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한국어 공교육 ··· ‘말해도 수업 못 따라가는’ 학생들

2025-09-28     박효빈 기자

의사소통만 되면 일반 학급으로

내용 이해 늦어 수업 진도 포기

한국어 교원 장기 근속 보장해야

 

한국어 교원 신미숙 씨는 직접 수업 보조자료를 만든다. 신 씨는 “‘표준한국어’ 교재의 익힘 자료가 부실해 밤새 보조자료를 만든다”며 “더 나은 수업을 고민할 시간 여유가 절실하다”고 했다.

 

  2015년 약 8만 명이던 국내 *이주배경 학생은 올해 20만 명을 넘었다. 10년 만에 약 2.5배 증가한 만큼 한국어 교육 수요도 늘고 있지만 한국어 학급에서의 교육 기간이 짧고 전문성이 부족한 교원이 수업을 맡는 등 충분한 교육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어 교육 기간을 늘리고 현장 역량이 뛰어난 교원을 선발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 장벽이 학습 결손으로

  한국어 학급은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없거나 크게 부족한 이주배경 학생을 위한 특수학급이다. 이곳 학생은 예체능 과목 외 교과 시간에 한국어 수업을 듣고 한국어 실력이 좋아지면 원적 학급으로 복귀한다. 최은지(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중도입국 학생과 외국인 가정의 자녀는 한국어 실력이 낮다”며 “친구와 대화하고 가정통신문을 읽는 등 원활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한국어 학급에서 기초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한국어 학급의 수업은 국립국어원이 개발한 KSL(Korean as a Second Language) 교육과정에 따라 이뤄진다. KSL 과정 교재인 <표준 한국어>는 생활 한국어와 학습 한국어로 구성된다. 학생들은 일상 의사소통을 배우는 생활 한국어를 익힌 뒤 수업 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전제’, ‘주장’ 등 어휘와 사회과의 ‘삼국시대’처럼 각 교과 공부에 필요한 기초 개념어를 학습 한국어에서 배운다.

  이주배경 학생이 일반 교과 수업을 이해하려면 학습 한국어까지 충분히 배워야 하지만 한국어 학급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기간은 최대 4학기까지다. 충북 소재 중학교에서 한국어 교원으로 근무하는 신미숙(여·53)씨는 “학습 한국어까지 익히는 데 교육부에서 규정한 4학기는 턱없이 짧다”며 “생활 한국어를 겨우 배우고 학습 한국어는 건드리지도 못한 채 원적 학급에 복귀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원적 학급 복귀가 이른 이유는 일반 교과 학습의 결손 우려 때문이다. 이창용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장은 “한국어 학급에서는 다른 교과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원적 학급의 진도만큼 학습이 늦어진다”고 했다. 진도를 좇을 목적으로 일찍이 원적 학급에 복귀시키지만 학습 격차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신 씨는 “한국어 학급에서 서둘러 복귀한 대다수 학생이 수업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다”며 “개념 어휘가 많은데 속도까지 빠르니 필기, 복습 등 꼼꼼한 학습이 어려워 학습 부진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한국어 학급 학생의 학습 부진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 시간을 늘리고 친절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이 지부장은 “방학이나 방과 후에도 한국어 수업을 열어 학습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강소영(한신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이주배경 학생을 위한 교재는 교과 내용의 본질은 유지하되 쉬운 한국어로 설명해 언어 장벽을 낮춰야 한다”며 “QR코드로 용어 발음과 짧은 설명 영상 등 멀티미디어를 제공하면 교재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저임금·불안정 고용에 전문성 흔들

  한국어 학급의 담임은 정규 교사가 맡지만 수업은 외부 강사가 진행한다.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한국어 교원의 전문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은 사이버대학, 학점은행 기관 등 양성 기관이 다양하고 비학위 과정으로도 취득할 수 있어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올해 기준 한국어 교원 자격증 누적 신청자 9만7175명 중 합격자는 9만2751명으로 합격률도 매우 높다. 이 지부장은 “사이버대학이나 학점은행제로 손쉽게 한국어 교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만큼 역량을 갖추지 못한 자격 소지자가 많다”고 했다. 김영순(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도 “교육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급하는 한국어 교원 국가자격증은 교원의 전문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며 “전문성이 부족한 교원을 대량 배출하는 현행 양성 체계를 임용고시처럼 실습을 포함한 엄격한 검증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낮은 임금도 교원이 한 한국어 학급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추진위원회와 한국어교원협회 준비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어 교원의 55.4%가 200만 원 미만의 월급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 씨는 “한 학교에서 받는 월급이 120만 원도 안 되고 방학에는 소득이 끊겨 여러 학교에서 수업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KSL 교재를 보완할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연습 자료를 만들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어 교원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 이상 근무 시 무기계약직 전환이 의무인 탓에 학교와 단기 계약을 맺는다. 장기 근속이 보장되지 않아 한 학교에서 학생을 꾸준히 지도할 수 없다. 최 교수는 “각 학교가 아닌 교육청이 직접 강사를 채용해 학교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한국어 교원 인력을 운용한다면 업무의 연속성이 보장돼 한국어 교원의 숙련도가 쌓일 수 있다”고 했다.

 

*이주배경 학생: 국제결혼가정 자녀, 중도입국 학생, 외국인가정 자녀 등 본인 또는 부모가 외국 국적이거나 외국 국적을 가진 적 있는 학생.

 

글 | 박효빈 기자 binthere@

사진제공 | 신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