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찾아 ‘사서 고생하는’ 청년들

워킹 홀리데이 참여자 좌담회

2025-11-09     백하빈 기자

청년에게만 발급하는 특별 비자

의료·행정체계 등 불편 감수

“막연히 기대 말고 목표 세워야”

 

  워킹 홀리데이는 만 30세 이하 청년에게 특별 비자를 발급해 협정을 맺은 국가로 관광과 취업을 최대 2년까지 허용하는 제도다. 한국에서의 삶을 잠시 멈추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자극을 얻으려는 청년들이 이를 이용한다. 캐나다에서 체류한 김지철(남·30) 씨와 체류 중인 성정하(여·28) 씨, 일본에서 체류한 이상재(남·31), 성서우(남·27) 씨는 워킹 홀리데이 경험이 진로와 가치관을 바꿔놓았다고 입을 모았다.

 

  - 워킹 홀리데이를 결심한 계기는

  김지철 | “나중에 북미권 국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싶어서 문화를 미리 체험하고자 캐나다로 갔어요. 잘 적응한다면 석사부터 박사까지 한눈팔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겠다 싶었죠.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일하며 외국인의 삶을 관찰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성서우 | “대학교 3학년 2학기에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갔을 때 당시 도우미였던 여자친구를 만났어요. 서로 문화를 이해하면 더 돈독해질 것 같아 각자의 나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보내기로 했죠. 제가 귀국한 뒤 여자친구가 1년동안 한국에 왔고 저도 졸업한 뒤 일본에서 1년 동안 워킹 홀리데이로 머물렀죠. 일본에서 결혼한 뒤 취업까지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이상재 | “연극영화과에 다니면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일본군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 깊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재미가 붙어 1년만에 일본어 자격증 JLPT N1을 땄죠. 현지에서 일본어 실력을 키우고 싶어 워킹 홀리데이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코로나19로 비자 발급이 중단돼 3년을 기다렸지만 2023년에 비자 합격증을 받은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출국했습니다.”

 

  - 현지에서 어떤 일을 하며 지내나

  김지철 | “6개월이 안 되는 기간에 샌드위치 가게,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영어 학당에서 문화활동 담당자로 일했어요. 많게는 한 번에 세 곳에서 일했죠. 일자리를 구하는 기간에는 이력서를 가지고 다녔는데 유명 관광지에 갔다가 샌드위치를 사 먹고 너무 맛있어서 사장님께 바로 이력서를 드렸다가 채용된 기억이 나네요.”

  이상재 | “일본 최대 여행사인 JTB의 이케부쿠로 지사에 파견돼 일했어요. 주로 호텔, 료칸과 호텔 예약 문의를 전화로 처리하는 일을 했죠. 한국인 고객이 적어 주로 일본어를 사용한 덕에 비즈니스 일본어 실력이 크게 늘었어요.”

 

  - 근무 외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김지철 | “캐나다에선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장이 잘 없어요. 한국에서는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바쁘게 살아왔으니 매일 주어지는 많은 여유가 되려 우울하게 느껴졌죠. 평소에 좋아하던 농구를 하려고 토론토 내에 일반인 농구 리그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성정하 | “아침 오픈부터 저녁 마감까지 해야 해서 일을 하는 날은 사실상 아무것도 못 해요. 한국에서처럼 쉬는 날에 빨래나 청소를 몰아서 하고 친구들과 놀러 가거나 동네를 산책하며 지내죠. 주로 일터에서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과 사귀거나 그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아 인간관계를 형성해요.”

 

  - 현지에서 겪은 어려움은

  성서우 | “행정 서류의 온라인 발급이 가능한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업무를 대면으로 접수하고 처리하는 일본의 시스템이 조금 불편했어요.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필요한 주민등록등본 등의 서류도 직접 ‘구역소’라 불리는 주민센터에 방문해 발급받아야 했죠.”

  성정하 | “의료나 주거 문제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일하는 레스토랑의 한국인 사장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같이 일하던 직원이 집 문제로 중국인 집주인과 다툼이 생겼을 때 사장님이 직접 보험사와 소통해 주시고 병원이나 약 관련 문제, 사소한 생활 노하우도 많이 알려주셨어요. 캐나다는 의료 시스템이 한국보다 열악해서 아프면 할 수 있는 일이 약 먹는 것뿐이죠. 귀국하면 한국 병원에 한번 가고 싶어요.”

  이상재 | “거처를 구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일본은 외국인, 특히 단기 체류자에게 부동산 계약을 잘 안 해주거든요. 도쿄 셰어하우스의 2평짜리 방에서 월세 70만 원을 내며 지냈죠. 10개월 정도 지내다가 취업 비자를 받고 나선 정식 부동산 계약을 할 수 있어서 비교적 저렴한 원룸으로 이사할 수 있었어요.”

 

  - 워킹 홀리데이를 추천하는지

  김지철 | “누구에게든 좋은 경험일 거라고 생각해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세계를 배웠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확실히 찾았죠.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기 전에는 대학원 진학과 스포츠 마케팅 분야 취업을 놓고 고민했는데 둘 다 포기하고 떠나보니 전자가 더 아쉬웠어요.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덕에 귀국 후 대학원 진학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죠.”

  성정하 | “저도 추천해요. 낯선 환경에서 집과 직장을 구하며 혼자서 뭐든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시기별로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듯한 한국에서의 생활보다 여유도 있고요. 그렇지만 막연히 영어 능력 향상을 기대해선 안 돼요. 캐나다는 다민족 국가라 비영어권 국가 출신 사람을 더 많이 마주했고 캐나다 사람들은 얌전하고 개인주의적이라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도 없어요. 독립심을 갖고 영어를 공부해야 실력이 늘 거예요.”

 

글 | 백하빈 기자 hpaik@

사진제공 | 김지철·성서우·성정하·이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