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횡단] Small Fish in a Big Pond

2025-06-01     김준희 기자
김준희 기자

 

  사립초, 국제중, 외고를 나와 고려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교에 진학했으니 고려대에 진학한 것은 큰 반전이 아니라는 맥락에서다. 그러나 평생을 큰 연못에 던져진 작은 물고기로 발버둥 친 흔적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해외 유학, 영어 유치원, 강남 8학군, 대치키즈. 그 어떤 수식어도 나에게 붙일 수 있는 건 없었다. 중학교를 진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저런 수식어들을 여러 개 달고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중학교에서는 특목고, 자사고, 외고에 진학하지 못하면 낙오자였다. 그렇게 진학한 외고에서 만난 친구들은 중학교의 확장판이었다.

  나의 모교인 광진구의 모 외고는 대부분의 학생이 대치동에서 1회에 8만 원씩 하는 단과 학원을 과목별로 다니고, 학원이 끝나면 근처 스터디카페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나도 그런 친구들처럼 내신을 챙기기 위해 우리 집에서 한참 먼 은마사거리에 내려주는 셔틀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당연히 실속은 없었다. 대치동에 있는 학원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대입에 실패해 재수했지만 그 양상은 고등학생 때와는 사뭇 달랐다. 집에서 가까운 독학 재수학원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며 공부했다. 재수 생활이 힘들었던 적은 거의 없지만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려웠다.

  심리학 수업에서 흥미로운 이론을 배웠다. ‘큰 물고기-작은 연못 효과(Big-Fish-Little-Pond Effect)’이다. 작은 연못에 사는 큰 물고기는 중위권 학교의 상위권 학생을 의미하고, 이는 높은 자아 존중감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반대로 큰 연못에 사는 작은 물고기는 명문 학교의 중하위권 학생으로, 자기 효능감과 학업 동기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나의 학창 시절을 잘 설명해 준다. 큰 연못에 사는 작은 물고기로 평생을 보내며 연못에 있는 다른 커다란 물고기들과 계속해서 비교하고 나의 한계를 결정지었다. 그러나 재수할 때는 나의 성장에 주목하면서 공부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경험을 통해 나라는 물고기가 큰 연못에 잘 적응할 방법을 터득한 지금은 고려대학교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큰 연못들에서의 앞날이 두렵지 않다. 작은 물고기로 겪었던 경험을 나의 몸집을 키워주는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김준희 기자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