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보완했지만 … 실정 반영 못 하는 위기임산부 지원

2025-09-07     김규리 기자

임신기 고립·의료 접근성 낮아 

양육 부담에도 생계급여 부재

“생활·돌봄·정서 통합 지원해야”

 

 

  지난해 7월 아동 유기를 막으면서도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로 출산·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위기임산부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출산제가 시행됐다. 위기임산부가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출산하기 전 검진을 받고 출산한 후에는 최소 7일의 숙려기간을 거쳐 아동의 입양·가정위탁·시설보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보호출산제가 위기임산부의 최후 선택지가 되도록 의도했으나 임신기·출산·양육 지원이 여전히 부족해 원가정 양육은 여전히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정보 분산·부실한 돌봄 지원에 어려움 누적

  위기임산부는 임신 사실을 늦게 알아차려 임신기에 필요한 관리를 적절히 받지 못하고 출산에 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조산이나 저체중아 출산 등 고위험 출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혼모 A(여·25)씨는 “임신 사실을 늦게 알아 임신 초기 필수 영양제인 철분제와 엽산제를 먹지 못했다”며 “임신성 고혈압과 임신중독증이 생겨 한 달 이르게 제왕절개를 했다”고 말했다. 청소년 산모는 주변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하기에 의료 접근성이 더욱 낮다. 미혼모 B(여·30)씨는 “임신기에 발이 붓고 아랫배가 처지는 듯한 증상이 있었으나 당시 고등학생이었기에 임신 사실을 주위에 말하지 못했다”며 “조산 위험으로 1달 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고 말했다.

  임신·출산기에 필요한 지원은 해당 시기에만 제공돼 제때 이용하지 못하면 효용이 없다. 그러나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와 기관이 흩어져 있어 지원이 필요한 때에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찾아도 놓치기 쉽다. 지체장애를 겪고 있고 남편도 장애가 있는 C(여·37)씨는 “세부사항을 알아보려면 각 기관에 직접 문의해야 한다”며 “정보를 꼼꼼히 찾아보는 편이지만 인지도가 낮은 사업은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고 했다.

  위기임산부 상당수는 생부나 가족의 지원을 받지 못해 임신·출산·양육을 홀로 감당한다. 정부가 아이돌봄 서비스를 운영하나 인력 부족으로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2024년 이용자 수는 2020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으나 돌봄 제공 인력은 약 1.2배 증가에 그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부는 2024년 아이돌봄 서비스 예산을 전년보다 증액했지만 인력난으로 집행은 줄었고 예산 집행률은 전년 대비 10.7% 하락했다. 돌봄 수요가 집중되는 저녁이나 주말에는 대기 기간이 길어 아이돌보미 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B씨는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했으나 원하는 시간대에 아이돌보미가 배정되지 않아 일을 줄여 직접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생계와 양육 부담을 홀로 떠안은 위기임산부는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정서적 고립까지 겪는다. 2024년 한국보건학회지에 따르면 청소년 미혼모 산후 우울률은 85.7%로 일반 여성보다 높았다. 임신·출산·양육 과정에서 심리적 부담이 장기적으로 누적되지만 이를 지원하는 공적 상담 제도도 여전히 제한적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산하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는 정신건강전문요원과 임상심리사 등 전문 인력이 참여해 심리 상담을 제공하지만 1인당 상담 횟수는 최대 10회로 제한된다. 보건복지부의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역시 8회까지 가능하다. 임신·출산은 일시적 사건이 아닌 산후 우울과 양육 스트레스까지 이어지는 장기 과정이기에 몇 차례 상담만으로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기 어렵다. A씨는 “임산부심리상담센터 상담으로 불안과 우울이 어느 정도 완화됐다고 여겼지만 10회의 상담을 마치고 상담이 중단되자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행정과 상담을 겸하는 상담 인력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로 지적된다. 위기임신 지역상담센터 상담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사례관리 실무 경험(3년 이상)을 채용 요건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위기임산부는 심리적·정서적으로 취약해 세심한 관리와 전문적 개입이 필요하다. 임상심리사나 정신건강사회복지사 등 전문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현행 기준으로는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상담을 보장하기 어렵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지방 상담센터일수록 채용 단계에서부터 행정과 상담을 겸업하는 인력을 모집하기에 상담이 제도 안내나 행정 처리에 머물고 정서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위기임신·출산지원센터와 위기임산부의집을 운영하는 이숙영 애란원 원장은 “상담사들이 장기간 근속하며 역량을 쌓아 능력을 발휘하려면 정규직 전환과 호봉 인정 같은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산 증액에도 산모 직접 지원 미비

  올해 보건복지부는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 사업에 46억9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지난해보다 약 9% 늘었지만 산모 직접 지원 예산은 7억2000만 원으로 지난해와 동일하다. 산전검진·출산 시 의료비 100만 원과 출산 후 숙려기간 비용 140만 원도 동일하다. 위기임산부에게 지급되는 준현금성 지원은 국민행복카드 임신·출산 진료비(단태아 기준 100만 원)가 전부다. 임신기에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워 소득이 없지만 이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미혼모 A씨는 “임신 중후반기 동안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 대부분 누워 지내니 소득이 없어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체 예산은 늘었지만 산모에 대한 직접 지원이 부족해 임신기 생계·주거·돌봄 불안은 여전하다. 위기임산부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지원인 임신기 생계급여는 여전히 부재하고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 사업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임신·출산 바우처 100만 원은 의료비에만 한정돼 생활비·주거·돌봄에는 쓰일 수 없다. 문애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는 “위기임산부의 위기 해결을 위한 임신기 지원 예산이 먼저 편성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3조는 위기임산부가 직접 양육하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위기임산부는 임신·출산·양육 전 과정에서 생활고나 사회적 고립 등을 온전히 감당한다.

 

  양육 장려 위해 통합 지원 마련해야

  위기임산부를 위해서는 지원 체계가 임신·출산·양육 전 과정에서 연속적인 도움을 제공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복지 급여와 주거·고용 서비스를 한 화면에서 신청할 수 있는 베네핏캘(BenefitsCal) 포털을 운영해 당사자가 한 번의 신청만으로 다양한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국내에서도 온라인 포털과 원스톱 센터를 연계해 보건·복지·아동 정책을 한 경로에서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최형숙 인트리 대표는 “지원 창구를 지역 단위에서 하나로 묶는 허브가 마련돼야 한다”며 “접수 과정을 단순화해야 당사자가 연속적인 지원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돌봄 수요에 맞는 인력 확충과 긴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신속 배정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일부 보육기관에서 긴급 보육(Accueil d’urgence en crèche) 제도를 운영해 부모가 갑작스럽게 아이돌봄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면 별도의 사전 등록 없이 바로 인력을 배정한다. 최 대표는 “한국의 개별 돌보미 배정 방식만으로는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기관 중심의 신속 배정 체계와 돌봄 인력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서적 안정망 강화도 시급하다. 지금처럼 공적 상담의 횟수가 제한되면 임신·출산·양육 전 과정을 포괄하기 어렵다. 특히 가족과 단절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위기임산부의 경우 임상심리사나 정신건강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이 참여하는 장기적이고 심층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조명선(국립강릉원주대 간호학과) 부교수는 “지역사회 보건소·정신건강복지센터·모바일 상담을 연계해 상담의 지속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 | 김규리 기자 evergreen@ 

일러스트 | 박은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