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FLIX] 우리 모두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나

高FILX는 고대인이 애정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2025-09-28     김수성(문과대 영문19)

 

<케빈에 대하여>

별점: ★★★★☆

한 줄 평: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그려낸 진정한 소통의 방향성

 

  <케빈에 대하여>의 주인공 에바 캐처도리언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던 여행 작가였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임신은 그녀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바꿔놓는다. 여행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껴온 평안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에바는 그 원인을 임신으로 돌리며 아이의 존재를 거부한다. 출산하는 순간에도 의사가 “저항하지 말라”고 말릴 만큼 아이에 대한 거부감은 완강했다. 

  서툰 어머니였던 에바는 아이의 울음을 달랠 줄 몰랐다. 그녀는 유모차를 종종 공사장으로 끌고 갔는데, 적어도 공사장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바에게 케빈의 울음은 공사장 드릴 소리보다도 시끄러웠고 행복을 빼앗는 신호였다.

  에바는 케빈을 원망하면서도 사랑했고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눈치챈 케빈은 집요한 장난으로 어머니를 자극했다. 서로의 적대감은 대화를 단절시켰고 이 균열은 관계 전반에 각인됐다.

  갈등은 장난에서 파괴로 이어졌다. 세계지도에 물감을 뿌리던 장난은 여동생 실리아의 기니피그를 죽이고 한쪽 눈을 다치게 하는 사건으로 변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에바는 남편과 이혼하고 케빈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넘기려 하지만 이 소식이 케빈의 귀에 들어가며 더 큰 비극이 시작된다.

  이 영화에는 직접적인 폭력 묘사가 거의 없다. 대신 암시와 연출만으로 관객의 감각을 압도한다. 감독은 암시할 때 관객을 배려하지 않기에 충격은 긴 여운으로 이어진다. 에바 역의 틸다 스윈튼은 절제된 대사와 섬세한 표정 연기로 죄책감, 분노, 두려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대화의 부재 속 뒤틀린 모자 관계를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고요한 화면, 갑작스러운 소음, 반복되는 붉은색 미장센은 사건의 직접 묘사보다 감정의 축적에 초점을 맞추며 불안을 증폭시킨다.

  제목은 영화의 핵심을 응축한다. 에바는 케빈을 교정하려 애썼지만 정작 그와 ‘케빈에 대하여’ 대화한 적은 없었다. 가족이 파괴된 후 “왜 그랬냐”는 어머니의 질문을 들은 케빈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의 장난과 범죄는 어머니의 관심을 향했으나 진솔한 소통 없이 얻어낸 관심은 방향을 잃고 말았다.

  케빈과 에바의 단절은 가족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등 민감한 주제를 두고 감정적 언쟁을 벌이거나 관계를 끊는 모습은 서로를 교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도 같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결국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 모두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나”다. 불편하거나 나와 다른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의 태도를 묻는 것이다.

  직접적 폭력은 적지만 색채와 암시만으로도 충분히 잔혹한 이 작품은 불안을 누적시켜 막바지에 폭발시키는 완성도 높은 심리극이다. 편안한 관람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절대 추천하지 않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관계와 소통에 대해 해석하고 탐구하고 싶다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김수성(문과대 영문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