공연이 전혀 보이지 않아 속상했다”고 말했다.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잔디가 훼손돼 스포츠 구단 및 팬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조경팀 관계자는 “2023년 8월 열린 잼버리 콘서트 당시 관객을 그라운드에 수용하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잔디가 많이 빠졌다”며 “특히 무대가 급하게 설치됐던 남쪽 잔디는 손상이 너무 심해 아예 전부 교체해야 했다”고 밝혔다. FC서울 팬인 신정효(남·21) 씨는 “2021년 10억 원을 들여 서울월드컵경기장에 하이브리드 잔디를 깔아놨는데 잼버리 콘서트 이후 잔디가 심하게 훼손되면서 부상 선수가 늘고 경기력도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대관팀은 “잔디 이슈 등에 따라 부정적 여론이 일부 아티스트에게 전가되며 기획사 측에서도 난처해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TF·전문 공연장 설치해야

  전문가들은 대형 공연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음공협은 지난해 8월부터 공연장대책마련촉구서명운동을 열어 정부, 서울시, 체육계, 문화계가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통합협의체(이하 ‘TF’)를 구성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고기호 음공협 부회장은 “공연과 체육의 일정 및 수요를 바탕으로 중장기적인 대관 일정 조정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정부와 서울시, 체육계, 문화계가 공동으로 예산을 마련해 기존 스포츠 시설을 공연 친화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대관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공연을 열 수 있는 대안 장소를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고기호 부회장은 “유휴지, 공원 등 공연을 열 수 있는 대안 장소에 임시 공연장을 조성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잔디 파손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할 방안도 나온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올해부터 그라운드 좌석 판매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시설 대관을 허용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조경팀 관계자는 “잔디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 관리 일정을 먼저 확정한 뒤 남는 일정에만 대관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대 설치로 인한 경기장 훼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임시 방편들도 시행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아이유의 공연에서는 잔디 보호를 위해 메인 무대와 돌출 무대를 연결하는 브릿지 없이 리프트를 이용해 이동했다. 비록 그라운드 좌석을 설치했으나 소속사가 사전에 그라운드 관객들에게 잔디 보호를 위해 하이힐 착용을 자제해 달라는 문자를 발송하기도 했다. 잔디 훼손 후 대처 문제를 TF 차원에서 논의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박정배 교수는 “TF를 통해 잔디 관리·복원 비용 부담 문제 등을 조율해야 한다”며 “면적당 잔디 보호 매트 설치 비용과 복구 비용을 대관료에 포함하는 등 구체적인 협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 전문 공연장을 추가 설치하는 것이다. 천인우 대표는 “대형 전문 공연장은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음향, 시야, 무대 동선, 편의시설 모두 공연에 최적화된 문화공간”이라고 말했다. 대형 공연 수요에 힘입어 2027년 4월에는 약 1만8000석 규모의 서울 아레나가 완공될 예정이지만 서울 아레나보다 더 큰 규모의 공연장이 많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석경 교수는 “서울 아레나 착공은 그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국내 공연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라며 “최소 2만 명에서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전문 공연장 건립 계획이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전문 공연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선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효율화해 건설 안정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대형 전문 공연장을 짓기 위해선 도시관리계획 변경, 사업계획·세부개발계획 승인, 환경·교통 영향 평가, 건축허가 및 사용승인 등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때 서로 다른 부처, 지자체 등에서 각 인허가 절차를 순차적으로 담당하는 대신 동시에 처리하게 하면 행정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천인우 대표는 “건축 허가는 지자체가 주관하지만 소방 및 안전 관련 인허가는 관할 소방서에서 담당하고 환경 영향 평가는 환경부의 검토가 필요하다”며 “일괄처리 제도로 여러 부처가 동시에 협의하고 심사하는 통합 창구를 운영하게 되면 수년 걸리던 절차를 몇 달로 단축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글 | 이다연 기자 dadada@

사진 | 최주혜 기자 choi@

인포그래픽 | 양예진 기자 yeriev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