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랭이특파원] 오키나와, 아름다운 바다 뒤에 가려진 잔혹한 역사의 공간

호랭이특파원은 외국에 체류하는 고대생이 현지의 시사·문화를 일상과 연관지어 쓰는 코너입니다.

2025-06-01     최승민(문과대 국문23)

 

  일본 유학을 선택하며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 중 하나는 오키나와였다. 정말 운이 좋게도 일본의 연휴인 골든위크에 기숙사 주관 오키나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오키나와는 맑고 푸른 바다, 이국적인 분위기, 따뜻한 기후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휴양지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직접 그 땅을 밟아보고 오키나와의 역사를 기록한 장소를 돌아보며 그 아름다움 뒤에 잔혹한 역사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 본토를 침공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거점으로 삼으려 했고 일본에게는 그곳이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20만 명 넘게 희생되고 무고한 오키나와 주민들이 결국 동굴 안에서 집단 자살을 선택한 것을 알았을 때, 더 이상 휴양지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됐다. 단순히 과거의 비극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 기지 문제, 토지 이용 문제 등으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역사적 비극의 현장을 남일처럼 여기고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과 책임의 대상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물론 옳은 말이지만 ‘기억하는 것’은 때때로 관찰자의 위치, 즉 타인의 시선에 머무르게 할 위험이 존재한다. 비록 우리가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려는 자세가 공감의 시작이며 진정한 평화의 출발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진행형의 고통에 눈감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 비판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침묵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현재를 만든 것은 과거이기에 우리 역시 부도덕하고 반인륜적인 세상에 맞서야 할 책임이 있다. 거창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약자에 대해 더 민감해지고 누군가의 고통에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많은 이들의 피와 희생 위에 세워진 ‘나름의 평화로운 공간’이다. 이 세상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평화롭지 않다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아직 그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승민(문과대 국문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