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창단 후 해체하는 실업팀, 예산의 벽 넘어 지속하려면
단기 성적 부진하면 쉽게 해체
이직 고민하다 은퇴하는 선수들
지역사회 공헌·후원 유치 필요
직장운동경기부(이하 ‘실업팀’)는 비인기 종목 전문 체육인을 육성해 한국 스포츠의 국제 위상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된다. 국내에 프로리그가 없는 종목의 선수 대부분은 실업팀에 소속돼 훈련과 대회 출전을 지원받는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지방체육회 실업팀은 대부분 국내 대회 성과를 요구받고 정치적 의사결정에 휘둘리기 일쑤다. 비싼 운영비와 낮은 지역사회 기여도도 실업팀의 존재 이유를 흐린다. 남상우(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단기 성적 기반의 운영 구조에서 벗어나 후원 유치와 생활체육 봉사 등 지역과의 연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 격차가 낳은 성과 집중
지자체나 기업·공공기관이 선수와 근로계약을 체결해 운영하는 실업팀은 홍보와 지역 체육 기반 마련을 위해 창단된다. 그러나 미미한 홍보 효과와 창단·운영 비용 부담에 기업과 기관은 창단을 꺼려 절반 이상이 지자체·지방체육회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1288개 실업팀 중 지자체·지방체육회가 운영하는 팀은 706개로 전체의 약 54.8%를 차지한다. 선수들은 기량에 맞는 연봉을 받으며 운동선수로서의 경력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실업팀과 계약한다. 경규민 인천광역시체육회 당구팀 선수는 “계약금에 더해 4대 보험 가입과 퇴직금까지 보장돼 많은 선수가 실업팀에 들어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지방체육회 실업팀은 선수단의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 성과 등을 바탕으로 지자체의 예산 심사를 받는다. 매년 심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치는 대회 성적을 거두면 단기간에 예산이 줄거나 팀이 해체되기도 한다. 구정철 인천광역시체육회 생활체육부장은 “전국체전 시·도 순위 결과를 기반으로 지역 실업팀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김세명 충청북도체육회 총무부장은 “실업팀 운영비가 넉넉하지 않으니 지원이 선택과 집중으로 이뤄진다”며 “단기 성적을 낸 팀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부진한 팀은 예산 삭감이나 해체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천광역시는 지난해 운영 예산을 감당하지 못해 여자 하키팀을 해체했고 세종특별자치시청은 8월 테니스팀 해체에 대한 설명자료에서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실업팀 특성상 소속 선수의 꾸준한 성적 유지 및 향상은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신의성실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라며 “선수단의 성적 하락도 계약 해지 사유 중 하나”라고 했다.
국가 지원에 의존해 창단됐다가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지원 기간이 끝나면 해체하는 팀도 많다.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대한체육회 주관 실업팀 운영지원 공모사업으로 공공부문, 민간부문, 소수종목에 대한 실업팀 창단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지원 기간은 최대 3년이다. 정은천 전북연구원 문화·스포츠산업팀 연구위원은 “예산을 지원받는 동안 팀이 자생 기반을 갖춰야 하는데 지원 기간이 짧으면 예산에만 의존하던 신생팀은 운영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했다.
실업팀 창단·운영이 지자체 재정과 직결되다 보니 비교적 재정이 넉넉한 수도권으로의 성과 편중이 심화하고 있다. 경기도는 2022년부터 올해까지 4번의 전국체전에서 시·도 순위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열린 제106회 전국체전에서 1위 경기도와 2위를 차지한 개최지 부산광역시의 메달 개수는 각각 411개, 240개였다. 정 연구위원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실업팀은 선수 수나 금전적 지원이 다른 지자체의 몇 배 수준이라 대등한 경쟁이 어렵다”고 했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더 좋은 계약 조건을 제시한 시·도로 이적하기 때문에 재정이 넉넉한 지자체는 우수 선수 수급에도 우위를 점한다. 김 부장은 “전국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기 위해 잘하는 선수를 스카우트하려면 원소속팀보다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곳이 서울·경기뿐”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지방 실업팀은 우수 선수 육성에 공을 들여도 유출을 막기 어렵다. 김 부장은 “선수들에게 ‘웬만하면 출신 지역에서 선수 활동을 지속해달라’고 부탁한다”면서도 “연봉 차액이 의리를 지킬 수 없을 수준이라면 선수는 이적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치가 좌우하는 팀·선수 운명
지자체 실업팀의 실질 운영을 지원하고 위탁운영 협약에 따라 실업팀을 직접 운영하기도 하는 각 지역 지방체육회는 지자체의 결정에 휘둘린다. 2019년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지방체육회가 법인화돼 지자체장이 아닌 별도 민간단체장이 선출되고 있지만 수익 사업을 할 수 없어 재정 독립은 어렵다. 김 부장은 “지자체와 지방체육회의 운영 자금 출처가 같기 때문에 둘 중 어디서 실업팀을 운영하든 지자체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자체는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실업팀에 대한 지원을 꺼린다. 정 연구위원은 “실업팀 하나를 1년간 운영하는 데 평균 10억 원 정도가 든다”며 “지자체로서는 주민 복지에 더 투자해야 하니 실업팀을 애써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남 교수는 “지자체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재선”이라며 “시·도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재선에 성공하므로 지역사회에 공헌하지 못하는 실업팀 지원을 뒷순위로 미루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이유나 지자체의 재정난으로 팀이 해체나 구조조정에 돌입하면 소속 선수는 일자리를 잃는다. 구 부장은 “시에서 예산을 삭감하면 줄어든 예산에 맞춰 운영할 수 있도록 어쩔 수 없이 팀을 해체하거나 선수를 내보내고 있다”고 했다. 다른 팀의 제의를 받으면 이적하기도 하지만 선수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택한다. 김기훈(스포츠비즈니스전공 18학번) 교우는 “계속 운동하고 싶어도 당장의 수입이 끊기면 생계가 위협받으니 사실상 떠밀려 은퇴를 결정하는 선수가 많다”고 했다.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다는 운영 목적이 무색하게 실업팀 선수들은 국제 대회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지역 실업팀 선수 대부분 국제 대회보다 매년 개최되는 전국체전 입상을 목표로 훈련하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실업 선수 중 국제 대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선수가 드물어 모든 실업팀의 목표를 국제 대회 성적으로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쟁력을 갖춘 전국체전 입상 기대주들은 높은 연봉을 받지만 국제 무대에 도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정 연구위원은 “선수와의 연봉 계약 시 국내 성적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을 독려할 유인책이 없다”고 했다. 경 선수는 “국가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는 해외 대회는 선수 사비로 나가야 해 부담스럽다”고 했다.
수익원·운영 주체 다양화 고민해야
실무자들은 지자체 예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업팀 운영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 부장은 “지자체 재정 여건에 기대는 현 구조에서 벗어나 실업팀 운영비 국고 지원을 의무화하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자체의 입김에 팀의 운명이 바뀌는 극단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 조례가 제정될 필요도 있다. 김 부장은 “광역·기초자치단체 별 실업팀 육성 조례를 제정하면 단기간에 예산을 삭감하거나 팀을 해체하는 등 지자체장의 영향력이 작아질 것”이라고 했다.
실업팀의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 지자체 재원에 의존하는 구조를 고쳐야 건강한 실업팀 운영이 가능하다. ‘문화예술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하 ‘메세나법’)에 따르면 기업이 문화·예술 단체에 후원할 경우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체육 분야 후원은 메세나법에 해당하지 않고 별도 규정도 없어 지자체·지방체육회 실업팀은 후원을 받기 어렵다. 김기한(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실업팀 운영이 공공 재원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기업의 후원 유인을 만드는 스포츠메세나법 제정 등 후원 제도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고지 기반의 일본 야구 독립리그에서는 팀과 지역 기업이 스폰서나 광고 계약을 맺어 상호 협력하기도 한다. 남 교수는 “실업팀 운영에 마케팅과 기업 스폰서를 활성화하려면 지역 차원에서의 기업 광고나 홍보 제공, 세제 혜택 마련 등의 정책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의 실업팀 창단·운영을 장려하려면 지역사회에 대한 실질적 기여도 중요하다. 예산 심사 시 실업팀의 지역사회 공헌이 평가에 포함되면 단기 성과가 저조하더라도 지자체의 지속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남 교수는 “지자체에서 공적 재원을 투자하는 만큼 선수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지역사회에 헌신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 스포츠클럽에 재능 기부를 하거나 선수를 꿈꾸는 학생을 지도하는 등 시·도민의 만족도를 높이면 지역 내 실업팀에 대한 긍정 평가가 늘 것”이라고 했다. 정 연구위원은 “지역 학교 운동부 학생들이 실업팀 선수에게 배우며 기량을 쌓고 추후 실업팀에 입단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선수들의 진로 불안 완화도 실업팀의 지속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한체육회에서는 취업·진로 1:1 컨설팅, 스포츠진로교육, 멘토링 등 선수경력자의 진로 전환을 돕는 선수진로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방체육회는 은퇴 선수를 위한 별도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 많다. 구 부장은 “지자체·공공기관 실업팀은 선수가 은퇴 후 해당 기관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선수는 은퇴 뒤 정년까지 일할 수 있어 미래를 설계할 수 있고 지자체는 계약 유인을 높여 우수 선수 유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실업팀 운영 주체를 다변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 연구위원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독립된 운영 체계를 갖춘 실업팀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시 근무하는 직장인이 1000명 이상인 공공기관은 한 종목 이상의 운동경기부를 운영해야 하지만 이행하지 않아도 과태료 부과 등 처벌 규정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지자체도 공공기관의 운동경기부 설치 상황에 대한 점검·권고를 하지 않고 있다. 김 교수는 “지자체·지방체육회가 아닌 다양한 주체가 실업팀을 창단하고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글 | 김민서 취재1부장 mindo@
인포그래픽 | 주수연 기자 yoyeon@
이미지출처 | 부산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