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에 비닐 포장지까지 … 생활 쓰레기로 북한 사회를 읽다
학자와의 티타임 63. 강동완 동아대 부산하나센터장
북한 인접 지역서 쓰레기 수집
이념·언어·소비문화 알 수 있어
“해양환경학으로 정밀 연구할 것”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교류와 안보 정책을 설계하려면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그러나 폐쇄적인 북한 대외정책의 특성상 실제 산업 구조와 기술에 관한 직간접적 자료를 얻기 어렵다. 단순 문헌 분석만으로는 주민의 생활상 파악이 어려워 새로운 연구 방법이 필요하다.
강동완 동아대 부산하나센터장은 2019년부터 북한에 가까운 *서해 5도 해안을 다니며 수천 점의 생활 쓰레기를 수집해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연구해 왔다. 강 센터장은 “쓰레기를 분석해 문헌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을 파악하고 싶다”고 말했다.
- 생활 쓰레기를 왜 연구하기 시작했나
“남북한은 언젠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해야 오랜 분단으로 벌어진 두 사회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보고 2000년부터 북한 연구를 시작했죠. 그러나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문헌이나 공식 자료가 많지 않아 정보를 얻기 어려웠어요. 일단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북한 해외 노동자, 인신매매 피해 여성을 인터뷰하고 북한 접경지역을 관찰하며 북한 주민의 삶을 연구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2019년 서해 5도 해안을 거닐다 우연히 북한에서 떠밀려온 생활 쓰레기를 발견했어요. 처음에는 완제품이 아닌 쓰레기가 연구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북한 사회에서 어떤 제품이 주로 사용되는지 궁금해 꾸준히 쓰레기를 주워 살펴봤죠. 쓰레기를 모을수록 북한 주민의 소비 행태와 문화를 유추할 수 있었어요. 수출용 완제품은 완성도가 높지만 해안에 떠밀려 온 화장품과 식품 포장지는 그렇지 않죠. 이런 생활 쓰레기가 생활 흔적이 꾸밈없이 드러나는 언어로 느껴져 흥미로웠고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연구해야 할 대상이라고 봤습니다.”
- 생활 쓰레기에서 유추하는 정보는
“포장지 디자인만 봐도 북한 체제 이념이 어떻게 일상 소비재에 스미는지 엿볼 수 있어요. 어린이용 과자 포장지에 ‘세상에 부럼(부러움)없어라’ 같은 표현이 반복 등장하는데 이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사회 이미지를 주입하려는 의도죠.
언어 습관 변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언어 순화 정책에 따라 순우리말로 외래어를 표기해요.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의 표준어로 ‘얼음보숭이’를 사용하죠. 그런데 최근 수집한 쓰레기에는 ‘아이스크림’과 같이 외래어가 더 자주 등장해요. 외래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기 때문에 파인애플도 ‘파이내플’로 표기해 왔는데, 최근 대부분의 포장지에는 ‘파인애플’이 적혀 있죠.
의료 폐기물로 북한의 보건, 의료 체계도 유추할 수 있었어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 해안에서 다량의 고체 이산화염소 소독제 포장지와 약초 성분을 활용한 약 포장지를 발견했죠. 고체형 이산화염소는 액체 소독제보다 농도 조절이 어렵고 소독 효율이 낮아 전문 방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약초도 과학적 검증이 충분하지 않아 현대 치료법에서는 제외되는 경우가 많죠. 이러한 분석으로 북한이 정교한 방역, 치료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최소한의 소독 조치와 민간요법에 의존해 감염병에 대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생활 쓰레기 연구가 왜 필요하나
“201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북한 당국이 발간한 문헌, 통계 등을 연구 자료로 사용했습니다. 다만 이런 자료에는 북한 당국이 보여주려 의도한 정보만 기록돼 실제 사회 모습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웠죠. 북한 주민이 직접 물건을 사용한 흔적은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비정형 자료이기에 생활 쓰레기를 들여다 보면 북한 사회의 소비문화를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쓰레기는 시기별 비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큽니다. 동일한 품목을 몇 년 동안 수집하고 시기별로 특징을 비교하면 재질, 글씨체, 포장 방식의 작은 변화까지 추적할 수 있어요. 북한의 산업·사회 변화를 장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죠. 생활 쓰레기는 기존 공식 자료를 보완하고 북한 사회의 실상을 현실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연구 자료입니다.”
- 생활 쓰레기를 어떻게 수집·분류하나
“서해 5도에는 바람과 해류를 타고 많은 양의 생활 쓰레기가 떠내려옵니다. 보통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의 기간 동안 백령도에 자주 방문해 쓰레기를 집중 수집하죠.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구역을 조사하려 하지만 일부 군사통제구역은 매설 지뢰 때문에 위험해 들어가지 못하거나 관할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야 해요.
해안 지대를 맨눈으로 살피다 쓰레기를 발견하면 먼저 포장지의 규격과 생산지를 확인합니다. 북한 지명이 적혀 있다면 사진으로 남긴 뒤 발견 지점의 좌표, 기상 조건, 조류 방향 등을 기록하고 봉투에 넣어 밀봉해 연구실로 운반해요.
연구실에 돌아오면 조선중앙방송, 노동신문 등 각종 출판물을 찾아 상품이나 생산 공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죠. 때로는 북한 이탈 주민에게 직접 보여주며 상품의 인기나 활용도를 묻기도 합니다. 인쇄 방식, 재질 등 특징도 우리나라, 중국의 것과 한번 더 대조하며 북한에서 온 것이 맞는지 검토해요. 이후 식료품, 욕실용품, 의약품 등 품목별로 분류하고 쓰레기마다 번호를 붙여 정리하죠.”
- 인상 깊은 생활 쓰레기는
“‘망고단물’이라는 망고 주스 페트병이 기억에 남아요. 병에 원숭이 캐릭터와 망고 그림이 함께 그려져 있는데 북한 상품에서 보기 드문 친근한 디자인이거든요. 이처럼 최근 수집한 포장지에는 둥글거나 굵기를 달리한 글씨체가 등장하며 포장지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고 다양해졌어요. 예전에는 대부분의 포장지에 공식 문서용 글씨체인 ‘청봉체’가 쓰였습니다.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 표기에 쓰이는 글씨체라 경직된 인상을 주죠. 같은 품목에는 유사한 디자인이 사용돼 제품 간 차이가 없기도 했고요. 최근에는 같은 즉석국수 포장지도 글씨체나 색감이 조금씩 달라지는 만큼 상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선호 변화에 따라 겉모습도 변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어요.
최근 다량 발견된 생수인 ‘소분자수’ 페트병도 주목할 만합니다. 북한에서 모든 생활용품은 체제가 인민 생활을 향상한다는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고 상품 포장과 문구로 체제의 성과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죠. 소분자수 역시 분자가 작아 인체에 흡수가 잘 되는 건강 기능성 식품으로 홍보된 제품이에요. 근래 특정 지역에서 소분자수가 대량으로 발견된 건 소비자의 수요 증가로 인한 결과라기보다 노동당 창건 80주년 등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에 맞춰 일시 보급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하나의 품목이 대량으로 떠밀려온 건 드문 사례라 북한 내부의 보급 구조나 선전 방식, 정책 우선순위를 읽을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북한 생활 쓰레기의 이동 경로와 발생지를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해양환경학의 조사 기법을 연구에 활용하고 싶습니다. 해양환경학에서는 해양 오염도를 파악하기 위해 해안에 떠내려온 쓰레기를 정량적으로 수집, 분석하고 계절별 해류 흐름을 분석해 오염원을 추적해요. 이런 방법을 북한 생활 쓰레기 연구에 적용해 표류 경로와 쓰레기 발생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싶습니다. 해양환경학의 조사 방법과 북한학의 해석 기법을 결합한다면 쓰레기의 변화와 표류 경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죠.
버려진 것 속에 남아 있는 인간의 흔적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을 미리 만나는 연구를 지속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북한의 수출용 완제품과 서해 5도에서 주운 북한 상품 포장지를 한 공간에 모아둔 북한 박물관을 세울 거예요.”
*서해 5도: 대한민국이 관할하는 섬 중 북한 황해남도 남쪽 해안과 가까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일컫는 말.
글 | 김규리 기자 evergreen@
사진제공 | 강동완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