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주얼리, 가성비 넘어 명품으로 거듭나야

2025-08-03     황다희 기획1부장

초고가 해외 브랜드에 뺏긴 시장

브랜드 아닌 부품 위주로 수출

“럭셔리·매스티지 명품 필요해”

 

서울 종로구 봉익동에 있는 주얼리 제조업체에 목걸이가 진열돼 있다. 남경주 서울주얼리지원센터장은 "종로의 주얼리가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특화하며 브랜드 정체성 정립에는 소홀했다"고 말했다.

 

  한국 주얼리 산업은 뛰어난 기술력과 한류의 영향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주얼리 산업 특성상 경기 영향을 적게 받고 꾸준한 시장 확장을 도모할 수 있어 우리나라가 수출 효자산업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한국 주얼리는 존재감이 미약하고 국내 시장에서도 해외 명품 주얼리에 밀리고 있다. 이에 주얼리 시장을 양성화하고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해외 명품에 밀리는 K-주얼리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주얼리 세공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70여 개 국가의 청년 기술인재가 참여하는 국제기능올림픽 귀금속공예 부문에서 한국 선수는 29회 출전해 메달을 26회 목에 걸었다. 지난해 열린 대회에서도 한국 국가대표가 은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주얼리 세공 기술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한국 문화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K-주얼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남경주 서울주얼리지원센터장은 “최근 종로에 들러 주얼리를 구매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해외에서 한국 주얼리를 유통하고 싶다는 문의도 들어온다”며 “K-뷰티, K-패션 부흥의 다음 주자가 K-주얼리임을 실감한다”고 했다.

  주얼리 산업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 주얼리 시장 규모는 2020년 이후 꾸준히 커졌고 국내 시장 규모도 2020년 6조1757억 원에서 2024년 8조7732억 원으로 성장했다. 박소영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주얼리는 가격탄력성이 낮고 투자 가치가 높아 경기가 침체하거나 불안정할 때도 수요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다.

  뛰어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얼리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주얼리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2020년 83%에서 2024년 68.8%로 감소했다. 수출 시장에서도 국산 주얼리는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주얼리의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은 0.3%에 불과했다. 국내에서 해외 주얼리 인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 주얼리의 실적은 부진하다 보니 주얼리 무역 수지는 1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수요를 흡수한 해외 주얼리는 주로 초고가 명품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을 보유한 프랑스와 불가리를 보유한 이탈리아의 2023년 수입 비중은 2019년에 비해 각각 6.2%, 7.8% 올랐다. 해외 명품이 한국 주얼리가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품 주얼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영애(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앞으로 이미지와 정체성이 뚜렷한 브랜드가 주목받을 것”이라며 “한국엔 아직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명품 브랜드가 없어 주얼리 산업의 경쟁력이 낮은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딩 없는 판매 전략이 문제

  그간 국내 주얼리 브랜드는 역사가 짧아 고유의 정체성보단 가성비를 내세웠다. 박소영 연구원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세계 10대 고급 주얼리 브랜드에 비해 한국 주얼리 브랜드의 업력은 짧은 편이라 소비자의 신뢰를 충분히 쌓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얼리 브랜드인 골든듀도 1982년 창업해 44년 업력에 그친다. 개별 제품을 내세우는 판매 전략도 브랜드의 등장을 어렵게 했다. 박세헌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 주얼리 브랜드는 제품의 금 함량과 가격을 중심으로 홍보해 프리미엄을 부여할 문화적 기반이 없다”고 했다. 최근에는 금값이 오르며 금 함량 대비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국산 제품에 대한 가성비 전략을 내세우기 어려워졌다. 이영애 교수는 “사치품이 아닌 장신구로 기능하는 중저가 주얼리의 가격이 오르면 옷, 가방 등 다른 패션 제품으로 수요가 이동한다”며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보전되는 고가 주얼리보다 중저가 주얼리가 금값 등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명품 소비 확산과 세계 명품 브랜드의 한국 진출도 국내 주얼리 산업에 위기가 됐다. 박세헌 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명품 소비 경험을 쌓은 소비자가 초고가 주얼리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국내 명품 시장이 성장하자 해외 기업이 공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해 국산 주얼리가 설 자리가 좁아졌다”고 했다. 주얼리 산업은 내수 의존도가 높아 국내 시장점유율 축소에 대응할 만한 판로 개척에도 미흡했다. 남경주 센터장은 “주얼리 제조·도매·소매업체가 모여 있는 종로는 그간 집적을 통해 얻는 정보를 바탕으로 유행 변화, 원자재 수급 문제, 온라인 전환 등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 살아남았다”며 “해외 판로를 모색하는 업체도 있지만 수요가 충분했던 과거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업체도 많다”고 했다. 

  음성화된 시장이 자본 투자를 저해하기도 한다. 주얼리 산업 내 제조·도매·소매 전 과정에서 세무 회피를 위한 현금 거래 관행이 고착해 주얼리 산업 규모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남경주 센터장은 “소비자가 현금 거래를 요구하면 소매상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뺀 값을 결제할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부터 유통자, 제조자까지 현금 거래가 이어지고 매출이 축소 보고되는 구조라 벤처캐피털이 투자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브랜드 헤리티지 정립해야”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나오려면 주얼리 산업 전략이 개별 제품 중심 마케팅에서 브랜드 구축으로 바뀌어야 한다. 박세헌 연구원은 “명품 브랜드엔 시대를 관통하는 시그니처 디자인, 장인정신, 서사 등 브랜드 헤리티지가 있다”며 “주얼리 품질 개선뿐 아니라 브랜드와 소비자 간 공감대 형성이 필수”라고 했다. 브랜드 헤리티지를 갖기 위해선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제품을 꾸준히 내놓아야 한다. 이영애 교수는 “모양, 구색 등 디자인이 비슷한 주얼리를 출시해 외관만으로 어떤 브랜드인지 알아볼 수 있는 제품군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럭셔리 브랜드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대중성을 갖춘 명품인 매스티지(masstige) 브랜드를 우선 만들어야 한단 주장도 나온다. 박세헌 연구원은 “젠틀몬스터처럼 대중이 ‘무리하면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주얼리 브랜드를 개발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사업주의 예민한 시장 감각이 중요한 만큼 주얼리 산업의 전통에서 벗어나 주류 산업의 브랜딩 전략을 도입할 인재를 수혈해야 한다”고 했다.

  인지도 있는 브랜드가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으려면 품질 검증도 강화해야 한다. 박소영 연구원은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브랜드에 대한 국내 소비자와 해외 바이어의 신뢰가 필수”라며 “정부가 주얼리 품질인증제도를 도입해 K-주얼리의 공신력 확보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주얼리 산업 양성화도 시급한 과제다. 남경주 센터장은 “국가가 주얼리 산업을 지원하려면 종사자가 제도권 안에 있어야 한다”며 “주얼리산업진흥법 입법으로 주얼리 산업의 잘못된 관행은 고치고 경쟁력은 키워야 한다”고 했다. 주얼리산업진흥법안은 업체 등록제, 주얼리 품질 검증, 주얼리 산업 진흥계획 수립 등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얼리 산업의 고부가가치 산업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법제화 방안 연구를 수주해 주얼리산업진흥법안의 입법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김일 산업통상자원부 엔지니어링디자인과 사무관은 “우리나라의 뛰어난 디자인,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주얼리 산업을 새로운 수출 전략 사업으로 육성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전했다.

 

글 | 황다희 기획1부장 tender@

사진 | 한예리 기자 dppf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