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흔적기관을 찾아서
인간의 꼬리뼈, 맹장과 같이 본래 기능을 잃었으나 여전히 남아있는 기관을 흔적기관이라고 한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지 않지만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증거다. 인간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서울에서도 여러 흔적기관을 찾아볼 수 있다.
흔적만 남은 공간
서울을 걷다 보면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장소들과 마주하곤 한다. 우리 곁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유산을 들여다보자.
강서구에 있는 궁산 땅굴은 일제강점기 시절 탄약 등의 군수물자를 보관하고 공습 시 군부대 본부로 사용하려 조성됐다. 2008년 주민들의 제보로 발견된 후 일제강점기를 나타내는 흔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청와대 북쪽 통로인 부암동에 범죄예방 및 군사상 목적을 위해 사용됐던 검문소는 더 이상 검문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주변에 남아있는 철제 바리케이드와 노란 검문소 구조물만이 과거 군사 구역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엔 기관포 포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6.25 전쟁 이후 잇따른 북한의 침투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민간 아파트도 군사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당시 서울의 아파트가 주거 이상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음을 보여준다.
동대문구 제기동의 골목길은 대체로 구불구불하지만 어떤 길은 올곧다. 건물들이 곧게 나열된 이 길은 과거 경춘선 철길이 지나던 자리다. 1971년 10월 5일 폐선된 철로의 올곧음은 성동과 성북을 잇던 구간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서울 유스호스텔은 과거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의 본관이었다. 본관 앞 주차장 구석엔 과거 중앙정보부의 제6별관이 있다. 제6별관과 본관 건물은 지하통로로 연결돼 있다.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이 이곳으로 끌려와 취조를 받고 때로는 고문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카드 도입 전 지하철을 타기 위해선 매표소에서 구매한 표를 개찰구에 삽입해야 했다. 1990년대부터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승차권 거래 과정도 간소화됐다. 2009년 종이 승차권은 사라졌지만 5호선 개롱역엔 여전히 지하철 매표소의 흔적이 남아있다.
재탄생한 도시의 흔적들
흔적기관이 원래 기능을 상실했다고 해서 반드시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몇몇 흔적기관은 저마다 특색을 살려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성수동은 수제화 공장이 밀집한 서울 내 공업 지구였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변화와 탈공업화로 많은 공장이 철수했다. 공장들은 낙후된 공간으로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복고풍 카페와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2017년 분단의 상징이었던 도봉구의 대전차 방호시설이 문화예술인의 야외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한때 시민아파트의 역할을 했던 이곳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구로공단의 공장과 여공들의 벌집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하지만 독산동에 있는 이 벌집은 청년주택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0년 71년간 달린 경춘선이 운행을 멈췄다. 남겨진 철길은 2013년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시민들이 찾는 공원과 숲길이 됐다.
1960년대 서울로의 인구 집중이 가속하면서 무허가 판자촌이 난립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주거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시민아파트를 건설했다.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민아파트인 이곳은 노후화로 내년에 철거되고 시민을 위한 녹지 공원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1년에 지어졌다. 군사독재 시기 이 건물에선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을 대상으로 수많은 인권유린이 발생했다. 현재는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경원·박인표·배은준 기자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