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F1 엔지니어가 말하는 한국 모터스포츠

김남호 로보로드 대표 인터뷰

2025-09-21     호경필 기자

규제 많고 엔지니어 권한 적어

국내 F1 성공, 재정 운용이 관건

 

김남호 로보로드 대표는 "국내 F1 그랑프리 유치 성공을 위해서는 F1 재정 운용 경험이 많은 해외 인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남호 로보로드 대표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유학길에 올라 한국인 최초 F1 엔지니어가 됐다. 귀국한 뒤에는 <김남호의 F1 스토리>, <F1(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한의 레이싱)>을 저술하며 국내 독자에게 F1을 소개했다. F1 종주국인 영국에서 모터스포츠 불모지 한국으로 돌아온 김 대표에게 한국 모터스포츠의 현재를 물었다.

 

  - F1 엔지니어가 된 계기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기계공학을 배웠기 때문에 다양한 자동차를 연구하고 싶었어요. 한국에는 자동차를 연구할 기회가 많지 않아 자동차 산업이 훨씬 활성화된 영국에서 유학했죠. 막상 가보니 모터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유망한 F1의 채용 인원은 매우 적었어요. 제가 지원할 수 있는 분야는 10개 남짓인 데다 각 분야마다 1년에 한 명 뽑을까 말까 했죠. 다행히 지원한 두 곳 중 르노 F1 팀에 합격해 2010년부터 F1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 어떤 업무를 맡았나

  “주 업무는 차량의 성능을 계산하는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국제자동차연맹(FIA) 규정상 F1에서는 새로운 차량의 성능을 실제 트랙에서 시험해 볼 수 없어 프로그램으로 예측해야 해요. 주행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조건을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수정하며 차량의 성능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피죠. 자동차 주행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역학관계를 한데 모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계산했습니다.”

 

  - 한국의 차량 설계·제작 환경을 영국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영국에 비해 차량 제작과 튜닝에 관한 규제가 많아요. 영국에도 MOT(Ministry Of Transport) 테스트라는 자동차 검사 절차가 있지만 문턱이 훨씬 낮죠. 부품을 사서 집에서 조립해 만든 차량도 이 검사만 통과하면 도로에서 달릴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제작한 차량이 주행하려면 차량 인증, 안전 검사, 성능 테스트, 정기 자동차 검사까지 많은 절차를 거치고 수많은 서류를 작성해 유관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죠. 사실상 개인이 만들거나 튜닝한 차량을 합법으로 운행하기 어렵습니다.

  한국과 영국의 의사결정 구조도 달라요. ‘엔지니어의 나라’인 영국은 엔지니어가 아이디어 기획부터 실행까지 크고 작은 작업을 주도하지만 한국의 엔지니어는 사무직 결정권자가 내린 결정을 실행하기만 하죠. 물론 산업혁명 당시 선호되던 낡은 사고방식이 영국 엔지니어들 사이에 남아 첨단화를 이뤄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자동차 프로젝트만 두고 본다면 영국이 좋은 기술을 가진 한국보다 분명 앞서 있습니다.”

 

  - 영국에서 모터스포츠가 인기인 이유는

  “영국인은 축구 아니면 F1 팬일 만큼 모터스포츠의 인기가 대단해요. F1이 영국에서 시작됐고 참가팀 10개 중 6~7개가 영국에 있죠. 무엇보다 자동차 애호 문화의 영향이 커요. 도로에는 1930년대 출시된 클래식카가 아직 돌아다니고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폐차장에 있는 1960년대 차량을 직접 고쳐 타고 다닐 수 있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이 발전한 만큼 자동차를 수리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많지만 한국에는 거의 없죠.”

 

  - 한국에서 모터스포츠가 주목받고 있다

  “영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쿠팡플레이 중계 등 국내에서 F1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어요. <F1 더 무비> 개봉 후 ‘자녀가 모터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죠. 실제 서킷에 가는 사람도 많아졌고요. 모터스포츠는 구기종목과 달리 직관적으로 재미를 느낄 만한 종목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자극적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도 자주 노출되는 등 젊은 세대에게 충분한 매력을 선사하죠.”

 

  - 2010년대 영암의 F1 그랑프리가 실패한 원인은

  “영암이라는 입지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저는 팀 소속 엔지니어로서 현장에 방문했는데 장거리 이동에 익숙한 동료도 인천국제공항에서 영암까지의 이동을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F1 그랑프리는 일주일 동안만 열리는 단발성 이벤트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유치한다는 접근부터 잘못이었죠. 이벤트를 위한 부대시설과 경기장 주변 편의시설은 물론 숙소 환경도 열악해 개최 준비 전반이 부족했습니다. 어떤 선수는 목포항에 요트를 정박해 두고 숙소로 이용할 정도였죠.”

 

  - 인천시가 F1 그랑프리 유치를 시도하고 있다

  “영암보다 위치 등 여건은 훨씬 좋지만 개최권이 상당히 비싼 만큼 재원 확보가 먼저입니다. 기업, 사모펀드 등 민간 투자로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이 바람직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그런 투자를 감당할 기업이 거의 없죠. 인천시가 재원을 마련해 대회를 열어도 단발성일 가능성이 커요. 그럼에도 유치에 성공하면 대회 기획 경험이 있는 인력을 영입해 준비해야 합니다. 영암 F1 그랑프리에서 1900억 원가량 손실이 난 이유는 예산 규모나 지출 항목을 아는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F1 개최 노하우가 생기기 전까지는 해외 인력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글│호경필 기자 scribeetle@

사진│배은준 기자 agb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