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횡단] 영재는 외국으로 보내라니요

2025-08-31     주수연 기자
주수연 기자

 

  미술 영재가 나타나면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있다. “외국으로 유학 보내라”와 “입시 미술 시키지 마라” 획일화된 입시에 뛰어난 학생들이 개성을 잃을 것을 우려하며 던지는 한국 미술 입시 체계에 대한 회의 섞인 말들이다. 미디어에서는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입시를 거치며 영재성을 잃게 된 학생들의 사례가 종종 언급된다. 그런데 과연 한국식 입시 미술이 영재성을 앗아가는 주범일까?

  예술의 본질은 자유로운 표현이다. 그런데 자유를 누리려면 먼저 능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재료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크레파스를 집어 드는 것과, 크레파스밖에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크레파스만 쓰는 것은 천지차이다. 후자를 과연 ‘자유로운 표현’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려면 먼저 체력을 다져야 하듯 미술에서도 비례와 원근법, 재료와 색채 같은 기초가 필수다. 피카소도 로스코도 초기에는 구상화를 그리며 기본기를 쌓았다. 입시 미술은 바로 그 기초를 다지는 훈련이며 예술가로서 자기 세계를 펼치는 데 필요한 법칙을 가르친다. 입시미술을 단순히 규제적인 요소로만 해석하는 관점들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입시 때문에 개성을 잃었다”, “억눌려서 천재성이 사라졌다”는 불평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개인의 한계가 드러난 경우가 많다. 동일한 조건, 동일한 시험 문제 안에서도 어떤 학생은 개성을 발휘하고 어떤 학생은 그렇지 못하다. 차이는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에 있다. 진짜 재능은 제약 속에서도 발휘된다. 기본기를 닦으면서 동시에 자기표현을 이어가는 것이 진정한 능력이며 그걸 가진 사람이 끝내 살아남는다. 

  물론 입시 성적을 높이기 위해 공식을 세워 암기시키는 일부 강습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험 전략일 뿐이며 교육의 본질과는 다르다. 꼼수를 통한 평가 대비는 어느 시험에나 있다. 이것을 전체 제도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사람들이 ‘틀’이라고 비난하는 입시 미술은 사실 예술을 지탱하는 ‘뼈대’다.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기본기 훈련이지만 더 아름답고 큰 꽃을 피우려면 반드시 견뎌야 하는 과정이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학생을 응원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어린 예술가의 앞길에 필요한 말은 “입시 미술 시키지 말고, 유학 보내라”가 아닌 “기본기를 단단히 쌓아라, 그래야 더 멀리 날 수 있다”일 것이다.

 

주수연 기자 yo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