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의 서재] 슬픔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흔히 슬픔을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벗어나야만 하는 감정으로 규정한다. 상처와 고통은 부정적인 것이고 행복은 긍정적인 것이니 이 둘은 정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고요한 삶 속에서도 상실을 갈망하는 충동이 스며들고 그 슬픔 속에서 비로소 나를 선명히 마주하기도 한다. 고통 앞에서야 비로소 나의 연약함과 진심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슬픔이 단순히 지나쳐야 할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문이 되는 순간이 있다.
인간은 슬픔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다. 가벼운 기쁨 속에는 도달할 수 없는 감정의 심연이 존재하며 인생이 위태롭게 흔들릴 때만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애착이 있다. 언제나 기쁨과 고통은 삶 속에서 교차하며 가장 깊은 고통의 자리에야 진실한 기쁨이 깃들기도 한다. 동시에 슬픔의 순간들은 결정적인 삶의 의미를 형성한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삶을 견디는 기쁨>에서 모든 안전을 뿌리치고 미지의 세계에 자신을 내던진 경험이 있는 자만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삶의 의미는 때로 확신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고통 속에서 찾아온다는 뜻일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고통과 슬픔은 그 자체로 삶을 형성하는 충분한 조건이 된다. 헤세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와 어려움은 해결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슬픔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어 행복에 가까워지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성숙이 시작된다. 기쁨이라는 감정과 삶에서 느끼는 고귀한 가치는 오직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헤세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설령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생명이며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슬픔조차 사랑할 수 있을 때, 그제야 삶은 온전해진다. 슬픔을 외면할수록 더욱 빈약한 삶에 머무를 뿐이다. 그러니 더 이상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깊은 고통 끝에 얻은 깨달음만이 우리에게 ‘삶을 견디는 기쁨’을 선사할 수 있다. 오늘의 슬픔 역시, 삶을 깊이 살아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조용한 특권일지 모른다. 누군가의 슬픔을 떠올리며, 그것이 인생의 동력이 되기를 바라며 작은 위로를 건네본다.
유시현(경영대 경영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