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밖 탐정업, “불법 조사 막으려면 법부터 제정해야”
수사 공백 메우는 민간 조사
조사 방식 합법 여부 불분명
“불법 단속할 법적 근거 필요”
탐정은 의뢰인의 요구에 따른 조사를 대행해 수사기관이 해결할 수 없는 민간 영역의 사건사고 해결을 돕는다. 국내 탐정업 자체는 합법이지만 아직 관리, 감독 체계가 없어 GPS 설치, 도청 등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 탐정업의 음지화를 막으려면 법제화로 체계를 갖춰 불법 업체를 단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변호사 한계 보완하는 탐정
경찰은 범죄 혐의가 있을 때만 수사를 개시하고, 변호사는 이미 확보된 증거를 바탕으로 소송 관련 법률 사무를 수행한다. 탐정은 이 둘이 다루지 못하는 민간 영역의 사실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고유한 역할을 한다. 그간 탐정업은 사생활 침해 우려와 불법 사찰 논란 등으로 금지돼 왔지만 민간조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며 양성화 및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2020년 8월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탐정의 존재를 부정한 조항이 삭제되며 탐정업은 합법이 됐다.
탐정은 불륜 증거 수집이나 실종자, 반려동물 소재 파악 같은 개인 의뢰를 넘어 산업 스파이 조사 등의 기업 의뢰, 사이버 범죄 조사 등의 디지털 의뢰까지 처리한다. 장석기 SG탐정법인 대표는 “2015년 간통죄 폐지 이후 배우자의 부정행위 증거 수집 의뢰가 전체 업무의 60%를 차지한다”며 “기업 내 비위를 조사하거나 사이버 명예훼손 증거도 수집한다”고 설명했다.
수사가 즉각 필요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우선순위로부터 밀린 사건의 피해자들도 탐정사무소를 찾는다.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가해자 처벌보다 원금 회수가 급하다는 코인 사기 피해 의뢰인이 가해자 신원 조사를 의뢰한 적 있다”며 “전문 금융 사기의 죗값을 물으려면 암호화폐 자금 흐름 추적 등 대규모 수사가 필요해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개인 회생부터 도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호한 조사 범위에 불법 조사 만연
민간조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 왔지만 탐정의 업무 범위나 법적 권한이 명확하지 않아 탐정업 종사자들은 사건 조사 과정에서 다른 법률 위반 여지가 있는지 스스로 판단한다. 탐정사무소 대부분은 SNS, 언론 자료 등 공개 정보를 찾거나 주변인 탐문, 현장 잠복 등의 조사 방법을 활용하는데 이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스토킹 처벌법 등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 강동석 205컴퍼니 대표는 “공개된 정보를 먼저 검색하고 과거 주소, 직장이나 학교, 지인 명단을 정리해 현장에서 이웃이나 동료를 탐문한다”며 “대상자의 특정 장소 출입, 차량 번호, 사람 관계망을 관찰해 가시적인 단서를 마련하면서 사생활 침해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했다. 전해일 지글로벌행정사사무소 대표는 “의뢰인 역시 범죄 교사범으로 처벌될 위험이 있어 탐정뿐 아니라 의뢰인에게도 법적 위험을 떠넘기는 구조”라고 했다.
스토킹 처벌법 등에서 규정하는 행위 기준도 명확하지 않아 탐정은 조사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다. 박유석 법률사무소형산 변호사는 “합법적으로 미행하려면 공개 장소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나 ‘적절하다’의 기준이 명시되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많다”고 했다.
탐정업을 단속할 주무 기관이 없어 불법 흥신소가 탐정사무소의 이름을 빌려 불법 조사를 행하기도 한다. 이재훈 법률정보조사원 대표는 “의뢰인의 요청으로 타인의 통화 내용을 도청하거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흥신소도 있다”고 했다. 탐정이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브로커와 협업하는 경우도 많다. 김모 씨는 “탐정사무소 개업 이후 포털사이트에 광고만 올려놔도 브로커가 먼저 ‘필요시 개인정보를 넘겨줄 수 있다’고 거래 연락을 한다”며 “브로커 등 정보원이 있으면 핸드폰 번호, 집 주소, 계좌 번호 등 개인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고 답했다. 일부 탐정사무소의 이러한 불법 행위는 탐정업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강 대표는 “개인정보 유출, 금전 사기 등 소비자 피해가 지속 발생하며 탐정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인다”고 했다.
탐정법 제정·단일 기관 관리 필요
흥신소의 위법 행위를 엄격히 규제해 탐정업의 음지화를 막으려면 탐정법 제정이 필수다. 탐정법은 16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꾸준히 제출됐지만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못한 16대를 제외하면 매번 변호사 단체의 반발로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폐기됐다. 재판 증거 수집 등 변호사 고유의 업무권을 침해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탐정의 업무 권한을 법적으로 정확히 명시해야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 업무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다. 염건령 가톨릭대 한국탐정학연구소 공동소장은 “탐정들이 조사 과정에서 다양한 직군과 협업하기에 업무 범위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혼란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탐정업계를 관리할 주무 기관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염 소장은 “일본, 유럽, 미국처럼 불법 업체 단속을 경찰청이 담당하되 탐정업관리위원회 등 별도 기관이 업계 자체를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강동욱(동국대 법무대학원 법학과) 교수는 “행정안전부가 탐정 자격 등을 관리하며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일 관리 체계를 갖추면 탐정업의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은 민간 탐정협회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자격 등록을 하면 탐정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다.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이달 기준 탐정 자격증의 종류는 127개, 자격증 취득자 수는 2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자격증 시험마다 난도가 다른 것은 물론 교육 과정을 이수하기만 하면 자격증을 발급하는 협회도 있어 자격시험을 표준화하고 실기 평가를 포함해 난이도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모 씨는 “온라인 수업과 시험 난도가 매우 낮아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도 이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윤리적 조사 역량이 요구되는 직무인 만큼 범죄 이력 확인 절차도 갖출 필요가 있다. 염 공동소장은 “탐정은 타인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기에 신용 상태가 불량한 사람, 심각한 범죄 전과를 가진 사람, 알코올 및 도박 중독의 성향을 가진 사람을 검증하는 사전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 김정린 기자 joring@
일러스트 | 송민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