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언어 장벽에 취업 못하고 떠나는 이공계 유학생

2025-09-15     백하빈 기자

대학 연구 인력난 채우는 유학생

41% 잔류 원하지만 5.8% 취업

지차체 연계한 취업 지원 필요

 

외국인 석·박사 대학원생 수는 2014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재작년 1만명을 돌파했다. 국내 연구 설비가 점점 발달하고 정부가 유학생 유치에 공들인 영향이 크다.

 

  해외 대학원 진학으로 한국을 떠난 이공계 연구자의 빈자리를 외국인 유학생이 채우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한국어에 미숙하고 비자 발급이 번거로운 이들을 반기지 않으면서 취업에 실패한 유학생은 한국을 떠난다. 고급 인력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과정과 비자 체계를 개선하는 등 유학생에 친화적인 시스템이 시급해 보인다. 

 

  졸업 후 취업난에 귀향

  고용노동부는 2027년까지 AI·클라우드·빅데이터·나노 분야 신기술을 개발할 인력이 총 5만3600명 부족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국내 인력 유출의 공백은 유학생이 메우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이공계 석사 유학생은 5107명으로 2014년 대비 40% 늘었고 박사는 5337명으로 46% 늘었다. 외국인 학생이 국내에 들어오는 이유는 연구 설비 발달의 영향이 크다. 필리핀에서 온 라조테 버나드 조마리 블랑카다(Razote Bernard Jomari Blancada, 서울대 대학원·화학생물공학부) 씨는 “고향에는 전문 실험실이 많지 않았고 시약을 주문하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며 “좋은 시설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인과 교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흐름을 포착해 대학원 등록금과 학업장려금을 지원하는 GKS-G 등 장학사업을 확대하며 이공계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립국제교육원에 따르면 올해 733명이 GKS-G 장학생으로 입국했다. 인도에서 GKS-G로 입국해 석사 과정을 마친 아닉 비스와스(Anik Biswas) 씨는 “등록금 전액과 항공권까지 지원받아 석사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러 학업 지원을 받은 외국인 유학생은 졸업 후 본국이나 제3국으로 이주하는 탓에 국내 정착률이 낮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2년 대학원 유학생 졸업자 1만4479명 중 27.3%는 본국으로 돌아갔고 56.9%는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공계 유학생의 국내 정착을 막는 주된 원인은 취업 실패다. 국내 취업을 원해도 외국인 채용이 많지 않아 기업이나 박사후연구원 취업률이 낮기 때문이다. 2024년 7월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의 41%가 졸업 후 한국에 남고 싶어 했으나 정규직으로 취업한 외국인 유학생은 5.8% 미만이었다. 이는 유럽 OECD 국가에서 교육 목적으로 입국해 5년 이상 체류한 학생 4분의 3이 취업 상태에 있는 것과 대조된다. 이윤주(광주여대 한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외국인 유학생의 이탈은 개인 역량 부족보단 고용 불안정과 경직된 행정 제도 등의 문제가 누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기피 만드는 비자 체계

  정부는 외국인 인재를 정착시키고자 다양한 비자 특례를 내놓고 있지만 기업에서 얻은 성과로 평가하기에 이공계 대학원생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국내로 들어온 유학생에게 발급하는 D-2 유학비자는 대학원 졸업 후 최대 2년의 취업 준비 기간 동안 D-10 구직비자로 전환할 수 있지만 취업에 성공하기에는 촉박하다. 이 교수는 “석·박사 졸업생들은 일반적인 구직 활동 외에도 전문성을 입증할 논문을 발표하거나 학회에 참가하는 등 추가 연구 활동을 병행해야 해 취업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F-1 비자를 발급받은 유학생에게 졸업 후 12개월의 일반 취업 훈련(Optional Practical Training, OPT)과 24개월의 취업 기간을 둬 최대 3년 동안 체류할 수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취업 준비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전공 관련 기업에 취업하면 E-7 비자를 신청받을 수 있지만 복잡한 비자 발급 절차는 유학생과 기업 모두에게 부담이다. 지난 6월 한국무역협회의 ‘유학생 출신 외국인 채용 인식 실태조사’ 결과 인사 담당자 35.9%가 비자 발급 과정에서 행정 절차가 번거로워 외국인 채용에 부담을 느꼈다고 답했다. 김인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전문가에게 맡겨도 고용노동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여러 기관을 계속 오가야 한다”며 “비자 전문가가 없는 소규모 기업에서는 서류 미비로 비자 갱신에 실패해 외국인 직원이 일자리를 잃은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어로 소통하나 언어 교육 미비

  영어를 지원하지 않는 문서 작성과 행정은 유학생의 연구실 적응을 어렵게 한다. 대학 과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국가 수주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은 한국연구재단이 운영하는 연구사업통합지원시스템에 연구비 집행부터 단계결과보고서까지 연구 과정 속 대부분 정보를 한국어로 입력해야 한다. 김인자 연구위원은 “한국인 연구자에게도 복잡한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 신청 시스템은 외국인에게 몇 배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라오스에서 온 펭므엉 커마니(Phengmeuang Keomany, 연세대 대학원·실내건축학과) 씨는 “연구 계획을 승인받기 위해 중요한 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 서류를 한글 전용 프로그램으로 작성하고 제출해야 해 힘들었다”고 했다. 

  연구실 내 한국어 사용이 많은 데 비해 외국인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고급 한국어 교육은 충분치 않다. 라솔로자토보 파라 안자볼라 에디트 카테리나(Rasolonjatovo Fara Anjavola Edith Caterina, 대학원·건축학과) 씨는 “목요일마다 대학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수업에 참석해 일상 대화 능력을 키워도 직장이나 연구 환경에서의 전문적인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며 “한국어에 능통한 또래와 비교해 네트워킹과 취업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어 능력이 국내 취업에서 중요한 요건으로 여겨지는 만큼 전문 한국어 교육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마리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이 요구하는 한국어 성적은 학위과정에서부터 준비해야 하는 수준”이라며 “독립 연구자로 성장하고 정착할 수 있는 수준의 비즈니스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지역 산업과 취업 연계해야

  외국인 유학생과 연구 인력이 부족한 지역의 거점 기업·연구소를 연결하면 유학생의 국내 정착을 돕는 동시에 지역 산업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예컨대 2023년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구가톨릭대는 인근 지자체와 MOU를 맺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소와 학위과정을 공동 운영해 석·박사생을 유치하고 있다. 김인자 연구위원은 “산업과 연계된 인턴십 프로그램을 강화하면 유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자연스럽게 취업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업과 지자체 등 관련 기관이 외국인 유학생 취업 문제에 앞장서면 이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장기적인 정착 의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선순환이 이뤄지려면 지역 기업·연구소의 역량을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학생과 지역 기업이 서로를 매력적인 선택지로 여겨야 하는데 눈높이가 높은 대학원 유학생은 더 대우받기를 원하고 지역 기업은 외국인을 채용하면서 드는 기회비용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김인자 연구위원은 “지역에 필요한 인재상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대학이 이에 특화된 대학원생을 교육·양성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 백하빈 기자 hpaik@

인포그래픽 | 주수연 기자 yo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