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지방 이전 공공기관의 속앓이
‘냉전’(冷箭)은 숨어서 쏘는 화살이란 뜻으로 고대신문 동인이 씁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6년 차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지만 공공기관은 시장의 동향과는 무관한 움직임을 보일 때가 많다. 법령 개정으로 사업이 확대되거나, 정부에서 신사업을 일임하는 등 공공기관은 결국 정부에서 정해주는 정원에 따라 움직인다. 자율성은 ‘ZERO’에 가깝다.
최근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포함된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됐다. 2015년 시행된 대규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이후 10년 만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기관은 이미 1차에 포함되어 지방 이전을 완료했다. 이번엔 타 공공기관의 겁에 질린 모습을 지켜보는 입장이다.
기관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공공기관은 의무적으로 블라인드 채용 원칙을 따른다. 학력, 연령, 성별, 전공 등 편견을 야기할 수 있는 내용은 일체 평가할 수 없다.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던 친구와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공부한 내가 같은 출발점에 서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온 고대생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사실 함정은 또 있다. 지방에 있는 공공기관은 ‘지역인재’라고 해서 비수도권이나 해당 지역 학교 출신 지원자에게 채용 가점을 준다. 맙소사, 같은 출발점인 줄 알았더니 오히려 우리보다 몇 발짝 앞서 있는 것이다. 이쯤이면 억울한 감정이 들 지경이다.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하고, 지방인재를 육성하려는 숭고한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방으로 이전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기관은 이상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작년 신입직원 21명 중 3명을 제외한 전원이 지방대 학생이었고, 그중 이전 지역 출신은 43%에 달했다.
문제는 이 쏠림 현상이 점점 심화한다는 것이다. 타 지역 출신 직원들은 아무래도 이탈이 잦은 편인데, 뽑을 때는 43%였던 비율이 2~3년만 지나도 50%~60%에 가깝게 된다. 이런 일이 10년 가까이 진행되다 보니 구성원 중 특정 대학의 직원 비중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정 집단이 다수를 차지하는 조직이 건강하게 성장할 리 없으니 기관 차원에서도 골머리를 앓는 것이다. 내부에선 우스갯소리로 지역인재가 아니라 수도권 인재 가점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소식을 마냥 남 일인 양 보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기 전인만큼 이번 지방 이전 정책은 지방뿐 아니라 기관도 함께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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