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대학 공부와 성찰적 지식
유난히 무더운 여름 한적한 캠퍼스에서 다소 생뚱맞은 질문을 던져본다.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오랫동안 대학 선생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내린 답은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쁜 시간이었지만, 대학의 본질과 선생의 역할에 대해 잊지 않으려 나름 노력했던 것 같다. 천하의 영재들과 함께 공부하는 재미와 보람으로 30년이 훌쩍 흘러갔다.
오늘날과 같은 대학은 근대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공별로 학과가 만들어져 교원을 충원하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 대학이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확산됐다. 이때 유럽에서 발원한 근대성의 가치들이 대학 안에 뿌리를 내렸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었던 자유·정의·박애 등이 대학의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 보성전문으로 출범한 고려대학교 역시 1950년대 자유·정의·진리를 교육 이념으로 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고려대학교는 자유·정의·진리라는 가치와 더불어 “민주교육의 근본이념을 바탕으로 학술 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교수 연구하는 동시에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교육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대학의 이념과 교육목표 등을 고려할 때, 대학은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을 공부하는 곳이다. 하나는 자유, 정의,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적 가치의 학습이고, 다른 하나는 각 전공 분야와 관련된 전문 지식이다. 전자를 성찰적 지식(reflexive knowledge), 그리고 후자를 기능적 지식(functional knowledge)이라고 할 수 있다. 성찰적 지식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다양한 자질과 관련된 것으로 삶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필요로 한다. 주로 교양교육에서 강조된다. 기능적 지식은 각 분과 학문, 즉 학과에서 배우는 지식으로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되는데 필요하다. 학생들은 전공을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취업을 하고 각자의 커리어를 만들어간다.
대학이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하고 학생들이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지식이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뒤덮고 대학 역시 이러한 흐름에 휩쓸리면서 지식의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교양교육을 기반으로 이뤄지던 성찰적 지식이 무시되고, 기능적 지식만이 강조되고 있다. 대학이 직업학교가 되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진행된 고려대학교의 교양교육의 변화를 보면, 이러한 걱정이 남의 일이 아닌 듯하다.
최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에서 적지 않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개인의 성공을 자신의 능력의 결과로만 해석하고, 그 배경이 된 환경·인맥·가족·부 등의 사회문화적 자본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리더는 성찰적 역량이 미흡하고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다. 세속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법조인, 정치인, 기업인들이 많은 것은 그들이 성찰적 지식을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들에게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긴 어렵다.
고려대학교는 직업학교가 아니다. 미래를 열고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를 키워내는 큰 대학이다. 좋은 리더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지닐 뿐 아니라 중요한 가치인 자유, 정의, 인권, 평등, 소통 등에 민감한 사람이다. 자신의 성공에 대해 겸손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찰적인 리더를 고려대학교가 키워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4차 산업혁명과 AI 기술이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일수록 강조돼야할 것은 삶과 사회관계에 관한 교육이다. 인문학적 고민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을 이끌고 갈 미래의 엔지니어, 기업인, 의사들에게 대학 시절 교양교육과 인문학 공부가 꼭 필요하다. 고려대학교가 표방하는 ‘지덕체, 비판적 역량, 민주시민 의식, 공선사후, 국제적 교류 능력 등을 갖춘 사람 중심의 창의 인재’가 제대로 된 대학 교육을 통해 많이 배출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김철규 문과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