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어떤 경제학자의 흔한 주식투자 실패담

2025-11-16     주동헌 한양대 ERICA 캠퍼스 경제학부 교수
주동헌 한양대 ERICA 캠퍼스 경제학부 교수

  1997년, 한국은행 입행 2년 차였던 나는 주식시장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하락세를 보이던 주가가 800선 앞에서 반등하면, 심리적 저항선을 지키는 매수세가 유입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급락세가 나타나면, 프로그램 매도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문제 아닌 문제라면, 중앙은행에서 주식시장 분석 업무를 담당하게 된 직원이 주식투자를 해 본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팀장이 심리적 저항선이 있기는 한 것인지, 프로그램 매도가 주가에 정말 그렇게 크게 영향을 주는지 물었지만, 시장 참여 경험이 없는 담당자의 답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업무에 도움이 될까 싶어 주식 거래를 시작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주식 투자가 너무 재미있었다! 주가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주가가 오르면 기분이 좋았고, 내리면 마음을 졸였다. 결말은 짐작대로다. 외환위기로 주가는 폭락했고 내 생애 첫 주식투자는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내 처지는 양반이었다. 내부 정보라는 지인의 전언을 듣고 건설사 주식을 산 입행 동기, 정부가 은행을 망하게 둘리 없다는 믿음으로 은행 주식을 매입했던 선배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었다. 

  필자가 다시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은 정기예금 금리가 2%도 안 되던 2019년이었다. 예금 금리가 낮으니 차라리 경제학과 교수가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아내가 주식투자 자금을 내놓았다. 당시 주가는 2천 전후에서 박스권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대장주 주식을 가격이 좀 내리면 사고, 적당히 오르면 파는 식으로 은행 예금 이자보다는 꽤 나은 수익률을 만들어냈다. 주식투자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도박 중독이 이런 것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2019년 말 코로나19가 발생했고 주가는 다시 급락했다. 매도 시점을 놓친 나는 의도치 않은 장기투자자가 되었다. 다행히 코로나 위기에 대응한 중앙은행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주가가 반등해서 파국은 피했다.

  주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주가의 예측 불가능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경제 모형으로 ‘임의보행 이론’이 있다. 임의보행 이론은 어제의 주가에 현재 시점에서 입수 가능한 정보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경제적 충격이 더해져 오늘의 주가가 결정된다고 본다. 이 이론은 오늘까지 활용 가능한 정보는 모두 오늘의 주가에 반영되어 있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에 근거한다. 임의보행, 즉 아무렇게나 걷는 술 취한 사람의 위치를 예측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사람의 두세 걸음 뒤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을까? 열 걸음 뒤는? 스무 걸음 뒤는? 걸음 수가 많아질수록 술 취한 사람이 위치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커진다. 주가도 예측 시계가 길어질수록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위험은 커진다.

  하지만 주식 투자자들은 이 같은 경제 이론을 믿지 않는다. 주식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특정 가격으로 수렴한다고 믿으며, 자신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정책 당국이 주가를 부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시장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믿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이 비효율적이라고 믿고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시장이 그들의 정보를 가격에 반영하는 효율성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 효율성은 결과적으로 주가를 임의보행하게 한다.

  종합주가지수가 지난 10월 말 순식간에 4천을 넘어섰다. 주가 폭락 예측도 어렵지만, 주가 급등 예측도 어렵다. 하늘로 치솟는 주가지수 그래프를 보면서 이제라도 주식 매수에 동참해야 하나 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에 빠지는 것은 경제학자도 예외가 아니다. 주식투자에 관한 한 경제학자라고 일반인에게 무엇을 조언할 처지가 아니다. 결국, 투자는 자기 책임이다.

  다만, 1997년 중앙은행에서 주식시장 분석 업무를 할 때 만난 펀드 매니저가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한 나에게 해 준 조언은 전하고 가자. 하나, 주식시장에서 개인은 우월한 정보력을 가진 기관을 이길 수 없다. 둘, 개인은 개별종목 투자로는 장기적으로 이익을 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펀드 가입을 권했다. 지금이라면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펀드, 즉 ETF를 권할 것이다. 여기에 주식투자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지금은 금융경제학을 강의하는 교수로서 한 마디만 더하자면, 위험을 덮어놓고 투자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주동헌 한양대 ERICA 캠퍼스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