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21세기 대학생 농활의 의미

2025-11-23     김철규 문과대 교수·사회학과
김철규 문과대 교수·사회학과

  농활은 한국 대학 문화의 역사에서 독특한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1960년대 후반 시작된 농활은 초창기에는 농촌 계몽운동의 성격을 지녔다. 도시의 교육받은 대학생들이 어렵고 낙후된 농촌지역에 가서 농민들을 가르치고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했다. 1980-90년대 민주화와 학생운동 활성화 속에서 농활은 일종의 민중 지향 운동으로 농민운동과의 연대를 추구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농활은 많이 약화했는데,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개인화와 바쁜 학업 등이 그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 사회 전체 지형에서 농촌 자체의 가시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학생회나 단과대학, 그리고 학과 단위로 비교적 꾸준히 농활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올 6월 하순 사회학과 학생 41명이 학과 학생회 주관으로 농활을 다녀왔다. 학기말 고사가 끝나자마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경기도 평택시 율북리와 고잔리에서 4박5일 간 농촌 활동을 하고 온 것이다. 놀라운 점은 그 바쁜 학생들이 10월 중간고사 직후 2박3일로 가을 농활을 다녀왔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의 가을 농활은 들어본 적이 없다. 

  격변하는 21세기에 농활은 과거의 유산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코딩을 배우고, AI를 연구하고, 로봇산업으로 국가경쟁력을 올려야 할 시점에 농활이라니. 대부분 도시 출신 학생들이 농촌과 농민에 관심을 가지고, 두 번씩이나 농활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또 기특하게 여겨진다. 농활에 대한 생각과 참여 후 소감 관련해서 몇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회적 주체인 대학생과 농민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농활을 ‘농촌봉사활동’이 아니라 ‘농민학생연대활동’으로 새롭게 읽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한 학생은 농활을 통해 농사일을 거들면서 노동의 어려움과 먹거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마을 잔치를 열어 어르신들과 음식을 나누며 사람 간의 정과 연대의 온기를 느꼈다고도 했다. 

  한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간 성장주의와 경쟁주의 속에서 살고 있다. 성장과 경쟁 패러다임은 다양한 제도, 조직, 문화 속에 살아남아 지속되었다. 미시적 수준에서는 개인의 가치관, 가족, 학교 등에 성장과 경쟁의 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렸다. 공공성과 대안 미래 기획의 초소라고 할 수 있는 대학마저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통치 기관으로 전락하며, 시장형 개인들을 양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식 기술자를 만들어내는 대학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미래의 리더는 단순히 높은 학점을 받고, 기술적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타자를 배려하고,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기후 위기를 비롯한 지구적 차원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실제 땀과 눈물이 흐르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함께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며, 타자들과의 연대와 공생이 중요함을 체감하는 교육이 요구된다. 학생들의 농활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필집 <호의에 대하여>에 따르면, 사법시험 합격 후 장학금을 지원해 준 데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에게 김장하 선생은 “나는 사회에서 얻은 것을 돌려주었을 뿐이니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의 훌륭한 인재들은 각자 열심히 공부해서 세칭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되짚어 깊이 생각해 보면 고려대학의 좋은 환경에서 맘껏 공부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능력은 있지만 여건이 닿지 않아 공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재학 중 보다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더불어 삶을 실천하는 진정한 리더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김철규 문과대 교수·사회학과