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쌀롱] 훌륭한 거짓말에는 3할의 진실을 섞으라던데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평론가들의 비평과 감상을 전합니다.
이산화, <전혀 다른 열두 세계>
만약 인간의 공격성이 비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원래는 안전한 상태에선 비활성화됐어야 하는데 어떤 연유로 스위치를 끄는 방법을 잊어버린 거라면, 그런데 스위치에 해당하는 특정 수용체를 자극할 방법을 찾는다면? 사람들의 공격성을 죄다 비활성화시켜서 순식간에 세계평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지내던 사람을 갑자기 화낼 줄도 모르는 무방비한 성격으로 조작하는 행동은 좀 꺼림칙하기도 하다. 모든 사람에게 화학적 거세를 시키는 것과 근본적으로 유사해 보이기도 하다. 이는 이산화의 단편소설 ‘전쟁은 끝났어요’에 나오는 내용으로, 작가는 이처럼 흥미로운데 거부감을 자극하고 또 따뜻한가 싶으면서 비인간적이기도 한 소설을 쓴다. 그래서 낯선 세계를 제시하는 SF 장르와 잘 어울린다.
‘세계’ 문제는 다른 장르에 비해 SF 소설을 쓸 때 빈번히 마주하게 되는 과제다. SF를 창작하려면 먼저 현실과 같지 않은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SF에선 무슨 세계든 만들 수 있지만 현실과 똑같은 세계(라고 보이는 것)는 쓰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다른 세계를 독자가 알 리 없으므로, 어떤 세계인지 독자에게 충분히 알려주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에서의 이야기를 낯선 곳으로 보내야 한다. 불꽃놀이 폭죽처럼 멀리 날려 터뜨리면서 그간의 노력을 회수하고 만족스러운 피날레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혀 다른 열두 세계>는 세계 창작을 구경하기에 좋은, 작가의 몸부림이 엿보이는 단편집이다.
예를 들어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검은지빠귀는 특급호텔 연회장의 휘황찬란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파티에 참석하는 파트너를 따라가겠다고 고집부려서 나오긴 했는데 영 낯설고 어색하다. 기껏 꺼내 입은 ‘몸차림’도 하나같이 불편하다. 소설은 첫 문단에서 옷차림이 아니라 몸차림이라는 단어를 천연덕스럽게 꺼낸다. 그리고 몸차림의 묘사로 넘어간다. 검은지빠귀가 입은 “장밋빛 살갗은 시종일관 답답하게 몸을 조이는” 중이고 “가늘게 뻗은 다리 네 개는 몸을 제대로 지탱하기는커녕 시종일관 휘청거릴”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훨씬 제대로 갖춘 몸을 하고서도” 편안하게 파티를 즐기는데 자신만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듯하다. 첫 장면에서 독자는 소설 속 사람들이 몸을 옷처럼 입고 벗는다는 사실을 습득한다. 그들의 몸은 팔다리가 두 개씩인 인간 형태보다 훨씬 자유분방하다. 몸차림에 관한 묘사는 독자에게 낯선 세계를 알려주기 위한 단서들이다. 게다가 검은지빠귀가 겪는 곤란은 명확하다. 나만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은 자세한 설명 없이도 이해하기 쉽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현실과 아주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펼치는 한편으로 우리가 쉽게 공감할 만한 감정을 제시한다. 이렇듯 낯섦과 친숙함을 배합해 독자를 끌어들인다.
단편집 제목이 열두 세계인 이유는 12회에 걸쳐 연재된 초단편 SF 소설을 모았기 때문이다. 연재 지면은 월간 <독서평설>인데, 생각해 보면 상당히 악조건이다. <독서평설> 독자가 일반적으로 SF 소설에 친숙하거나 이를 환영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니 다소 친절하게 내용을 풀어야 할 텐데 분량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어떻게든 주어진 지면 내에 결말까지 넣어야 한다. 이 작업을 매달 반복한다. 단편집에 ‘작가의 말’처럼 추가된 ‘열세 번째’를 보면 작가는 이런 제약을 오히려 테마로 삼았다. 읽으면서 눈치채기는 어려울 수도 있는데(나는 몰랐다), 열두 세계의 아이디어와 고유명사는 모두 12와 관련된 요소에 기인한다. 한국의 12간지, 별자리의 황도 12궁, 비틀스의 12개 앨범… 소설 속엔 보너스로 붙은 수수께끼가 군데군데 숨어 있다. 더군다나 ‘열세 번째’까지도 함정이 있다. 참 솜씨 좋게 만든 단편집이다.
심완선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