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해결 못한 갈등의 역사, 양국 시민사회 연대로 풀어야”
학자와의 티타임 59. 서승원(문과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21세기 들어 일본 정계 우경화
일본인 절반, 전쟁 반감 커
“과거 담화 지키고 민간 연대해야”
1965년, 한국과 일본은 한일 강제 병합 등 이전의 모든 조약과 협정을 무효화하고 일반적인 국교 관계를 규정하는 한일기본조약을 맺었다. 경제·안보·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하면서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았지만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와 정치 갈등으로 양국 간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서승원(문과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1990년대부터 이어진 일본 정치의 우경화로 과거사 갈등이 깊어졌다”며 “국가 권력의 강화를 우려하는 양국 시민사회가 정치권 대신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교정상화 60년을 평가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은 냉전기 한미일 삼각관계를 이뤄 반공 연대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필요로 맺어졌습니다. 미국의 외교 정책에 따라 한일 관계가 변화했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같은 외부 경제 위협에 공동으로 대비하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죠. 국교정상화 당시만 해도 한국이 일본 자본과 기술에 의존해야 했지만 지금은 양국이 협력할 정도로 한국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일본은 60년 동안 과거사와 독도 등 영토 문제를 외면하는 외교를 해왔습니다. 좁혀지지 않은 역사 인식이 한일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죠. 갈등의 골은 깊지만 식민 지배 피해자와 양국 시민사회의 투쟁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이끄는 만큼 과거사 청산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지난 정상회담의 성과는
“회담의 실질 의제는 과거사나 안보 현안보다 대미 통상 문제 대응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통상 문제를 두고 일본의 협조나 조언을 구하는 사전 작업이었죠. 개별 대응보다 공동 전략이 필요하다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회담이 성사된 셈입니다.
다만 한일 관계 개선의 터닝포인트가 될 합의는 없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 정치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에 힘을 실어주고 과거사 문제 해결을 기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 직시를 전제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데 그쳐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 과거사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냉전이 끝나고 한국이 민주화된 1990년대 초반 한국 정부는 일본에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역사 바로 세우기’가 재평가의 시작이었죠. 이에 일본 정부는 1993년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 1995년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고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며 청산 노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보수화된 일본 정계가 과거사 문제에 소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보수 우파는 범죄나 전쟁의 가해자라는 인정과 다른 국가에 대한 사과가 국가의 자긍심을 훼손한다는 자학 사관을 가지고 있어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등 당시 자유민주당 의원이 침략 전쟁을 부정하고 미화하는 역사·검토위원회 창설을 주도하며 보수 우파 세력을 결집하기 시작했죠. 진보 성향인 사회당은 1994년 연립정권을 이뤘지만 미일 동맹 반대나 자위대 위헌 같은 기본 이념도 실천하지 못했고 버블경제 붕괴로 사회가 보수화하면서 지지 기반을 잃었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는 자민당 정권 내 온건파인 보수 본류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강경파인 보수 우파가 나머지를 차지했으나 우경화 가속으로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 내각에서 역전됐습니다. 그때부터 보수 우파가 정계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죠.”
- 과거 합의·담화는 효력을 잃었나
“담화는 정부의 정치 노선과 관계없이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이어가기 위해 정하는 일종의 규범입니다. 고노 담화(1993), 무라야마 담화(1995), 간 나오토 담화(2010), 한일 위안부 합의(2015)와 아베 담화(2015)는 일본이 한국과 국제사회에 한 약속이죠.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일본 정부의 행동과 인식을 제약하는 도덕적·정치적 족쇄 역할을 합니다. 만약 미래의 총리가 이 규범을 어기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강행한다면 약속을 깼다는 비판과 함께 국제 신뢰와 외교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겁니다.”
- 양국 인식이 좁혀질 수 있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총리가 언급한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이라는 표현에는 더 이상 과거사 문제를 외교 카드로 사용해 일본을 괴롭히지 말라는 의중이 담겨 있습니다. 정치인 가문이 많은 일본에는 전쟁에 관여한 이들의 후손이 주요 직책을 차지하기 때문에 조상의 과업 인정을 꺼리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을 통치하던 미국이 천황 전범 재판을 무산시키면서 천황이 전쟁 책임을 면제받았기 때문에 전쟁 관련자들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 힘듭니다. 1910년 국권피탈 무효를 인정하고 강압적 식민 지배를 사과하라는 우리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유죠. 정치권이 갈등을 풀지 못하니 학계 역시 한일 역사 공동 연구나 공동 교과서 집필처럼 역사 인식 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해도 각자의 입장만 나란히 병기하며 끝납니다.
인식 차를 좁히려면 일본 국민 여론이 우경화된 정치권과는 다르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식민 지배 인정에 보수적인 기류가 흐르지만 국민의 절반가량은 아시아의 식민 지배 피해국에 친화적이고 반전 의식이 강합니다. 과거 아베 내각이 개헌 가능 의석을 확보하고도 자위대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개헌을 하지 못한 이유도 국민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죠. 일본 국민은 국가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다시 전쟁에 동원될 수 있다고 깊이 우려하는 만큼 주변 아시아 국가를 일본의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 강화에 반대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므로 일본 내 양심적 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한 인물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과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농림수산상이 꼽힙니다. 다카이치는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강경한 보수 우파입니다. 당선되면 2013년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로 오랫동안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 초기처럼 양국 간 대화가 단절될 가능성이 크죠. 두 나라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경제 압박을 동시에 받아도 서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고이즈미는 그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처럼 특별한 정치 이념을 보이진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긴 했으나 보수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행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죠.
현재 일본에는 8년 넘게 집권한 아베 전 총리처럼 강력한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없고 선거에 변수가 많아 누가 당선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대가로 직책을 약속하는 등 수많은 파벌이 뭉치고 흩어집니다. 여론조사에서는 다카이치가 고이즈미보다 앞선 데다 확실한 보수 우파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나머지 후보들이 대부분 온건파라 결선 투표에서 단일화해 고이즈미나 다른 후보를 밀어주면 뒤바뀔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이시바 총리도 이와 같이 선출됐죠.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가 돼도 강경파란 이유로 온건 야당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총재 선거 후 열리는 의회 내 총리 선거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해 총리로 지명받지 못하고 입헌민주당 대표가 총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민당 의원들은 이 가능성까지 계산하며 총재를 선출할 것이라 더욱 예측하기 어렵죠. 복잡하더라도 차기 총리에 따라 한일관계가 새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기에 신중하게 선거 결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일본 정치가 불안정한 시기인 만큼 한국이 먼저 일본이 수용할 비전을 제시하며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글 | 백하빈 기자 hpaik@
사진 | 한예리 기자 dppf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