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겪는 가족돌봄청년, 국가가 자립 도와야

2025-09-07     김정린 기자

돌봄이 야기하는 가난의 굴레

복지 제도 몰라 지원 제외되기도

생애주기별 특성 반영해야

 

2022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평균 돌봄시간은 주 21.6시간이며, 이들은 평균 46.1개월을 돌본다.

 

  가족돌봄청년은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하는 아동·청소년·청년을 말한다. 2021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청년이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은 가족을 돌보는 청년의 현실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듬해 정부는 효자로 불리던 이들에게 ‘가족돌봄청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근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가족돌봄청년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시범사업도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선별적이고 금전적인 지원에 그쳐 가난의 악순환을 깨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상·학업 포기하는데 생활고까지

  가족돌봄청년의 시계는 가족에 맞춰 돌아간다. 가사, 병간호, 목욕·용변 보조, 식사 준비 등 가족을 위한 모든 활동은 청년의 몫이다. 2022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주당 평균 돌봄 시간은 21.6시간, 돌봄 책임자인 주 돌봄자는 32.8시간에 달한다.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 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4년째 돌보고 있는 오윤지(여·21) 씨의 하루도 돌봄 위주로 흘러간다. “학교 가기 2~3시간 전 일어나 아침밥과 어머니가 드실 점심을 준비하고 밀린 빨래와 설거지까지 마친 뒤 외출해요.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와 목욕 보조, 마사지 등을 하며 어머니를 돌보죠. 돌봄이 서툴렀던 고등학생 때는 하루에 2~3시간만 자야 했어요.” 

  가족을 돌보느라 스스로에게 소홀하다 보니 우울증을 앓기도 쉽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우울감은 61.5%로 일반 청년보다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극성 장애를 앓는 언니를 11년간 돌본 A(여·30)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실신을 반복하다 20대 초반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대상포진과 **자가면역질환으로 건강이 안 좋아졌고 우울감이 심해져 언니와 함께 삶을 포기하려 했어요.” 

  어린 나이부터 돌봄에 몰두하느라 경제 활동을 병행하기 어려운 청년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2023년 서울시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족돌봄청년 중 월 100만 원 미만의 소득자가 45%였고 100만 원 이상 200만 원 미만은 20%였다. A씨도 현재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월 150만 원을 벌지만 진료비·상담비·월세 등을 감당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2년 전엔 불법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해 언니와 따로 나와 사는데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어요. 위험한 선택임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죠.” 

  가족을 돌보고 생계 유지비를 벌기에도 벅찬 가족돌봄청년은 자연히 학업에 소홀해진다. 15살부터 할머니를 돌본 B씨는 고려대 식품공학과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휴학을 선택했다.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를 돌보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공부할 여유가 없어요. 주중엔 편의점, 주말엔 식당에서 일하지만 생활비와 등록금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죠.” 안정적인 직장 생활도 어려워 단기 일용직에 종사하기 쉽다. A씨는 지난 6년간 12번의 이직을 했다. “언니의 정신 질환 증세가 심해질 때마다 회사를 관둘 수밖에 없었어요. 충동이 강해 ‘살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가 오면 단숨에 뛰쳐나가야 했죠. 너무 자주 조퇴하다 보니 한 번은 집에 불이 났다고 거짓말을 하며 나가기도 했어요.” 결국 그는 식당과 카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원 막는 신청주의 시스템

  최근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되며 가족돌봄청년 지원 토대가 갖춰지고 있다. 3월에는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도 했다. 선미정(서울한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제정은 지자체마다 각기 다른 조례로 인해 지원 대상자가 모호하고 지자체별 지원 편차가 컸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기에 뜻깊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2024년엔 인천·울산·충북·전북 4개 시도의 청년미래센터에서 가족돌봄청년 전담지원 시범사업을 시작해 361명에게 연 200만 원의 자기돌봄비를 지급했다. 이 사업은 내년 3월부터 전국 모든 기초 지자체로 확대된다. 본격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가족돌봄청년 지원 사업 대부분 지원 대상자가 직접 신청해야 혜택을 받는 신청주의 원칙을 따른다. 특히 지원 대상자라고 자각하지 못하거나 행정 절차와 복지 시스템에 무지한 청소년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다. 오윤지 씨는 “가족돌봄청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며 “자식으로서 당연히 아픈 부모를 돌봐야 한다고만 생각해 지원 프로그램을 찾지 않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매달 자기돌봄비를 지원받는 B씨도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지원금 정보를 알려주셨다”고 했다. ‘숨겨진 집단’으로도 불리는 가족돌봄청년들은 사회적 낙인을 이유로 도움 요청을 꺼리기도 한다. 석미진 울산광역시 청년미래센터 가족돌봄팀장은 “간담회에 갈 때마다 여전히 사회가 발굴하지 못한 많은 청년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고 했다. 노혜진(강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낙인 때문에 지원 서비스 이용을 꺼리거나 신뢰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신청주의 시스템으로 인해 제도 밖에서 소외되는 가족돌봄청년을 지원하기 위해선 국가와 사회의 발굴, 홍보, 교육의 삼박자가 필요하다. 좌현숙(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교사, 이웃, 의료인, 행정공무원 등이 가족돌봄청년 인식 교육을 받아 지원 대상자를 민감하게 포착해야 한다”며 “청소년에게 익숙한 SNS, 숏폼 등을 활용하는 맞춤 전략도 필요하다”고 했다.

  지자체·복지 재단의 지원 프로그램 정보가 분산되면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워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국가 차원의 정보 공유 플랫폼이나 커뮤니티 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다. 유방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9년째 돌보고 있는 장두원(남·33) 씨는 “국가가 일반 학생에게 취업·창업 멘토를 지원하듯 가족돌봄청년에게도 지원 정보를 제공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모임을 열었으면 한다”고 했다. 정소연(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대화형 AI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원 사업을 접하고 신청까지 이어지는 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별 사례 관리할 시스템 필요

  가족돌봄청년이 스스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금전 지급을 벗어나 돌봄 자체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3~34세 가족돌봄청년의 36.7%는 돌봄으로 인해 학업이나 진로,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다고 답했으며 61.7%가 돌봄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건복지부의 일상 돌봄 서비스는 기본 서비스값이 월 43만2000원부터 시작해 가족돌봄청년이 선택하기에는 문턱이 높다. 좌 교수는 “가족돌봄청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맡은 돌봄을 대체하거나 분담해 줄 수 있는 실질적 서비스”라며 “돌봄·가사 지원으로 여유 시간을 만들고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경영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돌봄청년의 개별 특성을 이해한 생애주기별 지원도 중요하다. A씨는 “가족돌봄청년의 사례관리는 분기에 한 번씩 생사를 확인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2024년 초록우산 아동복지연구소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이 필요한 지원 분야의 1순위는 경제적 지원이었지만 2순위는 연령대별로 달랐다. 15세 이하는 문화·체육활동 지원이었으며 16~18세는 진로 교육·진로 상담, 19세 이상은 직업훈련 및 취업 지원이었다. 좌 교수는 “10대에게는 학업 유지와 또래 관계 보장이, 20대에게는 자립과 심리 회복이 중요하다”며 “각자 필요한 영역을 지원해 또래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이를 위해선 각 지자체 전담센터에 가족돌봄청년의 개별 사례를 관리할 전문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석 팀장은 “현재 사회복지사 1명당 50명이 넘는 인원을 관리해 부담이 크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저소득 가정의 아동을 개별 관리·지원하는 아동권리보장원의 드림 스타트 사업을 본보기 삼아 가족돌봄청년에도 개별 상황과 요구에 맞는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원 확보로 사업의 지속성도 보장해야 한다. 좌 교수는 “가족돌봄청년의 생활고는 단기간에 발생한 문제가 아닌 만큼 단기 지원으로는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다”며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지자체, 민간 재단과 기업이 협력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족 돌봄이 자녀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도 과제다. 정 교수는 “부모 부양을 자녀의 의무로 여기는 문화가 청년에게는 막대한 부담”이라며 “돌봄을 책임이 아닌 권리와 보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양극성 장애: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기분 장애.

**자가면역질환: 세균, 바이러스, 이물질 등 외부 항원으로부터 몸을 지켜야 할 면역세포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병.

 

글 | 김정린 기자 joring@

인포그래픽 | 주수연 기자 yoyeon@

일러스트 | 송민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