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고치는 사람들
수리(修理)는 물건을 고치는 것을 넘어 흐트러진 상태를 다듬고 원리와 구조를 바로잡아 완전하게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 이런 수리로 동심을 지키고 추억을 되살리며 색과 소리를 복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고치고 있다.
동심을 지키다
아이에게 장난감과 인형은 하나뿐인 친구다. 어른이 돼도 소중한 친구와 만든 추억은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시간이 흘러 장난감과 인형이 해져도 여전히 동심을 간직할 수 있게끔 해주는 이들을 만나봤다.
“인형도 누군가에게는 ‘내 동생’이자 ‘우리 식구’입니다.” 인형에도 마음과 추억이 깃든다는 김갑연 토이테일즈 대표의 신념 아래 낡고 해진 인형을 수선하는 토이테일즈는 일명 ‘인형 종합 병원’이다. 이곳에서는 원단이 삭는 것을 막기 위해 새 옷을 입히는 중간 처방부터, 복원이 어려운 인형을 새로 제작하는 특급 처방까지 인형의 상태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처방과 치료가 이뤄진다. 단계별 치료의 세밀함에 사람들이 간직한 인형과의 추억을 존중하려는 마음씨가 묻어난다.
전직 금속공학과 교수, 전자기기 기술자 등 전문 수리 기술을 가진 어르신들이 장난감을 고치기 위해 한 곳에 모였다. 고장 난 장난감을 무료로 수리하는 키니스장난감병원은 평균 나이 75세의 어르신 12명이 모인 비영리 봉사단체다. Kid(어린이)와 Silver(노인)의 합성어인 키니스(Kinis)는 장난감을 매개로 하는 세대 간 공존을 뜻한다. 김종일 키니스장난감병원 이사장은 “장난감 없이 크는 아이들이 없도록 봉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김성진(남·73) 씨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장난감 수리를 시작했다. 아이들의 고맙다는 한마디가 그에게는 큰 보람이자 자부심이다. 장난감 수리는 수십 년 동안 기계를 만져 온 김 씨에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전자 기술을 활용한 장난감이 많아지며 기존의 지식만으로는 장난감을 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료와 수리 방법을 의논하고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는 김 씨는 아이들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늘 배우고 있다.
색과 소리를 복원하다
세월의 흐름은 예술도 낡게 한다. 악기의 소리는 갈라지고 가죽의 색은 바래며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는 희미해진다. 그러나 예술의 매개체가 가진 빛과 색을 복원하는 이들은 수리로 그 가치를 보존한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훼손된 문화유산을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복원한다. 이곳의 보존과학자는 금속, 도자, 지류 등 다양한 재질의 유물에 담긴 역사를 미래 세대에 전한다. 보존 처리는 유물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는 상태 조사부터 시작한다. 육안 및 비파괴 조사로 손상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처리 계획을 수립한다. 일반적인 복원 순서는 클리닝, 접합 및 복원, 색 맞춤 등으로 진행 되지만 재질과 유물의 상태에 따라 과정이 달라진다. 보존 처리가 잘못된 유물은 원래 상태로 해체한 후 새로 복원된다. 김미정 보존과학자는 “유물 상태에 맞는 가장 안정적인 재료와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명품 수선 기업 투엘다움은 수리가 어려운 명품을 일관성 있게 복원하기 위해 자체 수선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품별로 매뉴얼을 마련해 체계적으로 수선하고 명품의 미학을 살리기 위해 원형과 동일한 자재를 사용한다. 이현석 투엘다움 대표는 “어머니의 유품을 꼭 복원해 소장하고 싶다던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며 “명품 수선은 그 안에 담긴 소중한 추억과 의미까지 복원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세문 세영악기 대표는 악기의 미세한 균열과 이상을 살펴 조율한다. 오래 사용해 닳은 기타 지판의 미세한 홈을 정밀하게 복원하고, 목재의 균열을 메워 울림통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이 대표는 특히 고객이 자신의 주법과 취향에 맞게 연주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작업에 공을 들인다. 40년 넘는 내공으로 기타를 수리해 온 그의 세영악기는 믿고 맡기는 기타의 병원이 됐다.
추억을 되살리다
멈춰버린 시계의 톱니바퀴, 고장 난 필름 카메라, 침묵하는 오디오 장비. 이들이 제 기능을 잃으면 그 안에 깃든 추억마저 망가진다. 그러나 망가진 기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이들은 기계를 고치고 고객의 추억을 되살린다.
안성철 영진전자 대표의 작업대 위에는 소리를 잃은 오디오 장비들이 놓여 있다. 휴대용 플레이어부터 대형 카세트 덱까지 세월을 버텨 온 장비들이 오디오 장비 수리 45년 경력인 안 대표의 손길을 기다린다.
안 대표는 세월이 흘러 내부 고무 부품이 경화되거나 모터가 굳은 장비를 주로 다룬다. 장비를 완전히 분해해 낡은 고무 부품을 교체하고 부품의 유격을 다시 조정해 재생 속도를 안정화한다. 고무 부품 교체부터 모터 정밀 정비, 기판 복구까지의 과정을 거친 장비는 제 기능을 되찾는다.
국제시계연구원은 장인의 감각과 정밀한 기술을 체계적인 교육으로 전수한다. “시계 구성의 본질부터 알고 고쳐 가는 것이 진정한 수리입니다.” 박성룡 국제시계연구원 원장은 경험과 관습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정밀한 기술을 가르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시계의 원리와 구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국제시계연구원을 설립했다.
국제시계연구원은 시계 애호가부터 전문과정을 준비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수강생이 찾는다.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 방법뿐 아니라 직접 부품을 깎아 시계를 제작하는 기술도 가르치며 시계 수리 전문가를 양성한다.
순간을 기록하는 카메라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다. 김진철 카메라닥터 실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카메라를 자신의 것처럼 여기며 숨을 불어넣는다.
필름 카메라는 구조가 복잡하고 부품 수급이 어려워 수리 난도가 높다. 특히 셔터 구동계는 정비 과정에서 작은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독일 라이카 본사에서 엔지니어 과정을 수료한 김 실장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카메라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한다. 단종된 부품을 사전에 확보하고 고장 난 카메라에서 정상 부품을 골라 수리한다.
박인표·배은준·한예리 기자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