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인식 갖춘 20대, 균열 극복해야 평등 이룬다
경쟁 관계에 놓인 20대 남녀
여성 정책에서 성평등 정책으로
“군 복무 여건도 개선해야”
여성가족부가 조직 개편을 거쳐 성평등가족부로 재탄생했다. 신설된 성형평성기획과는 청년 남성이 겪는 어려움을 조사하고 성별 인식 격차의 원인을 분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번 조직 개편이 진정한 성평등을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한다. 권예소라(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성평등가족부는 성평등 정책이 사회 통합과 모든 사회 구성원의 공생을 위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성별 따라 성차별 달리 보인다
20대 남성과 여성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성차별은 극과 극이다. 2021년 당시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응답자의 73.4%가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했고 22.4%만이 성평등하다고 했다. 이들은 일상적 안전 위협과 취업 불이익, 임금 격차가 여성 차별이라고 본다. 23세 여성 이모 씨는 “고등학생 때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 피해를 겪었고 길에서 모르는 남성에게 자기 집에서 술을 먹자는 제안을 받은 적 있다”며 “일상에서 안전을 위협당할 때 성차별을 느낀다”고 말했다. 23세 여성 김모 씨는 “금융권 취업을 희망하는데 취업 과정에서 불이익을 겪거나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같은 조사에서 20대 남성 응답자의 24%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이는 전 연령대 남성 중 가장 높은 결과다. 이들은 여성 차별이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남성이 겪는 차별이나 역차별도 있다고 말한다. 20세 남성 장모 씨는 “대학 입시에서 여대라는 별도의 경쟁 구조가 있는 여성이 부러웠다”며 “여성에게 불리한 영역도 있지만 성차별의 피해자를 여성으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했다. 임도현(남·22) 씨는 “과거만큼 심하지 않지만 여성 차별은 남아 있다”면서도 “남자가 더 힘든 일을 맡아도 여자와 비슷한 보수, 문재인 정부가 적극 추진한 공공기관 여성할당제, 여성 취업 지원 등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남성의 병역 의무가 차별인지를 두고 20대 남녀의 인식은 나뉜다. 남성은 보상 없는 병역 의무를 성차별로 여긴다. 장 씨는 “복무 중 처우가 열악하고 사회 복귀 시 보상이 없어 박탈감을 느낀다”며 “병역 문제로 또래 여성보다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만큼 마땅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은 이를 차별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씨는 “많은 남성이 군 복무 중 안전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이에 부당함을 느끼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이는 여성을 우대한 결과가 아니라 과거 전통적 성별 분업에 따라 남성 중심으로 안보 체계가 마련된 결과”라고 했다.
달라진 생각, 여전한 성역할
전문가들도 남성이 겪는 문제는 성차별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신경아(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병역 의무는 사회가 여성을 우대해서 남성이 겪는 문제가 아니기에 성차별이 아니다”라며 “군 복무 기간만큼 남성의 취업이 늦춰지기는 하지만 남성 고용률은 20대 중반을 기점으로 여성보다 높아지기 시작해 30대가 되면 여성보다 약 18% 높아진다”고 했다. 여성 차별을 시정하려는 적극적 조치가 의도치 않게 남성 차별을 낳는 역차별 사례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국회 비례대표 여성할당제가 있어도 여성 의원은 전체의 약 20%에 그친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원이 돼 남성이 불공정하게 승진에서 탈락했다는 문제 제기나 법적 분쟁 사례도 없다”고 말했다.
청년층에서 성별 인식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생애주기에 따라 20대까지는 이성과 비교적 대등한 경쟁 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18세 남성 장모 씨는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 때문에 성평등이 제로섬 게임으로 느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시정하는 제도가 되레 차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윤태(공정대 공공사회학과) 교수는 “20대까지 남성은 여성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기에 여성을 약자로 생각하지 않고 구조적 성차별도 체감하기 어렵다”며 “30대 이후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여성이 취업과 승진에서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보다 성평등 의식이 높은 20대 남성이 전통적 성역할을 강요받아 차별을 느낄 수도 있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성세대는 군 복무에 거부감이 없었고 ‘군대에 다녀오면 조직 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해 군필 남성에게 문화적 보상을 줬다”며 “반면 성평등 의식이 강해진 청년 남성은 원치 않게 전통적 성역할 수행을 강요받으며 그에 따른 보상도 받지 못해 차별당한다고 느낀다”고 했다. 청년 남성은 전통적 남성 생계 부양 모델에 부담을 호소하기도 한다. 23세 남성 박모 씨는 “여성의 성역할 고정관념은 꽤 해소됐지만 남성의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은 여전하다”며 “경제 불황이 심해질수록 남자들은 기존의 남성 역할을 다하기 어려워 분노하고 공허해진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일자리가 남성에게 먼저 돌아가는 경향은 약해졌지만 남성의 생계 부양 규범에 동조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며 “한국 사회는 남성에게 여성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부담을 지운다”고 했다.
커뮤니티·정치인이 갈등 부추겨
20대 남녀의 인식 차이는 성별 균열로 이어졌다. 균열 원인으로 이성에게 적대 감정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온라인 환경이 지목받는다. 마 연구위원은 “고질적인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와 그 대응으로 등장한 메갈리아, 정제되지 않은 페미니즘이 온라인에서 전쟁을 벌여 왔다”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오늘날 청년은 성별로 분리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성을 향한 비난을 학습하고 왜곡된 젠더 인식에 길들었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성별 균열은 정치권이 성별 대립 구도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며 전면에 드러났다. 이 씨는 “제21대 대선에서 여성은 이재명 후보, 남성은 이준석 후보로 표가 갈린 것을 보며 성별 균열이 매우 크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를 향한 반감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하위문화였는데 이준석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 이를 공론장으로 가져와 성별 갈등을 부추겼다”고 했다.
다시 말해 20대 남녀의 분열이 실제 이념 분화라기보다 정치권의 성별 편 가르기 전략에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권 교수는 “젠더 문제가 전면에 두드러진 제20대 대선에서 남성은 윤석열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지만 2년 뒤 총선에서 젠더가 정치 이슈로 등장하지 않자 국민의힘 지지가 10%p 이상 이탈했다”며 “20대 남성은 보수, 20대 여성은 진보라는 구분이 발생한 원인은 일관된 이념 분화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동원 때문”이라고 했다.
전통적 성역할에서 벗어나야
성별 갈등 담론으로 생긴 균열의 피해는 청년에게 돌아간다. 권 교수는 “성 불평등한 제도 안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고정된 성역할과 사회적 기대에 따라 제약을 겪는다”며 “취업난, 극심한 경쟁, 우울과 불안 등 20대가 겪는 문제의 원인을 이성에게 돌려 성별 대립을 강조하면 근본적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신 교수도 “청년 집단 내부는 매우 이질적이라 이성을 적대시하는 청년은 일부고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며 “정치권이 성별 갈등을 부추기면 이성과 친구나 동료가 되길 바라는 대다수 청년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청년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적 성차별을 해소해 청년이 성역할에서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다. 신 교수는 “성차별을 해소하려면 여성을 지원할 뿐 아니라 남성의 의식과 행동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간 성평등 정책은 여성 지원에 그쳤다”며 “성평등 정책은 달라진 현실에 맞게 젠더 관계와 젠더 규범을 개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성평등한 삶의 모범 사례를 청년에게 제시하는 것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신 교수는 “일과 가사를 병행하며 이성과 진정한 동반관계를 맺는 청년이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며 “실제로 2030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교육 수준이 높고 가사를 원만히 분담하고 있어 빠르게 전통적 성역할을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구조적 성차별 해소가 모든 청년에게 도움이 된다는 설득도 중요하다. 권 교수는 “성평등가족부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성평등 정책의 참여자이자 수혜자가 되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해야 한다”며 “이때 청년이 호소하는 어려움을 성별 갈등의 틀로 단순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고 제언했다.
그간 성별 갈등 담론에 가려진 근본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마 연구위원은 “청년 남성은 전통적 남자다움을 원치 않기에 과거의 군 체계에 적응할 것을 요구받는 상황을 답답하게 느낀다”며 “시대착오적인 제도를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도 “국방부와 기재부가 복무 기간 단축, 복무 조건 개선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는 용병제로 나아갈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김 교수는 “성별 균열 담론보다 일자리 부족, 심각한 경제 불평등과 같은 진정한 청년 문제를 해소하는 의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 황다희 기획1부장 tender@
일러스트 | 박은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