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5분 진료의 나라

'냉전'(冷箭)은 숨어서 쏘는 화살이란 뜻으로 고대신문 동인이 씁니다.

2025-06-01     고대신문

  얼마 전 엄마가 안산에 있는 어느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2시간을 기다렸는데 진료는 5분 만에 끝났다며 화를 냈다. 병원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도 빠지지 않는다. 소아천식으로 인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대형 병원에서 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했다. 천식이 사라지고 나서도 병원은 카페 드나들 듯 꾸준히 다녔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는 10분을 채 넘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죄인이 된 것처럼 진료실을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결혼하고 미국 갔던 누나가 몇 달간 한국에 돌아와 있었다. 누나를 통해 듣는 미국 얘기는 꽤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미국 의료 시스템 얘기가 기억난다. 미국에서는 감기에 걸려도 의사를 만나기가 어렵단다. 의사를 만나려면 적어도 간호사 3명은 거쳐야 해서 힘들었다지.

  생각해 보면 한국 사람은 병원을 그저 약국에 가기 위한 진단서 떼는 곳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진료실에서 자신의 병명이 무엇인지, 왜 그런 질병을 앓게 됐는지 진지하게 의사와 이야기 나누는 사람은 드물다. ‘아~’ 한 번 해보고, 매운 음식 줄이라는 말이나 듣고 나오곤 한다. 반면 해외의 경우 수차례의 상담을 통해 환자가 병을 앓게 된 원인을 찾아나간다. What이 아닌 Why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단이다.

  문제는 한국식 진단이 병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는 점이다. 흡연 탓에 폐암이 생겼고, 스트레스는 합병증을 부른다는 식이다. 하지만 병의 사회적 맥락, 이를테면 흡연은 불안정한 노동 환경 탓이고, 스트레스는 이직도 못 하는 사회 구조 때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병을 사회적으로 보면 비로소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이 보인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복지국가를 꿈꾼다면 무엇보다 진료 시간부터 늘려야 하지 않을까. 건보 개편을 통해 개인의 의료 부담금을 감소하는 식의 1차원적인 접근만으론 복잡한 원인이 어지러이 얽힌 현대인의 질병을 ‘진단’할 수 없다. 원인의 원인을 밝혀나가는 국가만이 국민의 건강권을 온전히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