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회부터 천만 배우까지, 도전으로 이어간 연기 인생

성병숙(임학과 73학번) 배우

2025-09-28     김준환 기자

목소리 연기로 내공 다져

IMF 위기에도 연극 포기 안 해

“작은 역할에도 혼신 다해야”

 

성병숙 배우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즐기는 마음으로 임하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갓집 막내딸로 태어난 성병숙(임학과 73학번) 배우는 집안의 기대를 뒤로하고 연극의 길로 들어섰다.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쌓은 경험으로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한 성 배우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매 순간 주어지는 기회에 진심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진심을 다한 연기는 어떻게든 전해지니까요.”

 

  종갓집 막내딸, 무대에 오르다

  학창 시절 소심하던 성 배우는 무대에 오르는 것만은 주저하지 않았다. “시를 낭송할 때나 연극 무대에 설 때면 다른 모습이었어요. 나서는 걸 어려워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죠.” 아버지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딸에게 임학과 진학을 권했다. “종갓집 막내딸이니까 선산을 지키기 위해 임학을 전공하라고 하셨어요. 부모님께 한 번도 반기 든 적 없었으니까 아버지 말씀을 무조건 따랐죠.” 

  고려대에 입학한 성 배우는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입학식 당일 고대극회 동아리실을 찾았다. “사람들 앞에 서서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에 동아리실 문을 무작정 열었죠.” 동아리실에 들어서자 선배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호기롭게 들어갔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렸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입학 첫날부터 찾아온 열정이 보통 아니라고 생각했대요.” 

  강렬한 기억을 남기며 시작한 극회 활동은 성 배우의 연기 열정을 깨운 계기가 됐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무대에 선 순간만큼은 두려움도 없고 행복했어요. 함께하는 배우들의 땀과 열기를 가까이서 느끼며 연기의 매력에 푹 빠졌죠.” 연기에 매료돼 열심히 활동하던 성 배우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와 마주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연극을 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특히 종갓집 막내딸로 자란 저와 연극은 아버지께서 용납할 수 없는 만남이었죠.” 극회 선배이던 정동천(토목공학과 72학번) 교우가 거센 반대에 부딪힌 성 배우를 보고 직접 집에 찾아와 아버지를 설득했다. “선배가 매일 집까지 저를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공연 하나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아버지께서 선배를 좋게 보고 부탁을 들어주셨죠.” 선배의 도움으로 집안의 허락을 받은 그는 고대극회에서 연극 <대머리 여가수>, <고도를 기다리며> 등 유명 작품의 주연을 맡아 재능을 펼쳤다. 

  성 배우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 극회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무대가 아닌 환경도 경험하기 위해 KUBS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아나운서부에서 성우, 아나운서, DJ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어요. 연극으로는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배웠다면 방송으로는 목소리 연기의 섬세함을 배웠죠.”

 

성병숙 배우가 이택림 씨와 음악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목소리가 빛나는 연극 배우

  부모님의 바람으로 전공을 살려 취업을 준비하던 성 배우는 성우 시험 응시를 제안받았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구해준 잡지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산림 연구원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잡지사 옆자리에 앉은 기자가 제 목소리를 듣고는 ‘성우를 하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며 TBC 방송국 성우 시험 원서를 건네줬죠. 제안해 주신 성의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시험을 봤습니다.” 

  가볍게 지원한 그는 첫 응시 만에 3번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며 TBC의 성우가 됐다. 이후 개그 프로그램 <7학년 1반>의 학생, 라디오 <가위바위보> DJ, <젊음의 행진> MC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잘하는 것만 하려 하지는 않았어요. 주어지는 모든 역할이 성장의 기회라 생각하고 임했죠. <이상한 나라 폴>의 버섯돌이, <피너츠>의 샐리 브라운같은 만화 더빙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기도 했네요.” 

  연극 무대와 방송국을 오간 성 배우는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외화 더빙으로 캐릭터의 감정을 목소리에 온전히 싣는 훈련을 했고 라디오 DJ로서 청취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익혔죠. 목소리로 깊은 연기를 하다 연극 무대 위에서 표정과 몸짓을 더하니 풍부한 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에 종사하던 선배들로부터 기회를 받기도 했다. “방송국 여기저기에 고대 선배들이 많이 계셨어요. TBC PD였던 정동천 선배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죠. 정 선배의 제안으로 예능 프로그램인 <나의 비밀은> MC를 맡기도 했습니다.” 

  방송 활동으로 바빠도 연극의 꿈을 놓지 않은 성 배우는 성우들이 주축을 이루던 대학로 제작극회에서 활동했다. “당시에는 외화 몇 편만 더빙해도 돈을 엄청나게 벌었는데 저는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낮에는 방송국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학로에 가서 연극 연습과 공연을 했죠. 새벽 2시에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이 되면 다시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됐지만 제작극회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습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요.” 노력과 열정을 쏟은 결과 그는 연기 실력을 인정받아 1986년 연극 <탱자꽃>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다. “꾸준히 연기를 해왔던 것이 도움이 됐어요. 감독님께서 제작극회에서 제 연기를 눈여겨보시고 주인공으로 뽑아주셨죠. 무대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돌아보면 첫 주인공 연기가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었네요.”

 

성병숙 배우가 이순재 배우와 함께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포스터 촬영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도전의 기회로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성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자 연극과 방송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던 성 배우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했다. 외화 수입이 줄며 방송사와 영화계가 국내 콘텐츠 제작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외화가 워낙 비싸니까 시장 자체가 작아졌어요. 더빙이 줄어 늘 하던 일이 순식간에 끊기니 막막했죠.” 연기를 이어갈 방법을 찾던 성 배우는 이참에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2003년 모노드라마 <발칙한 미망인>을 준비하며 홀로 무대를 꾸렸어요.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공연장 섭외조차 쉽지 않았죠. 영화관 스크린을 가리고 무대 조명을 설치해 CGV와 메가박스에서 공연했어요. 180석 중 단 26석만 채워지는 등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빚을 지기도 했지만 무대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연극을 향한 진심은 우연한 기회를 부르기도 했다.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를 보고 객석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펑펑 울었어요. 극에 이입한 제 모습을 인상 깊게 본 연극 제작자가 배우인 걸 알자 작품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죠.” 작품 주인공이 된 성 배우는 매번 주연 배우가 바뀌는 와중에 상대역을 맡은 이순재 배우와 3년간 약 140회 무대에 올랐다. “존경하는 이순재 선생님과 같은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벅찬 경험이었어요. 무대 위에서의 호흡과 시선 맞추는 법을 곁에서 배울 수 있었죠.”

  그는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이후 스크린으로 무대를 넓혔다. “영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님이 연극을 보시고는 제게 사투리를 할 줄 아냐고 물으셨어요. 사투리를 써본 적 없었지만 찾아온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죠. 밤새 녹음본을 들으며 연습한 덕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동춘 어머니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낼 수 있었습니다 .” 

  <해운대>로 천만 배우 수식어를 얻었지만 연극 무대를 향한 열정은 그대로였다. “2019년 <안녕 말판씨>라는 작품을 준비할 때는 무대 세트를 조달하지 못해 지인의 집에서 쓰던 녹슨 철제 대문을 소품으로 썼어요. 열악한 환경에 무대 장치라고 해봐야 남이 쓰던 낡은 물건을 모아 꾸미는 게 전부였죠. 무일푼으로라도 연극 연기를 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성 배우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어려운 상황에서 연기를 시작하려는 후배를 돕고 있다. “배우가 처음부터 돈이 많을 순 없어요. 저도 선배들께 도움받으며 여기까지 왔으니 받은 만큼 돌려주려 합니다. 2021년에는 후배의 부탁을 받아 연극 <장군슈퍼>에 무급으로 출연하기도 했죠.” 그는 <선재 업고 튀어>, <서초동> 등 여러 드라마에 조연으로 활발히 출연하고 있다. “주어진 역할의 분량이 많든 적든 그 인물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해야 하죠. 작은 역할이라고 대충 연기하면 보는 사람들도 전부 알아챕니다.”

  성 배우는 여전히 배우는 자세로 작품에 임한다. “새로운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새 옷을 입는 기분이에요. 극중 인물이 돼가면 항상 설레죠.” 후배들에게는 힘든 시기가 오더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견디라고 조언한다. “연기를 잘한다고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늘 불안해하며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배우려 하죠. 누군가 진정성을 알아봐 줄 때까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세상의 손가락질에 굴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 김준환 기자 junanii@

사진 | 배은준 기자 agbae@

사진제공 | 성병숙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