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에 30년, 수집에 50년 “한 우물만 파세요”

유상옥(상학과 55학번)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

2025-11-09     홍예원 기자

동아제약 퇴사 후 55세에 창업

“어디서든 사장 되겠다 결심해야”

유물 기증으로 문화 발전 기여

 

동아제약에서 30년 근무 후 코리아나 화장품을 설립한 유 회장은 후배들에게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상옥(상학과 55학번) 회장은 인터뷰를 위해 집무실을 찾은 기자에게 동아제약의 박카스 한 병을 내밀었다. “손님께는 커피나 차를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는 늘 박카스를 드립니다.” 동아제약 공채 1기로 입사한 유 회장은 30년 동안 회사와 함께 성장했고 퇴직 후 코리아나 화장품을 설립했다. 50여 년간 수집한 문화재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융합한 ‘스페이스 씨’를 세우기도 했다. “취미로 시작한 수집으로 복합문화공간까지 지었죠. 사업가라는 수식어도 좋지만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수집가로도 기억되고 싶어요.”

 

  은행원 꿈꾸다 택한 경영

  유년 시절 은행원 외삼촌을 동경한 유 회장은 은행 간부를 꿈꾸며 고려대 상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산업은행 시험에 응시했지만 불합격했다. “수많은 명문대 학생이 지원했는데 선발 인원은 10명뿐이니 합격하기 어려웠어요. 어릴 때부터 은행원 외에는 꿈꿔 본 진로가 없어 떨어지고 나니 막막했죠.”

  대기업 입사 시험에서도 고배를 마시던 그는 우연히 동아제약 공채 1기 공고를 발견했다. “당시 동아제약은 체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중소기업이었어요. 하지만 입사 후에는 제 직장이니까 국내 최고 제약회사로 키워서 사장이 되겠다고 다짐했죠.”

  경리과 직원에서 구매과장으로 승진한 유 회장은 소화제 ‘생명수’의 원가를 절감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대신 시장을 누비며 원료의 시장 가격을 조사했다. “회사가 시장 가격보다 30%나 비싸게 원료를 사들인다는 걸 알았어요. 이를 알자마자 동대문 시장에서 직접 원료를 사들였죠. 시장 도로가 포장돼 있지 않아 회사가 있는 용두동까지 지게꾼과 함께 짐을 날랐습니다.” 기획관리실장을 맡아 새로운 공장을 건립할 때도 주말마다 강중희 회장과 전국을 돌며 부지를 찾았다. 1년 만에 경기도 안양에서 찾은 부지를 사들이는 일도 유 회장의 몫이었다. “5만 평 부지의 지주 77명을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 설득했어요. 회사의 비전과 제조업이 지역 발전에 미칠 영향을 설명했죠. 때론 막걸리를 함께 마시며 인정에 호소하기도 했어요. 1년 반 동안의 교섭 끝에 모든 땅을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1963년 출시된 박카스가 한국 자양강장제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까지, 유 회장의 실행력이 주효했다. 박카스는 출시 후 호실적을 냈지만 정부가 음료 상품에 30% 물품세를 부과하며 매출에 제동이 걸렸다. “모든 직원이 정부의 결정이니 별수 없다고 여겼지만 저는 직접 국회의원을 만나 업계 사정을 설명하며 법안이 철회되도록 설득했어요. 다행히 국회 재무위원회에서 세율 인하가 결정됐고 박카스는 동아제약의 효자상품이 될 수 있었죠.”

  영업 상무로 재직하던 유 회장은 동아제약 계열사 라미화장품의 부사장으로 발령됐다. 당시 라미화장품은 대표 상품 없이 23억 원 적자만 안고 있었다. “적자를 줄이려면 고객이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신제품을 만들어야 했어요. 소비자들이 라미화장품의 품질을 인정하기 위해선 먼저 브랜드와 제품 인지도를 높여야 했죠.” 그는 3, 4년간 수정을 거듭해 신제품 ‘라미벨’을 개발했다. 제품명의 ‘벨’과 종 모양의 용기 디자인에서 착안해 종을 흔드는 모습이 연출된 광고도 선보였다. “매출이 오른 것은 광고와 디자인 덕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붙잡은 것은 제품의 만족감과 신뢰였어요. 좋은 물건은 결국 고객도 알아보니까요. 라미벨이 성공하며 업계 4위에 오르기도 했죠.” 라미화장품은 유 회장이 경영을 맡은 지 4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며 흑자 전환했다.

 

  억울한 퇴사가 창업의 기회로

  1987년, 라미화장품을 이끌던 유 회장은 노사 분규에 휘말렸다. “임금 협상에서 9.7% 인상을 결정했는데 제가 임금을 37% 인상했다는 보고가 올라갔어요. 저를 시기하던 동료가 거짓 보고를 올린 거죠.” 한직인 동아유리로 발령받아 회장이 됐지만 사표를 내고 30년 몸담은 동아제약을 떠났다. “억울하게 밀려나 은퇴하고 싶지 않았어요. 회장이었으나 직접 세우지도 않은 회사의 전문경영인일 뿐이니 이제는 정말 내 회사를 세워 볼 기회라고 판단했죠.”

  동아제약 퇴사 후 유 회장은 55세의 나이에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했다. 라미화장품에 이어 다시 화장품 업계를 선택한 이유는 유진오 전 총장의 조언 때문이었다. “졸업반 좌담회에서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고 강조하셨어요. 더 좋은 직장을 찾겠다며 이직을 반복하다 승진도 못 하고 어려움을 겪는 제자를 많이 보셨다면서요. 퇴사했지만 한 업계에 종사하며 전문성을 갖추기로 결심했죠.”

  그는 화장품 판매 방식이 방문 판매에서 점포 판매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고객 맞춤 판매 전략을 세웠다. “코리아나 화장품은 신생 기업이었기 때문에 차별화된 영업 전략이 필요했어요. 미용 교육을 받은 방문판매 사원이 피부 측정기로 고객 피부 상태에 맞춰 제품을 판매하는 컨설팅 서비스를 고안했죠. 또 머드팩을 알리고자 모델이 몸에 진흙을 바르고 등장하는 파격적인 광고도 시도했죠. 그때만 해도 광고에는 화장품과 모델이 예쁘게 돋보여야 했어요.” 세밀한 전략 덕에 코리아나 화장품은 창업 5년 만에 업계 3위에 올랐다. 

  유 회장은 투명한 기업 경영을 실천하고자 했다. *기업공개가 활발하지 않던 시기, 그는 동아제약과 라미화장품, 코리아나 화장품까지 모두 공개 기업으로 전환했다. “기업공개를 하면 기업이 성장 자금을 확보할 뿐 아니라 투자가 늘어나 국가 경제가 활발해져요. 대학에서 배운 대로 한 것이죠.” 코리아나 화장품은 1993년과 1997년 납세 모범 기업으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납부액이 늘어나는 것을 성과의 지표로 여깁니다. 납세보국 하는 것보다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수집으로 세운 박물관·미술관

  유 회장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프랑스 조각가 샤를 고티에(Charles Gauthier)가 조각한 소녀상이, 집무실 책상에는 고려청자 베개와 분합이 있다. 50년 전 그는 단골 양복점 주인의 조언에 그림, 조각, 민속품 등 다양한 문화재 수집을 시작했다. “동아제약 구매과장일 때라 계산을 업으로 하면 고지식해지기 쉬우니 예술적 취미를 가져보라는 권유를 들었죠. 인사동 화랑에 드나들다 그림 수집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는 월급날 화랑에 외상값을 갚기 바빴죠. 퇴근길에 연말 보너스를 봉투째 내어주고 산수화를 사 온 적도 있어요.” 유 회장은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윤장섭 전 호림박물관 관장과 교류하며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길렀다. “선배님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시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만 점이 넘는 유물을 모았네요.”

  2003년, 유 회장은 전통 화장 유물을 전시하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코리아나 미술관으로 이뤄진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씨를 설립했다. 기업의 힘, 나라의 힘은 문화의 힘으로 완성된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하는 공간이다. “수집을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박물관을 지어 여러 사람과 함께 감상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마침내 사람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강남구 신사동에 모두를 위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세웠죠.” 그는 수집품을 전시할 뿐 아니라 기증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유물 200점을, 작년 11월 고려대 박물관에는 유물 114점을 기증했다. 이 외에도 청양 백제문화체험박물관과 덕수고등학교에도 수집품을 기증했다. “모든 수집품은 잠시 제게 머물 뿐 온전한 소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죽기 전까지 모은 유물을 전부 기증할 계획이에요.” 유 회장은 기증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2009년 옥관문화훈장에 이어 2022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백제문화체험박물관에는 유 회장이 기증한 유물 209점을 전시한 '유상옥 기증실'이 마련됐다.
유 회장이 기증한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에 전시된 모습.

  문화를 아는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유 회장은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와 <문화를 경영한다> 등 10여 권의 수필집을 내고 현재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소설과 달리 수필은 판매량을 신경 쓰지 않고 경험과 철학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최근 오른손이 불편해졌지만 왼손으로 집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아제약에서 30년, 화장품 업계에서 40년, 문화재 수집에 50년 인생을 바친 유 회장은 후배들에게 집요하게 파고들라고 조언한다. “어디서든 주어진 일을 내 일로 여기며 전문성을 갖추겠다고 다짐해야 해요. 신입사원 시절부터 사장이 되겠다 결심하고 마침내 이룬 것처럼요. 자기가 선택한 길을 꿋꿋하게 걷다 보면 자신만의 단단한 기준이 생길 겁니다.” 유 회장은 앞으로도 공익을 추구하는 문화경영인으로 살아갈 예정이다. “사회와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제 소명입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실천하려 합니다.”

 

*기업공개: 기업 설립 후 처음으로 외부 투자자에게 주식을 공개하고 매도하는 행위.

 

글 | 홍예원 기자 esotsm@

사진 | 박인표 기자 inpyo902@

사진제공 | 유상옥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