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학문에 몰입한 선비와 만나다

성균관대 박물관 기획전시 스케치

2025-09-28     김규리 기자

‘벽치광작(癖痴狂作); 수집과 컬랙션’

수집과 몰입의 가치 조명

 

이번 전시에서는 개화파 지식인 오경석이 모은 24건의 차록과 38점의 부채가 전시됐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기획전 ‘벽치광작(癖痴狂作); 수집과 컬랙션’을 6월 12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다. 전시에서는 유교와 선비 문화 관련 유물을 꾸준히 수집·연구한 박물관의 노력과 학풍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벽(癖)·치(痴)·광(狂)은 특정 대상에 강하게 몰입하는 사람을 뜻한다. 과거엔 쓸모없는 일에 집착한다는 부정적 의미를 나타냈지만 18세기 이후부터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남다른 성취를 이룬 사람을 일컫는다. 작(作)은 생존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된 창의적인 결실을 의미한다. 안현정 성균관대 박물관 학예실장은 “몰두하며 남긴 기록과 수집이 어떻게 시대를 초월한 문화 자산으로 남는지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기획전시관 초입에는 금방이라도 말을 걸 듯한 모습의 ‘회암주선생유상’과 ‘공자사구상’이 있다. 주희와 공자는 학문에 몰두해 벽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도덕적 기개와 집념을 대표한다. 초상 옆에는 ‘사기’, ‘여유당전서’, ‘맹자집주대전’ 등의 고서와 치(痴)와 광(狂)을 상징하는 이덕무, 김득신의 편지글인 간찰이 전시됐다. 이덕무의 간찰을 보면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고 불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김득신은 ‘사기’와 ‘백이전’을 11만3000번 읽고 평생 하루 열두 시간을 독서에 바쳤다고 전해지는데 역시 그의 간찰 속 필적에는 학문에 대한 집념이 녹아있다.

  전시장 한쪽에는 조선 말 개화파 지식인이자 역관 출신 외교관이었던 오경석과 그의 아들인 오세창 부자의 서화 컬렉션이 전시돼 있다. 두 사람은 근대 서화에 관한 수집벽으로 평생 서화와 비석, 종과 탑에 새겨진 글자인 금석 자료를 모았다. 오경석은 서화 110여 점과 금석비첩 수백 점을 수집했고 오세창은 1100여 점의 필적을 대표작 ‘근묵’에 정리했다. 개항과 외세의 압력이 거세던 조선 말기에 사라져가는 문화를 기록하려는 부자의 사명감은 수집과 보존의 가치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전시에서는 오경석이 서화의 진위를 가리고 필적을 분석한 메모를 모은 ‘천죽재차록’이 최초로 공개됐다. 유물 수집의 경위, 당대 학자들에 대한 비판적 의견 등이 담겨 오세창이 ‘근역서화징’과 ‘근묵’ 등 한국 서화사를 담은 자료집을 편찬하는 토대가 된 서적이다. 이외에도 ‘정조경에게 보낸 편지 초고’와 ‘성의직량’ 같은 유물은 당대 학문과 예술 교류, 학자의 기개와 공적 책임을 함께 보여준다.

  작(作) 전시실에서는 몰두하는 힘이 창작의 동력이 됨을 확인할 수 있다. 능화판과 목판은 나무에 글씨와 그림을 새겨 종이에 찍어내던 옛사람들의 책 제작과 그림 인쇄 과정을 나타낸다. 곰 인형에 전통 한복을 입힌 ‘꼬레고마’ 시리즈와 고구려 벽화를 재현한 무용 인형은 옛 인물과 풍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색색의 종이와 도구로 만든 바늘쌈지와 뜨개 인형 역시 전통을 아끼는 마음이 새로운 취향과 창작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글 | 김규리 기자 evergreen@ 

사진 | 임세용 기자 sy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