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광장] 205. 노인 대중교통 무임승차제
민주광장은 하나의 소재에 관한 두 가지 시선을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노인 대중교통 무임승차제 개편 방안을 두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중교통 무임승차제 확대와 축소 중 어떤 방향이 더 적절하다 보는지 고려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속 불가능한 무임승차, 경로 우대 책임승차로 -고영빈(사범대 역교23)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 65세 이상 노인의 대중교통 무임승차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만 65세 이상 노인은 전 국민의 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0%가 넘는다. 이에 최근엔 ‘무임승차 폐지 후 교통 바우처 지급’, ‘노인연령 기준 상향’ 등 무임승차제 축소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시내버스 무임승차는 이미 1990년 전국적으로 폐지됐고 대구의 경우 2023년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만 70세로 올렸다.
강산이 4번 변하는 동안 한국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서울교통공사의 누적적자는 18조 원을 넘었다. 공익서비스 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미래세대가 떠안아야 할 부채는 점점 커진 것이다. 특히 무임 수송에 따른 손실 비용은 2023년 기준 약 3663억 원으로 공익서비스 손실 비용의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2030년엔 무임승차 승객 비율이 30%를 넘기며 무임승차 손실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작금의 노인 무임승차 혜택은 수도권 지하철역 인근에 거주하는 일부 노인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도 삼척, 전라남도 보성, 충청북도 옥천 등 교통취약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은 무임승차 혜택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역 불평등 문제, 고령화 문제, 그리고 교통공사의 재정 적자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인 무임승차제를 축소하고 노인 교통 복지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지난 3월 18일 열린 보건복지부 제3차 노인연령 전문가 간담회에선 2023년 기준 72세 노인의 평균 건강 수준이 2011년 기준 65세 노인의 평균 건강 수준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를 볼 때 노인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무임승차제를 축소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또는 이준석 후보의 제안처럼 무임승차제를 아예 폐지한 후 교통이용권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 이는 노인이 매월 교통비 일정액을 받아 도시철도와 버스, 택시 등 모든 교통수단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다. 금액을 모두 쓴 후엔 할인된 요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다.
노인복지법 제2조에 따르면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러한 경로 우대 정신을 바탕으로 노인 교통 복지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현행 노인 대중교통 무임승차제를 슬기롭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
무임승차제 확대, 단순한 복지를 넘어선 사회적 투자 -조영채(심리23)
최근 정치권에서 노인 대중교통 무임승차제 개편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김문수 후보는 출퇴근 외 시간대엔 무임승차제를 버스까지 확대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에 재정 부담이나 공정성 훼손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무임승차제는 이동권 보장, 환경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목표하는 복합적 정책으로 이해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기본권 중 이동의 자유를 우리는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동권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고령자 다수는 경제적·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임승차제는 이런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동시에 노인들의 사회적 참여를 유도하고 활력을 키울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이 자유로워진다면 노인들의 문화공간 방문이 늘어남에 따라 고립감을 해소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무임승차제는 사회적 포용성을 키우는 데 아주 효과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이 국제적 의제로 떠오르면서 탄소 감축 정책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무임승차제는 대중교통 이용을 자연스럽게 장려하고 자가용 사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출퇴근 외 시간대에 버스까지 노인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것은 기존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환경 부담을 줄이는 실용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룩셈부르크와 노르웨이의 일부 도시는 무임 교통 정책을 도입하며 시민들의 삶과 도시 구조를 동시에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무임승차제를 두고 비용 중심의 논의만 하기보다 도시 생태계 전환을 위한 투자로 더 넓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무임승차제는 지역 상권을 살리는 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동 비용이 줄어들면 외출 빈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지며 지역 내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지방 중소도시일수록 지역경제 순환을 유도하는 효과는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실제로 대구에서는 노인 대중교통 무임승차제 도입 이후 노인들의 시장·병원·공공시설 방문율이 증가했고 지역 소상공인들의 매출도 개선됐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따라서 무임승차제는 단순 공짜 교통이 아닌 사회적 소비 진작의 관점에서 재평가돼야 한다.
무임승차제를 둘러싼 논의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곧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다. 이를 우리 사회가 보장하는 방식이 곧 그 사회의 방향성과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