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FLIX] 치열함에 눈먼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高FILX는 고대인이 애정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바라카몬>
별점: ★★★★☆
한 줄 평: 멈춰 서 오늘의 하늘을 살피게 하는 여유
여기 20대 초반의 나이로 서예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한다 세이슈(半田清舟). 서예가 아버지를 따라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에게는 결핍이 있는 법. 한 사건으로 인해 한다의 아버지는 그를 시골로 내려보낸다. 애니메이션 <바라카몬>은 이 젊은이가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섬마을에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다를 시골로 보낸 사건은 그가 서예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한다. 그동안 그에게 서예란 정해진 정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때문에 기본에 충실한 글자를 써내기 위해 고독함 속에서 치열하게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 대회의 뒤풀이 파티에서 관장의 한마디가 그가 외면해 온 현실을 후벼팠다. 틀에 박힌 글자. 사람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날조보다 정곡을 찌르는 진실이다. 한다는 시쳇말로 ‘분노 버튼’이 눌린 듯 지팡이를 짚는 관장에게 주먹을 날리고 만다. 한다 자신도 관장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는지 평소보다 더 과격하게 행동한 것이었다. 사실상 본인의 삶이 없었던 한다는 자신의 개성이나 진심을 담은 글자를 써낼 수 없었다.
그런 한다였기에 처음 시골에 도착했을 때 그는 조용한 자연에서 서예에만 몰두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시골은 우연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 우연은 대개 사람, 그중에서도 어린이들에게서 시작됐다. 멀쩡한 현관을 내버려두고 뒷문으로 드나드는 여중생 2명과 투덜대며 식사를 가져오는 이장집 고3 아들. 그리고 동네의 개구쟁이 꼬맹이 나루와 그의 친구들까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서예를 방해했다. 하지만 결과는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아직 미성숙하기에 상처 주고 제멋대로지만, 어린이들은 뒤늦은 성장을 함께하며 사람 한다가 삶을 되찾는 일을 도왔으며, 그 덕분에 한다는 서예가로서도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었다.
혹자는 성공하려면 여유를 포기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라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은 여유가 유일한 해답이 된다고 믿는다. 이 신념을 잊고 조급해지는 날이면 이 애니메이션을 꺼내본다. 대단한 화면 연출이 눈을 사로잡는다거나 아주 생소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강렬함이 없기에 편하게 손이 간다. <바라카몬>은 가벼움이라는 무거운 힘을 갖고 있다.
김수연(생명대 식품공학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